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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남북관계의 새로운 공간적 전환, 함께 지향하는 평화 ‘의미’의 재발견_장서현 평화연대

남북관계의 새로운 공간적 전환, 함께 지향하는 평화 ‘의미’의 재발견

장  서  현 (평화연대 여성위원장)


평화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문제이자 현실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평화는 개념적 정의를 넘어 남북이 함께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수 차례의 전쟁경험은 종교, 학문,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라는 담론을 형성하였고 급기야 이것은 새로운 세기를 여는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평화’의 궁극은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합의되지 않은 채, 막연히 평화 담론에 긍정하고 그것은 인간사에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라고 전제한다.

21세기는 지구화 시대이며 탈근대를 지향한다. 지구화 시대 탈근대 담론의 가장 주요한 특성은 지난 세기 인류의 사유를 지배해왔던 경계와 배타적 시각에 대한 근본적 반성의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M. Middell과 K. Naumann의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는 말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공간적 전환이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소통 수단의 비약적 발전으로 기존의 공간 구획이 무너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상호연관성을 경험하게 됨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전환은 세계가 새로운 차원의 가치 융합을 이루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부응하여 우리는 ‘평화’의 ‘개념’을 좀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로 재고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서있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오랜 숙원인 통일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도 남북이 함께 합의할 수 있는 평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평화’라는 용어는, 여느 다른 사회과학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서구의 개념과 용어 ‘Peace’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번역어’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서양이라는 독특한 역사문화 속에서 요청된 ‘peace’라는 단어가 갖는 문화규제력이 오늘날 하나의 문화보편자, 즉 문화 생활에서 지구 사회적 차원에서 인류가 공유하는 개념 으로서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Peace’의 개념은 서양 그리스도교 문명권에서 말하는 정의의 실현(평화를 위한 전쟁),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질서유지(pax Romana)라는 정치적이고 다분히 갈등적 세계관이 반영된 제한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공간적 전환의 핵심은 새로운 소통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있다. 이는 남한과 북한이 함께 공감하는 평화의 의미 또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하나의 민족으로 화합해 나가는 것에서 발견해야 함을 의미한다.


남북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 방법이나, 시기 그리고 합의의 수준 등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남북의 통일을 논하는데 있어 평화라는 것이 ‘배제를 위한 개념’으로 접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통일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문제이자 현실에 기반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의 과제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있어 평화는 남북이 함께 지향 할 수 있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