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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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누구를 위한 오락인가

1. 들어가는 글


TV가 갖는 가장 큰 기능은 오락이다. 교양이나 정보전달의 기능을 주요한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의 편성을 보면 오락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말 저녁을 채우고 있는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들은 만능 엔터테이너란 미명 하에 10대들을 팬으로 두고 있는 많은 스타들이 나와 자신의 개인기를 자랑하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요즘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누구를 위한 오락인지 의문이 든다. 출연자들끼리의 친분관계를 드러내면서 자기들끼리 웃고 즐기는 모습을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하는 양 내보내고 있는 TV를 보면 시청자는 그저 스타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해야 하는 매우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매번 같은 연예인들이 비슷한 오락프로그램에 비슷한 시간대에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오락이 아니라 이미 싫증을 넘어선 짜증이 되고 만다.


시청자에게 있어 오락프로그램은 대리만족의 역할이다. 고단한 일상을 달래는 수단으로 또는 무료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TV의 오락적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MEDIA-WATCH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주말 저녁 시간대의 오락프로그램을 분석, 시청자가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하고 참신한 오락프로그램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2. 분석대상 및 기간


● 분석기간 : 2월3일 -2월18일
● 분석대상 : KBS1 <가족오락관> 토요일 오후 6시-7시 방영
             KBS2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오후 6시20분-7시50분
             MBC <목표달성 토요일> 토요일 오후 6시 10-7시 50분


3. 분석내용


(1) 그들만의 놀이, 소외 받는 시청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버라이어티쇼가 이제는 일부 스타들의 친목모임에 카메라만 설치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것이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다. 물론 AFKN에서 방영되었고 현재 케이블방송에서 수입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옮겨오긴 했지만 그것처럼 치열한 생존경쟁은 사실 없다. 단지 연예인들이 대거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합숙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그 안에서 탈락자를 한 명씩 선정하는 형식을 띈다.


진정한 서바이벌의 의미나 포맷의 모방에 대한 지적을 떠나 여기에서는 스타군단들의 그 놀이의 장에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록 TV가 전형적인 일방향성 매체라고는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것을 보는 동안은 일정정도의 감정이입이나 개입이 생기기 때문에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시청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생각이나 느낌이 없이 그저 내보내는 화면만을 본다면 그건 시청이 아닌 단순한 응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보면 그러한 시청에 있어서의 개입 여지가 없다. 참가한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게임에 임하고 게임이라는 것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증폭시키거나 함께 퀴즈를 맞히는 즐거움을 주는 대신 정말 수준이하의 퀴즈를 통해 말장난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게임에서이기고 지는 것이 탈락자의 선정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게임자체를 즐기기보다 ‘튀는 행동’으로 재미를 선사하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등장한다면 그나마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청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장한 시시한 놀이의 장에서 대거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모습만을 응시할 뿐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다.


(2) 생각없이 즐기라(??) – 자막공해


오락프로그램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자막 역시 시청자를 소외시키고 있는 현상이다. “시각이 7 청각이 3”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막은 소리에 비해 감각적으로 훨씬 우세하다. 따라서 자막을 통해 시각적으로 상황이나 대사를 인지하게 되면 출연자의 목소리나 음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상태가 된다.


