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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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김성훈 칼럼]대선 후보들의 간과한 대북공약, 1% 선행조건
201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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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식량ㆍ농업 협력이 남북간 신뢰형성의 열쇠이다

 

1998년 11월 첫 번째로 속초항을 떠나 북한의 장전항으로 향하는 설봉호 선상에는 고 이보식(李輔植) 산림청장의 특명을 받은 산림 병해충 전문가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관광객의 신분으로 금강산 노송(老松; 소나무)들에 솔잎 혹파리병이 감염됐는가를 확인해 오라는 당부를 받고 나선 길이다. 2박3일 동안 남들은 풍악산(楓嶽山)의 절경에 황홀하여 관광에 여념이 없을 때 그의 카메라는 짐짓 금강산 비경을 찍는 척 봉래산의 낙락장송(落落長松)들의 잎, 가지와 줄기 상태를 담는 데 일편단심이었다.

 

수년내 사라질 운명의 금강산 노송들

귀국하여 농림장관실에서 당사자와 산림청장 등 관계자들이 함께 펼쳐 든 사진들을 판독하면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수천년동안 금강산의 비경과 함께 시인 묵객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어 온 천연기념물과도 같은 낙락장송들이 솔잎혹파리의 공격을 받아 수년내 금강산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앞으로 전개될 유병상태를 점검해 볼 때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금강산의 솔잎혹파리들은 남쪽에서 건너 간 것으로 남측도 그 책임과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제시대 전라남도 목포에 입항한 목재와 함께 묻어 들어 온 솔잎혹파리들이 연평균 4㎞ 가량 북상하면서 남한의 숱한 소나무들을 쓰러뜨렸고 마침내 강원도 일원에서 완전히 퇴치된 것으로 믿어 왔던 터였다. 그 녀석들이 우리 민족의 성산, 세계적 자연ㆍ문화유산인 금강산에서 그것도 남한의 전문가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그 해충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 그리고 방제용 약제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북녘 땅으로 넘어 간 것이다.

 

우리 민족 공통의 세계적 명승지 금강산까지 침입하다니, 그렇다고 지난 50년 동안 외교관계가 없었던 분단상태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모른 체 넘어가기엔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과 우리 조상과 후손들에게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농림관료끼리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용기를 내어 장관이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맨먼저 통일부 장ㆍ차관에게 통보하고 설득하였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남북한 당국간에는 공식 대화통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대신 민간기구를 앞세우기로 하였다. 우리 측에서는 퇴임한 산림관료와 학자 출신들이 모여 만든 수목보호연구회가 있었다. 고인이 되신 이범영 박사를 필두로 4명의 산림병해충 전문가들이 우리 정부를 대신하여 총대를 매었다. 북측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솔잎혹파리 병의 위험성과 방제법을 설명하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한다. 금강산 솔잎혹파리 공동방제에 겨우 동의를 얻어 낸 다음에도 새로운 문제들이 속출하였다. 예컨대, 고독성 살충제로 단시일내에 제거하자는 북측의 주장에 대하여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최소로 하는 저독성 해충제를 사용함과 동시에 천적을 이용하는 방법을 병행하자는 남측의 주장이 맞서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 금강산 지구 전경 ⓒ연합뉴스

퍼주기 했다고 꾸중 받은 농림장관

그렇다고 급속히 번식하는 솔잎 혹파리들을 그대로 놔둘 순 없는 일이다. 수 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죽어 가면 누가 손해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남북간 줄다리기 끝에 결국 중간선에서 타협하였다. 남측이 각종 약제와 재료, 방제법을 전수하고 북측이 인력을 담당하는 선에서 방제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처음 혹파리병을 발견한 지 3년만에 금강산 전역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막아내어 낙락장송 지키기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산림분야 병해충 담당연구원들과 수목보호연구회의 고 이범영 박사 등 제현들이 나무사랑, 금강산 사랑을 위해 피땀을 흘리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농림부장관이 불려나가 여당 국회의원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왜 북측에 ‘퍼주기’로 약재와 방제법을 공짜로 넘겨주었느냐고 따지고 든 것이다. 금강산은 고래로 우리 민족의 공통의 자산이요 영산(靈山)으로서 장차 통일이 됐을 경우 우리의 영원한 자연문화유산인데 어째서 솔잎혹파리 병의 습격으로부터 금강산을 지키는 일이 ‘퍼주기”냐고. 그리고 단지 금강산이 북쪽 경계에만 있을 뿐, 우리나라 산이 아니라는 말이냐고 되받았다. 장관의 당돌한 답변에 의외로 동조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많아 가까스로 봉변을 면하였다. 그로부터 2008년 7월 MB 정권 치하에서 금강산 관광 방문 길이 막히기까지 필자는 금강산만 세차례 찾아 갔다. 그때마다 삼일포 지역으로부터 개골산(皆骨山) 일만이천봉에 이르기까지 전역에 뻗어 있는 그림 같은 노송들이 독야청청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 볼 때마다 새삼 그 국회의원의 근시안적인 퍼주기론을 떠올렸다. 역사성도 없고 통섭(通涉)의 원리도 모르는 그런 지도자들을 모시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마냥 부끄러웠다.

