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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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의 종주국 영국이 가장 기특해 하는 나라가 있다. 얼마 전까지 초지일관 억척스럽게 그린벨트 정책을 고수해온 한국이다. 한국은 1971년 대도시 인구 억제 차원에서 영국의 그린벨트 시스템을 본 따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한 이래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이 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한국의 그린벨트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1999년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린벨트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정부는 서민주택 건설, 경기활성화 등 다양한 명분으로 그린벨트를 훼손해왔다. 그린벨트를 푸는 것이 겉으로는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정책이라는데 과연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2014년 3_4월호 - 그림1.영국 Reigate(런던 남부외곽) 주변의 그린벨트 (사진-CPRE).jpg
▲ <그림 1> 런던 남부 외곽지역에 위치한 라이게이트(Reigate)지역의 그린벨트 전경. 도시확산을 방지하고 신선한 공기와 레크리에이션이 가능한 오픈 스페이스를 제공해주는 그린벨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사례이다. (사진: CPRE)
그린벨트 왜 필요한가?
도시계획 교과서에 쓰인 그린벨트의 기능과 필요성1)은 이러하다. 첫째로 기성시가지가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이다. 대도시의 외곽은 항상 도심으로부터의 개발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적절한 보호 장치가 없으면 계속해서 도시가 확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도시인프라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린벨트라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둘째로 도시들이 서로 붙어서2) 거대도시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이고, 셋째로는 대도시 주변의 농촌지역이 침식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이다. 한마디로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허파로서의 기능과 ‘오픈 스페이스’를 제공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린벨트가 꼭 필요한 셈이다. 넷째로 그린벨트가 도시의 팽창을 억제해 그 도시 고유의 특징을 보전하는 기능이다. 마지막으로 도시 내부 노후지역의 재생을 촉진하는 기능이다.
1) 영국의 도시계획정책지침(Planning Policy Guidance)에 게재된 내용이기도 하다.
2) 이를 전문용어로는 도시연담화(都市連擔化, conurbation)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팽창 일변도의 도시만 경험했기에 도시확장과 연담화를 방지하는 기능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인구정체로 인한 도시재생이 중요해진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리보다 먼저 도시화를 경험하고 또한 도시쇠퇴를 경험한 영국이 강조한 그린벨트의 도시재생 촉진기능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영국 그린벨트의 역사와 그린벨트 관리정책
영국이 런던주변에 그린벨트를 두른 것은 1580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역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3마일(약 5㎞)의 벨트를 설정했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그린벨트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전원도시를 주창한 에베네저 하워드 경(Sir Ebenezer Howard)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전원도시는 자급자족이 가능해야 하고 주변지역과 연담화되지 않도록 그린벨트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고, 주거와 공업 그리고 농업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오늘날의 대도시권역에서 볼 수 있는 그린벨트는 1938년 관련 법령(Green Belt Act)에 따라 런던시와 쉐필드시 주변에 처음으로 지정됐다. 1947년 도시 및 농촌계획법(Town and Country Planning Act)에 지자체가 토지이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1955년에는 지방정부가 그린벨트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린벨트 정책이 완성됐다. 초기의 그린벨트 정책은 1955년 “회람(circular)42/55”라는 이름으로 입안됐고, 33년이 지난 1988년 PPG2(도시계획정책지침 노트2;Planning Policy Guidance Note 2)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후 1995년과 2001년에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2014년 3_4월호 - 그림2.영국대도시와주변의그린벨트지정현황.jpg
▲ <그림 2> 영국 대도시와 주변의 그린벨트 지정 현황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2014년 3_4월호 - 그림3.런던주변의그린벨트현황도(사진-InteractiveTelegraph).jpg
▲ <그림 3> 런던주변의 그린벨트 현황도(사진-InteractiveTelegraph)
영국도 하루아침에 그린벨트를 만든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년간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영국의 지방과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운동을 벌인 결과 그린벨트 정책이 채택된 것이다. 현재 영국 전국토의 13%에 해당하는 160만㏊(1만6,000㎢)가 그린벨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그림 2, 3)
영국의 그린벨트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강조사항은 개방성(openness)과 불변성(permanence)이다. 개방성은 투명한 정책결정과정을 말한다. 즉 그린벨트를 변경하려면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고, 그 결과 그린벨트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주무부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불변성은 정책유효기간과 관계가 있다. 그린벨트 계획의 유효기간을 일반 도시계획이나 지역계획의 유효기간보다 길게 설정해 도시계획이나 지역계획을 갱신할 때 그린벨트 계획을 임의로 변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변경할 경우 변경 이력을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개발이 꼭 필요한 경우 개발한 면적만큼 그린벨트 외곽지역의 면적을 늘려야 한다.
