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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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연대 창(窓)-보편인권 VS. 포스트모더니즘

7월의 마지막 이야기는 ‘인권’ 이야기로 꾸며볼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는 인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기본 명제를 들먹이며 다른 국가를 협박하기도 하고 한 나라 내에서 싸우기도 하지요. A 나라와 B 나라의 관습이 서로 상충하여 서로가 서로를 비인권적이라 비난하는 형국입니다.

 

오늘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인권이 ‘보편적’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몇 년 전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미국은 중국 정부가 파룬궁 수도자들 혹은 정치범들을 박해하는 행태를 두고 비인권적이라 비난하며 ‘보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이때 중국은 ‘중국적 가치’ 혹은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보편 인권’은 더욱 탄압적인 것이라 반발하였더랬지요. 이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나라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비인권적 조치들을 들먹이며 지속적으로 압박을 했습니다.

 

보편적 문화가 없다면 보편적 인권도 없다?!

 

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 세계를 휩쓸면서 사람들은 문화의 상대적 가치에 강조점을 두게 됩니다.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며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라 강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여성이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미덕이며 전통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을 보장하라 부르짖는 일이 그 문화에 대한 침해는 아닌 것인지 고민에 휩싸이게 된 것이지요. 또한 사유재산 보장, 계약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서구사회가 말하고 있는 인권이란 것이 서구적 가치와 문화가 일구어낸 지극히 제한적인 인권이 아닌가 주장합니다. 즉 보편적 문화가 없다면 보편적 인권도 없으며 각자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인권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탄압은 전통이 아니다?!

 

프리카의 몇몇 나라에는 어린 여아에게 할례를 하는 풍습이 있답니다. 물론 본적이 없고 주변에 경험자도 없어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나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일생을 따라다니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를 반대하였으나, 그 나라 그 문화만의 고유한 관습이라 따르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이런 경우에,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보편 인권의 이름으로 막아야하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의 철학적 명제는 난관에 봉착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어떨까요? (자발적이지 않은) 억압 혹은 강제를 행하는 문화는 인권을 침해하며 그 전통적 가치에 관계없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꼭히 나라 혹은 문화 사이의 관계에서의 보편인권 문제 뿐 아니라 한 나라 내에서도 보편인권 문제는 존재합니다. 거지도, 가난한 노동자도 모두 사유재산권과 자유계약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사회는 인권이 자알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사유재산권과 자유계약권과 같은 가치는 서구적 자본주의의 마인드를 지닌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가치이며 그들만을 위한 보편인권이기 때문입니다.

 

보편인권이란 환상이다?!


편성은 ‘동일성’ 혹은 ‘동일화’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말 그대로 모든 인종, 문화, 풍습, 전통을 아우를 수 있을 때에만 ‘보편’이란 두 글자가 제 값을 할 것이기 떄문이지요. 역시 뻔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절충주의의 길을 택해 유동적인 길을 걸어라! ㅡㅡ;;

세상에 뻔한 정답만큼 어려운 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