 

실패한 상생의 남북 환경생태계 살리기

비슷한 사건이 노무현 정부 때에도 일어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엔 실패담이다. 교수직으로 복귀한 필자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범종교 범시민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의 공동대표로 취임하여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과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였다. 시민단체, 종교단체, 의료관련 단체, 농림수산업 종사자 그리고 지자체 대표들과 북한을 자주 방문하였다.

 

자연스럽게 전공과 관심을 살려 북쪽의 농업사정을 관찰하였다. 우리나라의 선진된 농기구와 농기계, 비료 등 농자재를 민간차원의 모금으로 지원하고 효과적인 모내기 방법이라든지 나무심기(금강산과 개성단지에 각 두 번씩) 등에 앞장을 섰다. 정부에 몸담았을 때 최초로 북측에 화학비료보내기사업을 주관했던 터라 그 효과를 관찰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범지구적으로 자연환경과 인간의 생명건강 유지에 유익한 유기농업의 보급가능성을 타진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북한의 논밭 흙 속에 유기물질이 워낙 적게 함유되어 있어 지력이 쇠약해져 있었다. 화학비료를 시비하더라도 남쪽에서만큼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토양의 질이 더 나빠지고 산성화 되어 화학비료의 생산력 증대효과에 일정정도 한계를 보이기도 하였다. 낙엽이나 농가 부산물등은 대부분 가정에서 부족한 연료로 사용되고 축산업이 미미하여 분뇨퇴비도 태부족이었다. 인분만으로는 넉넉치 않아 유기질 비료원천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였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는 산과 골짜기 들판에 축산분뇨와 음식물쓰레기(연간 약 500만톤)가 넘쳐나서 강과 저수지와 바다에 내다버려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내년부터는 그것도 전면금지되어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대란이 예상된다. 4대강과 그 지류는 영양(유기물질)이 지나치게 부유하여 각종 환경적 부작용마저 초래되고 있다. 이른바 올여름 4대강에서 목격한 ‘녹조라떼’ 현상도 그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축산분뇨처리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이다. 그 다음이 연간 18조원으로 추정되는 음식물 쓰레기의 처리 문제이다. 잔여 농산물과 부산물 그리고 도회지의 가로수 낙엽처리 문제도 골치이다. 오죽했으면 북한을 방문했던 남측의 시민단체 대표 한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북측에 대하여 생 가축분뇨를 얼마든지 보낼 용의가 있으니 받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다가 된통 무안을 당한 헤프닝마저 벌어졌다. 생물 형태의 가축분뇨에는 악취 원인은 물론 각종 질병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그 이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윈-윈 정책

그러나 이들을 과학적으로 상당기간 숙성 자연발효시키고 여타 유기물질을 적절히 배합 처리하면 기생충 알을 비롯 나쁜 세균들을 제압할 수 있어 양질의 유기질 비료로 된다. 선진국의 수퍼마켓 앞에 즐비하게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는 예쁜 포장의 퇴비들이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질 비료이다. 도시농업과 화훼농사에 있어 아주 유용한 흙과 비료성분이 되기도 한다. 남한 땅에 넘쳐나 각종 환경오염과 악취를 일으키는 가축분뇨, 음식물 쓰레기, 농업 부산물들을 유기질 비료로 만들어 북한 땅 들녘에 절실히 필요한 유기성분 비료로 시비할 경우 지력을 크게 높여 주어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된다. 강과 바다에 투척하여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소각처리하는 데 드는 남측의비용을 감안할 때 유기질 비료로 만들어 북송하는 구상은 그야말로 서로가 win-win 하는 상생의 대안이다.

