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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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경실련 오마이뉴스 – 지속가능발전을 이야기하다 ①] “유엔 새해 목표는, 바로 이것”

유엔의 새해 목표는, 바로 이것

[경실련 오마이뉴스 – 지속가능발전을 이야기하다 ①] SDGs 탄생 배경과 국내적 함의

2016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한 해의 시작에 우리는 보통 야심찬 계획을 세우며 출발한다. 국제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은 국제사회가 일 년도 아닌 무려 15년의 대 계획을 세우는 해였다.


193개국으로 이루어진 유엔에서는 전 세계가 인류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총 17개의 목표를 발표했고, 이 계획은 올해부터 실행되어 2030년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목표가 채택된 공식문서의 명칭은 ‘세계의 변혁 :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어젠다(원제 : transforming our world : the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아래 SDGs)’, 줄여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고 흔히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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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에서 발표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 Global Goals

목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국제사회의 목표는 있었다. 새천년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아래 MDGs)라는 이름으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했다. 빈곤퇴치나 기아종식과 같이 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였기 때문에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SDGs는 MDGs와 달리 전 세계 국가들이 지켜야 될 국제사회의 약속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한다. 가장 큰 원인은 국가 간에 합의된 계획이지만 반드시 꼭 지켜야 한다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 언제부터 생겨난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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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9월, UN에서 열린 개발총회 모습
ⓒ UN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흔히 산업화 이후 성장 위주의 발전을 반성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의 발전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국가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지방정부 단위에서도 의제21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실천하기 위한 거점들이 형성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녹색성장’으로 지속가능발전의 의미가 대체, 부각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무려 1970년대부터 환경과 개발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이 등장했다. 이후 1992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회의를 통해 환경과 개발에 대한 여러 목표와 계획들이 합의되었고, 2012년 Rio+20 리우회의에서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토대가 되는 아젠다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5년은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 해였다. 9월에 열린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193개 회원국의 동의 아래 목표가 발표되었다. 전 세계 불균형을 없애고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인 지구의 영속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헬조선’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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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Rio+20 기후변화총회
ⓒ Roberto Stuckert Filho/PR

저성장과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이른바 ‘헬조선’에서 왜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당장 바쁘고 힘든 내 삶과 어떤 연관성도 찾기 힘든 이 주제에 대해 왜 우리는 관심 가져야 할까. 나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내 것을 조금 덜어서 양보해야 되고 심지어 자연을 지키며 천천히 성장한다? SDGs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님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에 발생한 종말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생태적 위협들은 모두 다 자연을 소비함으로써 인간 중심적으로 개발하려는 인식이 확대된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숨쉬기 힘든 대기환경과 미세먼지.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인간들의 오류가 오늘날 우리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내다 볼 여유가 필요하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한발 늦었다.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가 처음 발간되고, 환경과 개발에 대한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수면 위로 등장했을 때, 대한민국은 지긋지긋한 빈곤을 마치고 막 토건국가로의 부활을 꿈꾸던 개발 시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오십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지구의 몸살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제는 성장만으로 충분한 시대는 지났다. 유명 개발경제학자인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개발의 최종 목표는 성장이 아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증대되는 것이라 말했다.

대한민국이 성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증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주제는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건네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3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