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활동가이야기] 다시 힘을 얻고
200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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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주어지지 않은 글을 써야 하는 건 무척 난감한 일이다. 더구나 이름이나 얼굴조차 모르지만, 내가 하는 일을 소리 없이 도와주고 있는 많은 회원들과 접하는 지면이기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우선은 이런 저런 생각할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약 5년 전 경실련에 처음 들어 왔을 때를 떠 올려 본다. 그 때의 나는 누구처럼 학생 운동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시민운동’이란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좋은 일을 하는 곳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발을 디뎠었다. 각 단체마다의 특성이나 활동에 대한 이해보다는 막연히 시민단체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들고 오는 안타까운 이들보다도 의식 없고 무지한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 2년 여 동안 정책실에서 일하면서 사회의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던 나의 생각과 주장이 일정한 과정을 거쳐 다듬어지고, 좋든 싫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곳이 있고, 또 사회가 바뀌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한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다른 데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경실련에 있게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사업에 조금 익숙해지자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기 어려운 정책 중심의 경실련 운동에 회의가 생기고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여기에는 김현철 비디오테잎 사건 등을 겪으면서 경실련이 입은 상처의 후유증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힘든 것이어서,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많은 염려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활동 영역이 아닌 지원 부서에 있으면서 경실련이라는 조직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가질, 그리고 조금은 떨어져서 경실련 운동을 생각할 기회를 갖기로 했다.


기획조정실(지금의 사무처)로 자리를 옮겨 다시 2년 여 동안은 여러 가지 잡다한 살림살이와 총무 역할을 하는 것이 귀찮고 번잡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조직시스템ㆍ재정ㆍ인력(임원과 전문가 집단 및 상근자)관리ㆍ상근자 교육 및 복지 등 시민단체 관리부문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며 조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도 이제는 시민운동 초창기 때와 같이 인적ㆍ정적인 방식이 아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랜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창립 14년 만에 경실련만의 내 집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다. (그 동안 말없이 지켜보며 심적, 물적으로 도와준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경실련 운동에 대해서도 그 안에 푹 빠져 있을 때보다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과 함께 그 특성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경희대 NGO대학원에서 단체장학생으로 공부하게 되면서 그 동안의 두서없는 생각들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접하며 시민사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2004년 1월, 창밖으로는 아직 한겨울이라는 걸 일깨우기라도 하듯 매서운 바람이 간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두 달 남짓 있으면 또 천연스럽게 봄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의 나는 한 사람의 시민운동가로서 부족하고 가야할 길도 멀다.


조직적으로도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 시민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운동 모색, 신뢰와 활기가 넘치는 문화 만들기 등 해결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문제에 직면할 때 의기소침하고 회의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쳐 가려는 에너지가 내 안에 생겼음을 느낀다. 우리 소유의 새 공간, 간사 출신의 새 사무총장, 의욕 넘치는 새 임원들만이 그것을 만들어 준 게 아닐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여러 장애에 부딪칠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또 고민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은 누구도 아닌 나에게서 나올 것이다.


올 한해 나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에 대해 성과는 기뻐해 주고 과오를 비판하되 믿고 아끼며, 잘못한 것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면서 책임을 지는 사람,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또 그런 사람들과 신명나게 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1월27일)


서희경 (사무처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