1995년 정책지침 개정시 그린벨트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여가활동을 증진시키거나 경관을 향상시키는 등 순기능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린벨트의 종주국인 영국도 개발압력 때문에 그린벨트를 훼손하려는 정책이 때때로 입안되곤 한다. 양당제도가 잘 정착된 영국의 의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심도 깊은 논의를 하지만, 영국의 시민단체들3)은 그린벨트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정책에 대해서도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특히 훼손되는 면적만큼 다른 곳에 녹지를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그린벨트 지역 개발 계획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자, 그린벨트 존립자체를 위협할 수있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3) 대표적인 단체로 CPRE(Campaign to Protect Rural England)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무분별한 도시확산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1926년에 결성한 시민단체이다. (http://www.cpre.org.uk)
한국 그린벨트의 변천사
우리나라의 그린벨트는 개발제한구역이라는 명칭으로 입안되어 1971년 7월 수도권에서부터 지정되기 시작하여 8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도시권에 전국토의 5.4%에 해당하는 5,397㎢가 지정되었다. 초기에는 대도시의 인구 억제가 주목적이었으나 자연환경의 보전이나 공업단지와 주변지역과의 차단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확대됐다. 지정 당시 짧은 기간에 넓은 면적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하다보니 현장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하고 지정해 이미 시가화된 지역이 포함되기도 하고, 하나의 건물이 절반은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되고 나머지는 제외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수많은 민원이 제기됐지만 1997년 7월까지 한국의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단 한번의 구역변경 없이 원안대로 유지됐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2014년 3_4월호 - 그림4.수도권의개발제한구역현황.jpg
▲ <그림 4>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 현황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후보가 내건 그린벨트 해제공약 때문이었다. 이 공약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집권이후인 1998년 각계 전문가들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했고, 이듬해에 ‘개발제한구역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7개 중소도시권에 설정되었던 개발제한구역은 전면 해제, 7개 광역도시권은 부분해제했다. 해제된 지역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산업단지 조성, 관광단지 개발 등 국책사업용지로 전환되어 다양한 개발이 이뤄졌다.
영국 전문가들의 한국 그린벨트 제도에 대한 진단
당시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영국의 도시 및 농촌계획학회(TCPA: Town and Country Planning Association)에 우리나라 그린벨트 제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의뢰했다. 1999년 6월에 발표된 이 연구의 결과를 보면 1)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며, 2)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은 필요하지만 개발제한구역만 조정되어서는 안되며, 한 번 조정되면 추가조정 없이 오래 지속되어야 하고, 3)광역자치단체 및 기초자치단체들의 그린벨트 관리능력이 향상되어야 하며, 4)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그린벨트 방안이 기초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지속되고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린벨트 종주국 전문가들의 진단내용을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2번과 3번 및 4번의 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았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개발제한구역이 변경됐고, 지자체와의 협력 보다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의해서 구역변경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으며, 여전히 지자체의 관리능력은 미흡한 상태에 있다.
그린벨트 논쟁의 쟁점과 앞으로의 운명
그린벨트가 과연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가, 해악이 되는가의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린벨트가 도시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도시내부의 토지이용이 고도화되고 도시재생이 활성화되어 지속가능한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가용지 고갈로 인하여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비지적(飛地的)개발4)과 같은 기형적 개발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4) 영어로 ‘leapfrog development’라고 하며 개발압력이 증가하면 그린벨트 지역을 뛰어넘어서 개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구리가 팔짝 뛰는 모양으로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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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5>서울시 은평구의 그린벨트지역과 기존 취락지 현황
한국의 그린벨트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그린벨트제도의 미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미래 세대에 고통을 안겨주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이듯이 그린벨트도 미래 세대가 필요로 하는 땅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당장 임대주택이 필요하고, 산업단지가 필요하지만 한 번 훼손한 그린벨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하다면 그만큼의 새로운 그린벨트를 추가 지정하는 영국의 지혜를 본받고, 한 번 변경하면 추가 변경 없이 오래도록 지속시켜야 한다는 영국 전문가들의 권고를 새겨들어야 할 시점이다. 그린벨트의 변경이 우리를 위한 것인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인지 분명히 생각하자.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