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강좌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시민강좌] [경제정의] 경제정의란 무엇인가?
1999.10.10
6,354

 


경제정의란 무엇인가?


이근식 서울대시립대 교수


 


 작년부터 경제정의가 우리 사회에서 친숙한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으나 막상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모두 경제정의에 대해 공통된 생각들을 갖고 있다.


 


정의의 핵심은 공정함이다.


 경제정의는 경제문제에 관한 정의(正義)이다. 먼저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정의란 옳은 것이다. 즉 사람들간에 이해관계로 인하여 다툼이 발생하였을 때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 정의이다. 


 


 사람들간에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태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여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함께 등산을 가서 길을 잃었을 때, 이 방향으로 가자느니 저 방향으로 자나느니 하며 의견대립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쟁은 정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단지 정보부족이나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분쟁이 발생하면 아무리 정보와 지식을 더 얻어도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다. 이때에는 정보나 지식이 아닌 다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의 핵심은 ‘공정함’에 있다. 공정함이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입장에 섬을 말한다. 이해관계가 달라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옹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공정한 입장에 설 때만이 무엇이 옳은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문 탐구나 기술 연구 혹은 자신이 개입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간의 분쟁 등과 같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만 인간의 이성은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히면 이성의 눈이 멀어진다. 상당한 교양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궤변과 억지를 부리는 광경을 우리는 흔히 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자기주장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 한 인류역사상의 유명한 폭군들만이 아니라 최근 금융실명제의 실시를 반대한 우리사회의 일부 인사들도 모두 자신은 옳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관찰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공정한 입장에 선다는 것이 각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입장이란 어느 누구의 특정한 입장이 아닌 보편적인 입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과 을 두 사람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갑이 을의 입장에 서고 을은 갑의 입장에 선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두 개의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정한 입장이란 특정한 개인이나 어느 한 집단의 입장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타당한 보편적인 입장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입장이다. 사람들은 각각 가족상황, 재능, 건강, 연령, 재산, 교육 등 서로 다른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들을 모두 없애고 보면 사람은 모두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닌 동등한 인간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모두 동일하다는 관점에 설 때에 비로소 공정한 입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을 현대 미국의 윤리철학자인 존 롤즈는 원초적 입장이라고 불렀다. 즉,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래관계를 벗어나서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누구나 옳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효율성, 공정성이 경제정의이다


 앞에서 생각해 본 정의의 의미를 이용하여 이제부터 경제정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가장 순수한 입장에서 생각할 때 누구에게나 옳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경제상태가 경제정의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이 극대화된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면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있어야겠는가? 경제학은 이에 대한 일차적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즉, 효율성과 공평성이 모두 충족된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효율성이란 어떤 경제 내에서 최대의 생산물이 생산된 상태를 말하고 공평성이란 생산된 생산물이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진 상태를 말한다.


 가능한 최대의 생산물이 생산된 상태라는 효율성의 개념은 내용이 분명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경제 내의 모든 생산자원들이 남김없이 모두 생산에 투입되고 생산에 투입된 생산자원들이 생산과정에서 가장 능률적으로 생산에 사용될 때 효율성이 달성될 것이다. 즉, 모든 노동력과 공장과 경작지들이 하나도 놀지 않고 모두 생산에 투입되며, 생산에 투입된 이들 생산자원들이 최대의 생산성을 발휘할 때 효율성이 달성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효율성이 분명한 개념인 것과는 달리 공평성이란 개념은 그 내용이 불분명하다. 과연 어떻게 나누는 것이 공평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경제학 교과서나 신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공평성이란 말 대신에 흔히 형평성이란 말을 쓴다. 그런데 막상 그 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한 책은 거의 없다. 근대경제학은 아직 이 개념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을 못하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 국민들의 경제후생을 극대화시키는 생산물의 분배상태를 형평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근대경제학이 형평성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형평성이란 가치판단이 불가피한 말인데, 근대경제학은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실증주의적인 전통을 따르고 이씩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의 개념을 사용하여 우리는 형평성(공평성)을 정의 할 수 있다.


