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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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가정 상비약 수준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허용해야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


누구나 한번쯤은 배앓이를 하거나 감기 등으로 휴일에 근처 약국을 찾다 낭패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휴일은 물론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가 되면 병의원의 마감시간에 맞춰 서둘러 문을 닫는 약국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약 분업이후 약국의 입지가 완전히 변화하면서 생겨났다. 기존에는 동네 번화가가 최상의 약국 입지였지만 약국 업무가 처방 조제에 집중되면서 의원과 가까운 약국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일명 ‘문전약국’, ‘쪽방약국’이라는 신조어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순 배탈이나 감기와 같이 가벼운 질환에도 약국을 찾지 못해 약값의 몇 배에 달하는 비싼 치료비를 지불하며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할 때, 그 분통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상황을 두고 단지 불편함으로 치부하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가정용 상비약 수준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일반판매의약품을 약국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더 이상 휴일에 약국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로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가벼운 질환 정도는 자가 치료를 통해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간단해 보이는 문제도 아직까지 여론조차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약사법의 의약외품 규정에 따라 약국외 판매허용 품목을 늘리는 정도일 뿐이다. 의약외품이라 하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것을 지칭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의약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002년에 약국외 판매가 허용된 의약외품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구충청량제, 체취방지제, 땀띠분제, 치약제, 욕용제, 탈모방지제, 양모제, 염모제, 체모제거용 외용제, 인체에 직접 작용하는 외용소독제, 치아미백을 위한 첨부제 등이 그것이다.


지난 1월 29일, 복지부가 입안예고한 의약외품범위지정중 개정안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땀띠․짓무름용제에 산화아연 연고제와 칼라민산화아연 로션제를 추가하고 피부연화제를 신설하고, 담배의 흡연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연초가 함유되지 않은 궐련형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그리고 치아미백을 위해 사용하는 의약외품 제형에 페이스트제를 추가하는 것이 전부이다. 정작 소비자들이 급할 때 필요로 하는 가정용 상비약 수준의 의약품은 제외되어 있고 일부 품목만 의약외품으로 판매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약사법체계하에서는 의약외품의 범위를 넓히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2분류 체계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전문의약품이든 일반의약품이든 판매권은 약국개설자인 약사와 한약사로 제한하여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는 의약분업을 추진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각 직역간의 이해관계와 얽히면서 상당부분 왜곡되어 있다.


실제로 현재 일반의약품 중에는 오남용의 우려도 없고 사용법이나 효능이 일반화되어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의사의 처방이나 약사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의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혼재되어 있는 의약품을 별도로 분리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의약품분류체계를 바꾸는 것이 가정용상비약 수준의 일반판매의약품을 약국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즉, 의약품 분류체계를 일반판매의약품을 추가하는 식으로 분류체계를 개편하고 이 분류에 포함시킬 의약품에 대해 전문가들의 입증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약물의 무분별한 일반의약품 사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포장용기, 사용설명서의 개선 등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의약품 분류체계를 바꾸고 약물의 무분별한 일반의약품 사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약계의 커다란 반발로 시행하기도 전에 갈등만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약사법에서 모든 의약품을 약국내에서만 판매하도록 취급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약국이외의 곳에서 일반의약품의 판매를 추진할 경우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법 개정에 따른 이해집단의 반발과 갈등이 구체화될 경우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벼운 질환에 대한 치료 조차할 수 없는 극히 일부 품목을 의약외품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의료이용권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가벼운 질환은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비처방 의약품분야에서 자가 치료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