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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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남북간 사회-문화 및 인도적 지원, 군사-정치와 분리 대응해야
20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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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사)경실련통일협회 정책위원장,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 이명박 정부 남북 사회문화 분야 공식 교류 단1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 동안 사회문화 분야의 남북교류 현실과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남북관계가 정치적 이슈에 집중되면서 사회문화 분야는 정치 문제에 완벽하게 종속되면서 이슈화되지 못하였고,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고, 절실하지도 않는 통일 이전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존재가 되었다. 2000년 이후 사회문화 분야는 남북관계의 경색 속에서도 남북대화의 창구로서의 역할이나 남북교류의 촉진제로서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회문화 분야는 정치군사적 선제 조건에 밀려 대화의 명분이나, 사회문화 분야는 교류의 명분도 실리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 현황은 통계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통일부 홈페이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사회문화 분야의 회담은 2011년 1월 현재 1건이다. 그 1건은 2008년 2008년 2월 4일에 있었던 ‘베이징올림픽 공식응원단 경의선 열차 이용 관련 제2차 실무접촉이다. 참여정부에서 합의했던 베이징올림픽 공동응원과 관련한 후속 회담이었고, 그나마 별다른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인도적인 분야로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의약품 지원,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정도이다.

당국 차원의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문화 협력 사업 역시 별다를 바 없다. 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사업 통계 상황 역시 당국 간 접촉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10년을 기준으로 통일부의 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사회문화 사업은 150여 개로, 스포츠, 방송, 언론, 복지, 사진, 예술, 산림, 교육, 애니메이션, 종교, 대중문화, 과학기술, 학술, 인도적 지원, 지방자치단체 사업 등을 포괄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신규 사업으로 승인된 건수는 2008년에 3건이었고, 2009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인도적 지원과 통계에 잡히지 않은 교류를 포함한다고 해도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는 안정성은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성과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 진정성과 변화의 동력을 불어넣어야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가 안정성을 잃고 최소한의 동력마저 끊어진 이유는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정치적 문제에 연동되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선제적 조건으로 제시된 정치군사적 의제가 남북교류의 키가 되면서, 교류 창구가 막힌 것이다. 이제 정치적 국면 전환 없이는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도 어려운 선정치군사 후사회문화의 서열관계가 공고해진 것이다.

남북교류의 키가 군사안보로 집중되면서 사회문화의 교류는 문이 열리기를 리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현실적 남북관계에서 사회문화 분야와 군사분야는 무게가 다르다. 차원을 달리하는 이슈에 대해 민간 차원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한편에서 정부는 남북관계 단절의 책임 역시 북한과 일부 진보단체로 돌리고 있지만 민간차원에서 남북교류를 진행할 수 여건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비판은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치군사적 이슈나 경제 분야는 민간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 문제의 이슈 자체가 국가 차원의 문제로 작동될 때 민간단체의 역할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사업의 투명성이나 성과를 평가하는 것과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업을 평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현재의 남북관계에서는 대북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가 있고,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면 정부가 내세운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 역시 당연히 정부의 몫일 뿐이다. 

■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떠나간 심순애

정부에서도 남북한 주민의 행복 추구와 통일기반 조성을 목표로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사업을 지원하기로 방향을 결정하고, 수차에 걸쳐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대화에 앞서 정부는 남북교류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면서 정상적인 교류, 원칙 있는 교류, 진정성 있는 대화의 원칙을 강조하였다.

대화의 ‘진정성’에 매달려 북한의 대화진의 파악으로 시간을 보내고, 원칙있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은 배제되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도 못하였고, 대화의 주체도 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교류 과정에서 지적되었던 문제점들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관행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 교류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화는 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상대가 있고, 정책 목표가 있다면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화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대화를 하겠다는 것 자체를 이념이나 정파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에서 남북교류의 원칙을 고수하고, 진정성을 명분으로 변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는 짝사랑에 불과하다. 대외정책에서 상대방이 진정성을 갖고,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진정성’이란 애매한 기준과 ‘변화’라는 측정할 수 없는 잣대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스스로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정책적 수단을 통해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지,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다고 탓만 하는 것은 정부의 역량과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어린아이의 투정에 불과하다. 진정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진정성과 변화의 동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진정성과 변화를 기다리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망부석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을 넘기면서 분명해진 것은 선택의 시간이 길지 않다. 보다 분명한 목표의식과 역사의식으로 결과로 말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