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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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나는 왜 경실련에서 일하는가?-로즈수녀

경실련 국제연대 로즈수녀 (메리놀 수녀회)


경실련 사무실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노년의 한 미국인이 책상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그들은 내가 카톨릭의 메리놀회 수녀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란다.  최근에 내가 만난 기자는 나에게 물었다: “수녀인 당신이 경실련에서 하고있는 일과 교회의 일은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위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내가 왜 경실련에서 일하려고 했는지를 제2의 바티칸문서에 있는 몇 개의 조항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싶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전세계의 카톨릭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바티칸공의회는 메리놀회 수녀인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현 세상에서의 교회’라는 문서는 그중 특별한 것이었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26조의 ‘공동선을 증진하며’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야한다.

 

즉 의식주와 자기 삶의 형식을 선택하며, 가정을 만들며, 교육을 받으며, 취업을 하며, 명성을 얻으며, 존경을 받으며, 적절한 정보를 얻으며 살 수 있는 권리등이다. 

 

이것들은 진리에 기초를 두어야만 하며 정의에 의해 세워져야 한다.”   
  
메리놀수녀회는 선교 수도회다.  오늘날 우리는 위의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한 사명을 선교의 이상형으로 본다. 이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에 응답하도록 또 지구촌을 건설하려는 우리와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구와도 협력하도록 우리를 재촉한다. 

 

경제정의에 대한 경실련의 공약은 나의 종교적 소명과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 제2의 바티칸 공문을 인용하면: 

 

 ‘그러므로, 직업등과 같은 사회적인 활동과 종교적인 삶 사이에는 그릇된 대립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다:

 

  “현세의 경제사회 개발에 활발히 참여하며 정의를 수호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비록 표현은 다를지라도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을 나는 내게 주어진 특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