 

이와 같은 취지를 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 자격으로 자세히 그 계획을 북측대표에게 설명하였다. 북측 대표가 내부적으로 신중히 검토한 후에 공식채널을 통해 남쪽 정부에 제안하겠다는 답변을 해왔다. 나중에 북한회담 대표들이 한국에 왔을 때 통일부 계통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기질 비료의 지원을 공식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우리 정부측에서는 무덤덤하게 어떠한 반응도 대안제시도 없이 그 요청을 고위층에서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야 그때의 통일부장관을 지낸 모씨가 인터뷰를 통해 ‘직접 보고 받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전에 남측의 한 (시민)대표가 가축분뇨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 북측이 즉석에서 거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생뚱한 해명을 하였다. 유기질 비료에 대한 정식 채널의 북측 요청은 묵살하고 그 이전 비공식 채널의 생 가축분뇨 거부사례만 기억하고 있는 듯 하였다. 지난 정권하에서 이처럼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의 무지가 남북간에 절호의 상생기회를 날려 보내버린 전형적인 실패 사례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 제안은 남북 서로간에 유효하다고 본다.

 

북녘 땅에 나무심기: 아름다운 금수강산 가꾸기의 꿈

“이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사시(社是)로 하는 (주)유한킴벌리는 1985년부터 매년 식목일 무렵이면 신혼부부 300쌍을 초청하여 나무심기 행사를 펴오다가, 2005년부턴 금강산과 개성 등 취약 지역을 찾아 나무를 심어 왔다. MB 정부가 들어서부턴 남북이 다시 가로막혀 경기도 일대로 방향을 틀어 국내 식목행사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 ‘생명의 숲’ 등 산림ㆍ환경분야 시민단체들도 북녘 땅에 묘목포장을 지원하고 나무 심는 활동을 수년간 행해오다가 MB가 들어선 이후 접어야 했다.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북쪽에 나무를 심으면 교토의정서의 합의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선기간 중 서울숲에서 ‘후보와의 차 한잔’ 회동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녘 땅에 대대적인 식목지원 사업을 펼칠 것임을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북한 땅에 심지 않았다. 「비핵 3000」이라는 허황스런 족쇄에 스스로 옭아매여 진짜 남과 북에 공히 이익이 되는 ‘북녘 땅 푸르게 푸르게’의 식목 공약을 허공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평신도가 거짓말 하면 지옥에 간다는데 장로님이 거짓말하면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후보 시절 직접 유기농업 발상지인 팔당지역을 찾아가서 유기농업이 이 나라 농업을 살리는 대안이라고 공언해 놓고도, 4대강 녹색공원과 녹색 자전거길을 만든다고 팔당지역에서 유기농가들을 몰아 낸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지난 4년동안 팔당 현장에서 신부, 목사, 승려, 신도들이 970여회나 집회하고 예배를 올렸나 보다.

 

실락원(失樂園)의 별: 금강산과 개성에서 거둔 성과

금강산에 갈 때마다 필자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기어코 들르는 곳이 있었다. 민간 차원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은 통일농수산사업단(남측 대표 이우재)이 2005년부터 북측 농업성 농업과학원과 공동으로 금강산 삼일포, 금천리등 2,500여㏊, 4천여 가구의 11개 협동농장에서 공동 농업협력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남측 전문가의 기술지도와 자재 지원으로 벼농사를 비롯 보리ㆍ밀 재배, 옥수수와 콩 농사, 봄 감자, 김장채소, 과채류와 고등원예 및 양돈사업, 기타 산나물, 누에, 양봉 등을 망라하였다. 초기 성과에 탄력을 받아 2007년부터선 개성 송도리 협동농장 등으로 남북간 농업협력사업을 확대하였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중단된 그해까지의 동 농업협력사업 성과는 실로 눈부시며 남북 식량ㆍ농업 발전 전망에 획기적인 희망을 갖게 하였다.

 

비교적 농사짓기가 어려운 동해안의 금강산 지역을 포함하여 서해지방의 개성 등 두 지역의 벼농사 성과를 보면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30-33%나 증가하였고, 밭작물은 거의 50%의 증산을 기록하였다. 이는 세계적으로 단위면적당 토지생산성이 아주 높은 남한 농업의 생산성에 견주어 약 90% 수준이다. 큰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외에도 3년의 공동협력사업의 결과 2모작이 가능한 면적이 금강산 지역에서만 그 이전에 비해 3배나 늘어났다. 선진농법과 농자재 그리고 농업기계화에 의한 적기적산(適期適産)의 효과이다. 양돈사업을 통해서는 자체적인 유기질 비료(퇴비) 조달도 가능해졌다. 문자 그대로 실락원(失樂園)에 뜨는 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수년간 식량 총생산량이 연평균 450-470만톤에 불과하여 정상적인 식량수요량 650만톤에 크게 미달했으며, 식량자급율은 약 70% 정도(남한은 22.6%)이다. 북한 주민을 근근히 먹여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양곡 비상수요량을 540만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약 1백만톤 안팎이 부족하다. 외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족분의 식량을 제대로 사들여오지 못하는 북한은 해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국제식량계획기구가 보고하고 있다.

