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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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국민의 신뢰를 짓밟은 政.經.言의 유착관계


김 상 겸 (金 漺 謙)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동국대학교 헌법학)




소위 안기부 X파일이라 불리는 도청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과거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정치비리들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불법도청과 정치비리라는 두 문제가 혼재하면서 그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초점은 역시 정치비리에 관한 내용이다. 누구말대로 그동안 야사로만 읽었던 내용들이 이제 조선실록처럼 정사로 읽는 것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진위여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구체적인 자료라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일거라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마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실체가 지금에 와서야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지 모른다.


물론 그 진실여부야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드러난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치비리는 정경유착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건이 보도된 대로라면 정경유착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한 언론사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경유착을 넘어서 언론까지 그 위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무서운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은 말할 수 없이 확산되었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쫓아서 입법과 정책을 통하여 정치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 왔다. 이번 사건이 보도대로 과거 정권에서 정치개혁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일어난 것이라면, 앞에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정치비리를 자행한 그 철저한 이중성에 국민은 기가 막히게 농락당한 것이다. 또한 한 점의 망설임이나 부끄럼 없이 민주주의라는 무대를 이용하여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면 국민을 한낱 허수아비로 보고 신뢰를 짓밟은 것이다.


루소나 로크와 같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국민주권을 외치면서 시민사회를 연 것이 진정 인간사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인지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회의가 든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주권자의 자기지배원리이다. 이런 행태의 정치비리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파괴하고 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도대로라면 정경유착을 넘어서 민주주의 실현에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언론까지 포함되어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이니 그 심각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사건들을 그 진위여부와 씨름하면서 보아야하는 국민의 마음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부정의 끝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국민의 당혹감 역시 헤아릴 길이 없다.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진실게임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전개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런 사건들로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이고 침해된 국민의 권리는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튼 드러난 내용의 진위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하여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법적 책임은 관련 당사자들이 전부 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정치비리와 함께 국가정보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무차별한 도청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국가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불법도청문제 역시 이번 기회에 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이 그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문제는 국가와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층이 가져야 할 도덕성이란 덕목이다. 또한 이 사건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치개혁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며, 국민은 주권자로서 그들을 향한 감시의 눈길을 한시라도 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5.7.26)


* 이 칼럼은 문화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