자막은 원래 청각장애자나 노인 그리고 발음이 분명치 않거나 녹음의 상태가 좋지 못할 때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매우 사소한 농담에서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은어까지도 자막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출연자의 표정과 의성어나 의태어까지도 친절(?)하게 자막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연자들의 심리상태까지 중계하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 시청자들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빼앗고 프로그램 내용의 집중도를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생각을 방송자막으로 획일화시켜 결국은 시청자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자막이라는 시각적 자극을 먼저 받고 나면 시청자의 생각은 거기에 멈추고 만다. 더 이상 자기 생각을 할 여지가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는 또다시 프로그램으로부터 개입할 여지가 없이 소외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막사용이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되는데 그치지 않고 연출자가 억지로 시청자들의 웃음과 흥미를 끌어내기 위한 주요 제작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막활용을 가장 왕성하게 하는 곳은 일본의 민영방송으로 최근 한국방송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일본의 영향 탓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오락성 자막 활용은 무리한 시청률경쟁으로 일본방송을 모방하고 현란한 편집과 소수 스타급 연예인에 의존하는 일반적인 현상 중 가장 손쉽고 비용이 적은 편집에 치중한 결과로 보여진다.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는 문제이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자막처리는 이제 고질병이 되고 있다. 교양프로그램(우리말 나들이, 바른말 고운말)에서는 아나운서들이 나와 표준어에 대한 친절한 교정을 하는데 오락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의 심리상태까지도 자막으로 남발하고 있어 교양과 오락에 대한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방송의 이중성과 무책임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3) 출연자도 지치고 시청자도 지치고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Stand By Cue !공익광고를 제작하라’는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고 바른 모습을 보이기 위한 공익광고를 몇 명의 연예인들이 출연해 99초안에 NG없이 제작하는 코너이다. 공익광고를 제작한다는 기획의도와 자세는 물론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광고제작과정에서 99초안에 한번의 NG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20-30회를 처음부터 계속 반복하는 과정은 보는 이를 매우 지루하고 지치게 만들고 있으며 출연자들도 혹사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출연자들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단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청자들에게 가학적인 형태의 즐거움을 주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마지막에 다함께 공익적인 대사를 함께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앞의 과정들을 보면 도대체 공익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아프로그램이 아님에도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청자들의 수준을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4) 만능 엔터테이너만이 살아남는다 – 개인기 열풍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만능이 되어야 한다.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요 연기만 잘한다고 연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대모사는 기본이고 여기에 덧붙여 자기만의 개인기를 개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쇼․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들이 본업과는 상관없는 개인기를 중심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청소년들의 문화와 의식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데 “목표달성 토요일”의 ‘악동클럽’은 그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기 열풍은 몇몇 다재다능한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끼를 보여주는데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프로그램 제작진에 의해 강박적으로 개인기를 개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개인기로 표현되는 모창, 흉내내기의 남발은 연예인 고유의 색깔을 퇴색시켜 자기 분야에 충실한 진정한 엔터테이너의 양산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TV 오락프로그램은 일회적인 성격의 쇼와 보여주는 재미만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5) 장수하는 오락프로의 비결 – 가족오락관


앞서 지적한 프로그램들 외에 KBS의 장수 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은 대표적인 오락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조금은 구태의연해 보이는 남녀의 편가르기 대결이지만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출연자, 방청객 그리고 시청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연자들과 방청객이 함께 게임에 참가하고 시청자들은 게임을 보면서 함께 문제를 맞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타 오락프로그램에서 남발하고 있는 자막의 사용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는 점도 칭찬할 만 하다.


출연자의 연령도 다양하여 현재 활동이 뜸한 중견 연예인부터 요즘 인기 있는 신세대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팀의 구성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철저히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는 10대위주의 오락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는다.


물론 적극적인 주부 방청객의 과장된 행동이나 연장자격인 출연자들의 안하무인격인 말이나 행동들이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만 노련한 진행자의 진행과 게임방식 등은 집단패널제를 선호하고 가학적인 행위나 스타 지켜보기(?)로 일관하는 여타의 오락프로그램에 비해서 오래된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선함을 주고 있다.


무조건 새로운 것만이 대안은 아니다. 오랫동안 보아도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은 기대하는 것이다.


4. 결론 및 제언


단지 스타시스템에 의존하여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는 결국 시청자를 철저히 소외된 바보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소위 잘나간다는 연예인들만을 단기간에 지속적으로 중복 출연시키는 행위는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의 밑바닥을 드러내어 결국은 연예인들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되어 연예인들은 한 때라는 생각에 한번 스타의 대열이 오르면 혹사를 당하면서도 출연제의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방향 매체이지만 시청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쌍방향을 원하고 있다. 단순한 화면의 응시가 아니라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다. 화면속의 이들이 즐겁게 희희락락하고 있으면 보는 이도 즐거울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이제 접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참여가 쌍뱡향을 유도하고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의 장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참여는 TV시청의 이후에 이루어지는 사후작업일 뿐 시청하는 동안의 공감대형성이나 감정적인 개입과는 무관하다.


무조건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10대를 위한 오락 프로그램일지라도 그들에게 다양한 재치와 즐거움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오락프로그램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