 

이러할 때 금강산과 개성지역의 협동농장에서 거둬들인 3년간의 공동협력 성과는 획기적인 희망임에 분명하다. 이같은 협력사업을 북한 전지역의 논과 밭에 적용할 때 북한은 필요한 식량을 거뜬히 자급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협력 상대방에게도 일부 돌려줄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북한은 논면적이 남한보다는 적지만, 밭면적이 훨씬 커서 총경지면적이 남한보다 21만㏊(12.5%)나 더 넓다. 거기에 2모작이 확대된다면 남한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북한주민들을 ‘이팝에 고기국’을 배불리 먹게 해줄 날이 멀지 않았음을 바라볼 수 있다.

 

자, 이쯤해서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왜 남한에는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데도 아사지경의 북녘 땅에 쌀 차관을 계속하지 않느냐는 농민ㆍ시민단체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대하여 아마도 책임회피용으로 대답한듯한 ‘북한의 농업생산 기반을 자립하도록 돕겠다. (2009)’는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고 탁견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의 재임기간중에 비료 한 바가지, 쌀 한 톨도 북쪽에 보내지 않았지만, 그 말씀만은 지당하고 선견지명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경 말씀대로 실천을 해야 말씀이지만.

 

남북간 신뢰는 배려와 나눔,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은 다투어 남북간 화해와 협력등 통일정책을 공약으로 발표하고 있다. 한결같이 거창하고 추상적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해법뿐이다. 구체적으로 1% 그 선행조건(先行條件)이 빠져 있다. 아무나 한번쯤은 해볼 수 있는 말씀들뿐이다. 일찍이 이명박 대통령도 ‘비핵 3000’,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공약한 바 있다.

 

대저 분단된 나라에서 화해 협력 통일을 이야기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간에 ‘신뢰(信賴)’관계를 튼튼히 쌓는 일이 중요하다. 신뢰관계는 단순히 “나를 믿어주세요.”라는 말과 구호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주 오고가고 만나고, 주고 받고 나누는 과정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다. 없는 측에 대하여 있는 측이 먼저 손길을 내밀어 조건없이 나누고 돕는 곳에 믿음이 싹트는 것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불화하던 형제간에도 또는 서로 싸우던 지역간, 계층간,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려(care)와 나눔(sharing)이 먼저여야 한다.

 

평생 남을 도와보지 못했고 평생 대접과 보호만 받아 온 고대광실 귀한 자식들일수록 배려와 나눔을 자칫 “퍼주기”로 잘못 해석한다. 구걸하는 탁발승에게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을 깨뜨리는 망나니들의 사고방식과 언어행동이 다름아닌 ‘퍼주기론(論)’의 표출이다. 그들에게는 비록 배려(配慮)와 나눔이 일방적인 퍼주기로 비칠지 모르지만 꾸준히 계속되면 신뢰가 쌓이게 되고 결국 어떤 형태로건 선의의 보답을 되돌려 받음이 있게 된다. 그것이 신뢰회복의 첫 걸음이다. 일시적인 손해, 일방적인 퍼주기가 마침내 상호간의 신뢰와 이익으로 귀착된다는 것은 성경말씀 말고도 동서고금의 성공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섬김과 모심을 항상 되뇌이는 장로가 아닌 일반 민초들도 배려와 나눔이 화해와 평화의 단초(端初)라는 것쯤은 체득하고 산다. 이 믿음을 부정하고 상업적인 주판을 튀기는 조건부 거래는 스스로 인간(사람이 서로 돕는 사이라는 뜻)임을 부정하는 짓이다. 그래서 시성(詩聖)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더불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는가 보다.