 


 


공평성의 세 가지 조건


 공평성이란 공평한 분배 혹은 생산물이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상태를 말한다. 그럼 어떤 분배가 공평한 분배인가? 이 분배문제는 사람들간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분쟁이 발생하는 전형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앞에서 나온 바와 같이 정의란 사람들간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무엇이 옳은가를 판정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의를 분배문제에 적용시킬 수 있다. 즉, 공평한 분배란 바로 정의로운 분배이며 분배의 공평성은 분배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분배정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즉, 어떻게 분배가 돼야 분배정의가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생산에의 기여도에 비례한 차등분배>


 분배문제란 결국 생산물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누어 사용하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생산물에는 음식물, 옷, 집, 가구, 자동차 등과 같은 개별적인 재화만이 아니라, 전기시설, 상․하수도시설 등과 같은 각종 사회적 시설 그리고 병원치료나 학교교육과 같은 용역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생산물의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 나누어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누구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생산에 많이 기여한 사람에게 많이 주어야 한다. 어떤 생산물을 막론하고 사람의 생산활동 없이 생산되는 것은 없으므로 그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분배도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정의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얻는 소득은 모두 부정의한 것이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체제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법칙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생산에는 노동력만이 아니라 자금, 공장, 토지와 같은 재산도 생산에 참여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만이 아니라 이자, 이윤, 임대료 및 지대(地代)와 같은 재산소득도 생산에 참여한 대가로 얻는 생산적인 소득이라고 인정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토지, 주택 및 증권(주식이나 채권)은 자산(資産)의 가격이 상승하여 발생하는 소득이다. 이 중에서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증권의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의 자금도달이 원활하게 되어 기업의 생산활동이 촉진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증권가격의 상승으로 얻는 이득은 간접적으로나마 생산에 기여한 대가라고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주택이나 토지의 가격상승으로 인해 얻는 이득은 생산에 전혀 기여함이 없이 단지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얻은 것이므로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정당한 소득으로 인정될 수가 없다. 특히 토지가격의 상승은 공장이나 도로 등 생산에 필수적인 시설들의 공급을 어렵게 하여 오히려 생산을 방해한다.


 이 원칙은 또한 부정부패에 의한 음성적인 수입도 부정한다. 이러한 음성수입은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원을 낭비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생산을 오히려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기회균등의 제공>


 생산에 기여한 만큼 분배를 받는 것이 공정하려면 먼저 모든 사람에게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민주사회에서의 평등은 기회균등이다. 이 두 번째의 원칙은 분배에서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이  원칙도 모든 경제체제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 원칙을 자본주의경제에 적용하여 보자. 자본주의경제에서 생산에 참여하여 얻는 소득에는 노동소득과 재산소득이 있다. 노동소득은 임금을 말하여 재산소득은 이윤, 이자, 지대 및 임대료를 말한다. 선천적인 재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제외시키면 노동소득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의해 좌우된다. 한편 재산 소득은 기본적으로 부모로부터의 상속에 의해 기회가 결정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에 참여하여 생산적인 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교육과 상속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생산참여의 기회균등이란 결국 교육과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교육에서의 기회균등이란 모든 사람에게 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시켜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공부할 의사와 자질이 있으면 부모의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즉 일정수준까지는 의무교육을 제공하고 그 이상을 시험을 거쳐서 자질과 의사가 인정된 학생에게는 수업료 부담능력과 상관없이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엄격히 적용하면 100%의 상속세를 부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00%의 상속세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 일생 동안 모든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면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즉, 100%의 상속세는 생산에 참여할 의욕을 떨어뜨림으로써 경제정의의 또 하나의 원칙인 효율성의 원칙을 저해하기 쉽다. 따라서 적정수준, 예컨대 일정금액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주고 그 이상의 초과분에 대해서는 50%의 상속세를 엄격히 부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징수된 세금은 가난한 집의 자녀들을 위해 교육 등 여러 가지 복지정책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절대빈곤의 추방>


 분배정의의 세 번째 원칙은 절대빈곤의 추방이다. 절대빈곤이란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조건인 기본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기본재에는 음식물, 옷, 주거, 의료, 교육 및 교통이 포함된다. 이 원칙은 경제적인 면에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권(人權)이 충족되어야 함을 말한다.


