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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내가 주택운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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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택운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최승섭 부동산·국책사업팀 간사


요즘 상반된 두 가지 한숨 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치솟는 전세값에 신음하는 동년배 신혼부부들, 다른 하나는 떨어지는 집값을 걱정하는 기존 기득권 투기세력이다.(모든 주택소유자가 투기세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얼마전 대학 때부터 바른생활 사나이라 불렸고 현재 대기업에 근무하는 속칭 잘나가는(?) 후배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날 들은 의외의 소식. 후배는 부끄러운 듯 얼마전 집을 샀다고 고백했다. 서울 외곽에 재개발이 예정된 빌라를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들의 필수 조건 투기. 아직 나보다 어린 나이에 몇 천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구했다는 것도 놀랐지만 평생 바르게 살 것 같았던 후배가 투기라니… 일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투기를 생각하게 만든 주범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니 측은함이 뒤이어 밀려왔다.

요즘 주택 운동을 한다고 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집값 떨어지고 있는데 무슨 집값 거품을 운운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인 직장에서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대출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후배와 달리 그 외 대다수 젊은이들은 평생 집을 살수 있을지 고민한다. 오죽하면 집문제로 결혼을 미루는 커플들이 넘치겠는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용어지만) 흔히 세상을 바꾼 세대라고 부르는 386세대는 우리나라에 민주화만을 몰고 온 것이 아니다. 조기유학과 부동산 투기를 소수의 재벌이 아닌 전반적인 모든 사람들이 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자신들의 부모, 옆집 아저씨가 부동산으로 돈 버는 모습은 그들에게 부동산 불패신화를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부동산 가격의 하락 속에 하우스푸어라 불리며 신음하고 있다. 보금자리 주택으로 지정된 고양, 과천, 강남 일대에서는 원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추태를 보인다고 한다. 임대주택 정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입주민들의 출입을 막았던 씁쓸한 과거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비록 지금의 보금자리 주택마저도 비싸고 로또 아파트라는 비판도 있지만 일반주택을 살 수 없는 서민들에게는 유일하게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집을 소유 보다 주거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투기를 위한 다주택자들의 소유욕이 문제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단순 소유욕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는 ‘주거를 위한 소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정상적인 집값은 임대하고 싶은 사람은 임대하고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능력껏 소유할 수 있는 가격대가 형성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간 전세시장은 말 할 것도 없고 무주택자들을 위한 공공 임대마저 아파트의 원가가 아닌 주변 시세에 따라 임대료가 정해지고 있다. 과천에 직장이 있어 과천에 공공임대 주택을 얻고 싶어도 주변 시세에 연동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싼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아직 주택운동이 필요하다. 지금 가격이 하락한다고 아우성인 집값은 여전히 정상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청년들이, 또 그들의 자식들이 원하는 지역에 소유를 원한다면 집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에 살지말고 지방에 싼 집을 사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보지 못한 외눈박이 충고일 뿐이다. 모든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을 수도권으로 집중시켜 놓고 후대 세대에게는 서울 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그런 말은 최소한 균형적인 지역 발전을 시작이라도 하고나서 말해야지 여전히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는 현실에서는 공허한 자기만족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집을 임대를 통한 주거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거든 소유든 내가 노력을 통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개인과 사회의 인식 변화와 함께 집값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하락해 정상적인 집값이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는 주택운동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