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경실련이야기] 경실련으로의 초대
200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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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경실련을 방문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시 경실련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 3번은 희한한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해도를 높이고자, 지하철4호선 혜화역에 내려서 경실련을 향해 걸어오는 동안 볼 수 있는 광경을 차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모름지기 시끄러운 데 어울릴 것 같은 시민단체가 너무 고요하고 한가로운 느낌마저 드는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디가 2층이고 어디가 3층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1층(?)의 주차장. 이 부분은 아직도 나에게 2층과 3층을 헷갈리게 만든다.

마지막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그리고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일반 건물에 있는 계단과는 다른 모양의 약 80Cm 정도 되는 좁은 계단이 살며시(?) 놓여져 있다.

위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한 번 쯤, 경실련을 방문해 보시지 않으신 분이시면(더군다나 2년 전 경실련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한 번도 방문해 보시지 않으신)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경실련 건물은 독특하고, 색다른 구석이 조금씩 숨어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경실련을 방문하셔서 이곳저곳 구경도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 이 글을 보고 왔다고 말씀하시면, 차라도 한 잔 대접받으실 수도 있다.

혹시 경실련에 오셔서 보신 것 중에 뭐가 맘에 드시던가요?

몇 달 전에 후배가 한 명 찾아와서 학교 과제를 해결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날 후배를 만났는데, 하는 소리가 건물이 참 이쁘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 성격이 좀 둔해서 그 전까지는 이쁜지 모르고 좀 독특하다는 생각 정도만 했는지라 그 후배의 고백은 나에게 경실련의 건물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이곳저곳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오늘은 그 중에 하나인(위에서도 언급한) 좁은 계단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한 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길 바란다. 계단이 협소하다고 할지라도 보통은 오르고 내려오는데 큰 불편을 못 느끼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두 사람이 같이 올라가거나 같이 내려갈 때, 또는 동시에 한 사람은 아래에서 한 사람은 위에서 각각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나서 뒤따라 갈 수밖에 없고, 후자의 경우 한 사람이 다 올라오고 나서 내려가거나 또는 반대로 또는 적당한 중간지점에서 몸을 살짝 틀어서 지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혹시 참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거리가 80Cm 이내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던져주는 의미는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45.7Cm미만), 개인적 거리(45.7Cm~1.2M), 사회적 거리(1.2~3.7M), 공적인 거리(3.7M 초과)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범주 안에서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의 차이를 구분했다.

거리 분류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그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이며, 어떤 두 사람이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는 두 사람이 무슨 관계 인가를 은연 중 드러낸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즉, 좁은 계단을 나 혼자 지나가도 60Cm이상을 차지할 것임은 상상해 보실 수 있을 실 것이다.

그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과정 중에 그 계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친밀한 거리’라는 ‘사정권’ 안에 있는 것이다. 잠시 잠깐일지라도 외부환경이 ‘사정권’을 만들어내고 매번 ‘사정권’ 안에 들지는 않겠지만, 이 계단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자주 ‘사정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좁은 계단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경실련 안에 상근자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져 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경실련 운동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경실련에 들어온 지 이제 막 6개월하고 15일이 지났다. 생소한 영역에 들어와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설래 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동이 갖는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부담이 있기도 하다.

경실련에 있는 좁은 계단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활동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좁은 계단이 되어서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가까워져,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싸 안는 활동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사회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양극화’. 이젠 하나의 유행어처럼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많이 인용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무국에서도 양극화에 해소에 관한 고민들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것의 원인이 무엇일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안이 무엇일까? 각종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갈수록 정말 잘 사는 사람과, 정말 못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논쟁하기 이전에 가슴 아픈 일이고 가슴 아파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과 사람들이 가까워져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리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진짜로 모든 계단을 좁게 만들면, 해결되지 않을까?


이정주 경제정책국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