 

배려와 나눔 위에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남북간에 긴요한 협상과 협력이 진행될 경우에야 진정으로 양보와 타협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신뢰 쌓기는 인권과 인도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배고픔과 가난으로부터 해방을 지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회복과 협력을 위한 대화의 재개는 인도주의 차원의 식량ㆍ농업분야의 협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차라리 진리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쪽에도 도움이 되는 대북 농림수산 분야 협력사업들

남북한 간의 신뢰 회복에 있어서도, 또는 거창하고 장기적인 정치 군사 부문의 합의를 위해서도 본질적으로 정치군사적 갈등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도주의적 자세와 민생살리기에 기반한 남북간 식량ㆍ농업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 우선 북한의 당장의 기아문제 해결에 민관이 발벗고 나서는 조건 없는 배려와 나눔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다음이 고기 낚는 방법과 수단의 제공이 뒤따라야 한다. 임기내에 굵직한 업적을 남기려는 정치적 제스처,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든지 남북경제연합 구축 또는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 등은 그 다음, 다음에 협의할 사안이다.

 

2010년의 5.24 조치 해제 여부는 그로인해 도산한 우리측 203개 대북경협 기업체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다룰 문제이다. 평화 프로세스로서의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 역시 신변보장체제를 확실히 한 바탕위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이미 통일농수산 사업단이 금강산과 개성 지역에서 시범을 보인 식량ㆍ농업 협력사업을 북한 전역으로 확대할 의지를 보일 때에야 비로소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신뢰 프로세스’가 형성되고, 문재인 후보가 역설한 5대 협력사업의 추진이 가능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 역시 지속적인 남북한간 식량ㆍ농업 협력의 바탕위에서 선순환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왜들 이런 기본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너무 작은 사안이라고 깔보다가는 1% 부족으로 모처럼 엮은 남북협력의 통나무 통에 물이 새고 깨지기 일쑤이다.

 

이미 중국이 북한의 각종 광산과 광물성 자원을 독점적으로 장악한 배경에는 식량과 농업협력분야에서 북측의 신뢰를 먼저 얻은데서 가능했다. 지금도 나선경제무역지대에선 560㏊(555만㎡)의 농지에 고효율 농업시범지구를 중국의 베이다황(北大荒) 그룹이 지원하고 있다. 신뢰회복의 선행조치들을 하나도 취하지 않으면서 무얼 믿고 우리 통일부는 지난 8월 남북간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였다가 거부당하는 외교적 수모를 받아야만 했는지 그 멘탈리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멘붕(metal breakdown: MB)이 아니라면 왜 그런 사실을 이틀간이나 쉬쉬해 왔는지.

 

남북한간 상호 이익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그리하여 장차 남북 신뢰관계 형성에 근간이 되는 농림수산 분야 협력사업들을 열거하자면 부지기수이다. 앞에 든 다양한 산림분야 협력이 국제적으로 탄소배출권을 우리에게 인정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사례라고 한다면, 국내 환경오염 대처 차원의 대북 유기질 퇴비 보내기 역시 서로 도움이 되는 협력사업이다. 그밖에 남측의 선진 영농기술의 지원, 비닐하우스 고등원예 사업 및 양돈 등 축산분야(한우 및 산양과 양계 등)에서의 협력은 서로간에 이익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북은 남쪽의 쌀농사, 북쪽의 밭농사로 서로 보완관계를 이뤄왔으나, 지금은 거꾸로 상호간에 취약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수산분야 중에서 공동 양식어장 사업은 대단히 유망한 협력분야이다. 남측의 기술과 자재 제공과 북측의 노력 및 무오염의 연안 바다 제공으로 막대한 어패류와 해조류 생산이 가능하다. 그 판매처와 수출 가능성도 막대하다.

 

이렇듯 농림수산 분야에서 남북이 협력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뽕도 따고 님도 보는,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이 수두룩하다. 2008년에 중단된 남북간 농림수산분야 협력사업만 재개하여도 그 확대 지속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의 기온이 세계 평균의 두배 속도로 상승하는 추세하에서 장차 2-30년 후에는 남한의 농림수산업 상당부분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에 대한 기후변화 대책 차원의 농수산업 협력사업도 지금부터 양측이 시작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문제는 기초적인 미시분야 협력사업등 기본에는 취약하고 거대 담론에만 눈이 먼 단세포적 근시안적인 지도자들이 혹시나 대권을 잡고 MB식 허세와 고집을 계속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왜 하필 그런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서 성공한단 말인가. 바야흐로 나라와 겨레의 한반도 진운(進運)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에 달려 있다. 이번만은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ABM(Anything But MB)만 가지고는 아니될 것 같다.

 

김성훈 경실련 전 공동대표·중앙대 명예교수

 

※이 글은 프레시안에 2012년 11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