 


 현실 경제에는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빈민들이 존재한다. 이들 빈민이 존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시장가격기구가 불완전하여 생산에 기여한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육과 상속에서 매우 불리한 기회밖에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생산에의 기여도 원칙과 기회균등의 원칙이 실현되어도 선천적인 자질상의 결함으로 인해 빈곤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들 빈민들을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생활공동체로서 사회가 마땅 감당해야 할 의무이다. 


 이 원칙은 생산물의 분배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기본재를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함을 의미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절대빈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사치와 향락이 허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본재의 공급이 최우선이므로 사치와 향락에 쓰여지는 생산물은 절대빈곤을 추방하는 데로 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재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잡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 수준은 그 사회의 생산력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기본재의 수준은 크게 보아 두 가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생존에 필요한 수준으로 해석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다. 전자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를 말하며 후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의식주와 의료, 교육 및 교통을 포함한다. 생산력이 낮은 사회에서는 전자로, 생산력이 높은 사회에서는 후자로 기본재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공정한 분배(=공평한 분배=분배정의=공평성)란 위의 세 원칙이 모두 충족된 분배를 말한다. 즉 일단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교육과 상속의 기회를 준 다음 각자 자신이 받은 교육과 상속, 그리고 자질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생산에 참여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산출된 생산물을 우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회에서 합의된 수준의 기본재를 나누어 주고 나머지 생산물은 각자 생산에의 기여도에 비례하여 분배된 상태를 공평한 분배라고 말할 수 있다.


 


 


평한 분배는 생산을 촉진시킨다


 앞에서 효율성과 공평성이 모두 실현된 상태가 경제정의라고 정의하였다. 만일 앞에서 본 공평성과 효율성이 서로 배치된다면 경제정의는 실현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성장 혹은 효율성을 위해서 공평한 분배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만은 사람들이 현혹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공평한 분배는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시킨다. 


 


 공평한 분배의 첫 번째 원칙이 준수되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생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생산의 효율성이 촉진되고 경제성장도 높아진다. 자신을 위해 일을 할 때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다. 인류역사상 자본주의경제가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실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는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생산에 가장 잘 활용하는 경제체제인 것이다. 기여도의 원칙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그에 해당하는 대가가 정확하게 자신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생산을 증대시키고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기회균등의 원칙도 생산을 촉진시킨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과 효율레 가장 효과적인 투자이다. 앞에서 본 적정한 수주의 상속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상속세 제도도 생산의욕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적정한 수준의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실현시킬 수 있다. 


 


 공평성의 세 번째 원칙인 기본재 충족의 원칙은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우선적으로 소비에 배정하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를 그만큼 감소시킴으로써 효율과 경제성장을 방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경제성장의 목적은 인간이 보다 잘 살기 위한 것이다. 절대빈곤의 퇴치가 경제성장의 목적이므로 이를 위해서 성장 자체가 다소 침해되는 것은 정의에 합당하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공평한 분배의 세 가지 원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은 생산을 촉진시키고 이 중에서 첫 번째 원칙인 기여도의 원칙이 생산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가장 강력하여 전체적으로 볼 때 공평한 분배는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부동산 투기, 정경유착, 탈세를 공인하는 금융가명제, 불공정한 노사관계, 농촌과 중소기업의 피폐, 극심한 빈부격차 등 수많은 경제 불의가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추방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토지투기로 인한 이득의 철저한 환수를 위한 토지제도의 개혁, 금융실명제의 실시, 복지제도의 확충, 공정한 상속세의 실시, 공정한 노사관계 확립, 재벌에 대한 적절한 규제, 정부의 횡포 방지, 한국은행의 독립 등 과감한 제도개혁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내용은 경제정의 창간호 90년 7,8월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