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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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뉴 삼성 플랜에 대한 기대와 우려

권영준 경실련 중앙위원회 부의장·경희대 국제경영학부


삼성그룹의 광고는 그룹의 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국내 모든 분야에서 최고이자 적어도 외형적 글로벌 전략을 과시하던 때에는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였다. 김용철 변호사의 그룹 비리 폭로와 특검 수사 이후로 어려워진 그룹의 정서를 나타내는 요즈음의 광고 카피는 ‘힘들지? 힘들지 않습니다. 외롭지? 외롭지 않습니다’인데, 이는 해석에 따라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5일 삼성그룹은 4월22일 발표한 그룹 쇄신안에 대한 후속조치를 밝혔다. 7월부터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대신 사장단협의회 및 그 산하의 투자조정위원회·브랜드관리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뉴 삼성호’를 출범시킨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시중언론의 평가는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전문 경영인 중심의 책임 경영이 강화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단기 성과에 치우쳐 장기 투자에 소홀하거나 경영권 위협에 취약할 수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에 출범하는 이른바 ‘뉴 삼성플랜’이 삼성의 기업 문화와 DNA를 바꾸는 것인지 여부다.


만약 ‘뉴 삼성플랜’이 과거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재벌들처럼 ‘총수가 없는 사장단협의회를 통한 조정’의 일본식 기업집단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이는 가히 혁명에 가까운 것인데, 그러기에는 준비 기간도 턱없이 짧고 총수 일가와의 관계나 후계자 정리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일본식 체제 전환은 결코 아니다.


최근에 삼성전자와 소니를 직접 비교했던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성의 문화는 지난 50년 동안 총수 – 비서실(구조본, 전략기획실) – 계열사로 이어지는 일종의 강력한 군대식 공포경영(Fear-based management)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반면, 소니는 개방적이고 분산된 기업 지배구조(dispersed corporate governance)를 갖고 있어서 근본적인 문화 차이가 크다. 즉, 삼성은 실제로 기업 문화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는 총수와 잘 맞아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신속한 의사결정의 스피드 경영으로 인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낸 것이 사실이다.


시가총액으로 비교할 때, 1997년에 소니의 9분의 1에 해당하던 삼성전자가 2002년을 기점으로 소니를 완전 제치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그룹 의사결정의 구조 차이로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삼성그룹의 1인 지배와 이를 뒷받침하는 친위부대의 조합이 가져오는 경영의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총수 위주의 대기업집단 경영 체제가 갖고 있는 종합적 사업 포트폴리오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총수 일가의 막강한 권한에 비해 이에 걸맞은 책임이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추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한 뉴 플랜은 권한과 책임의 등가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가. 외형적인 지배 구조상으로는 그럴 듯한 모양으로 보이지만, 실질적 후계 구도상의 문제로 인해 지배 구조상의 등가 문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이번에 삼성이 발표한 뉴 플랜으로 인해 오히려 문화와 DNA는 전과 똑같은데, 문화와 리더십 간의 괴리 문제로 인해 그룹 경영의 의사결정에 마이너스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이같은 우려를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지주회사 전환 등 법적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지배 구조로 투명하게 전환하는 길만이 장기적으로 삼성도 살고 국민경제도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으로 삼성이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지우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빛의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 이 글은 문화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