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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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독립·중립’ 지킬 인사 뽑아라

차기 한은 총재 누가 적합한가



 권영준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도요타 사태로 전세계에 난리가 났다. 미국에서는 의회 청문회 개최를 비롯해 집단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일본은 뒤늦게 언론들이 비판에 나서는 것과 함께 실패의 본질을 찾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보고서 우리 기업들의 앞날에 대해 우려하는 사전 경고음이 많은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더 크게는 국가 경영에서도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을 뒤돌아보면 진보 정권의 무능도 있었지만, 자동차로 치면 시속 30Km만 가도 밟아대는 각종 브레이크가 사회 곳곳에서 난무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보수 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방송과 인터넷,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통치 수단인 4대 권력 기관조차도 시시때때로 브레이크를 밟아댔던 것이다.


 보수 정권인 MB 정부가 출범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했던가. 압도적 과반수로 여의도를 장악한 이후, 지난 정부들과 달리 우리 사회의 수많은 브레이크를 잠재우고 그동안 멈칫했던 엑셀을 총가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잠시 사나운 촛불에 데여 움찔하기는 했지만, 이내 신문과 방송 매체, 곳곳에서 급조된 시민단체의 협력까지 이끌어내 모두 성장(엑셀)의 역군으로 기능하도록 역할 재조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브레이크(비판 세력)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가 과연 좋은 것인가. 더욱이 우리 경제 앞에 놓인 길은 곳곳에 바위가 굴러 떨어질 수 있는 험로인데, 그저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좋은 것인가. 지난 경제 위기 가운데 법적 소신과 달리 가슴앓이를 하며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당국자는 한은 총재였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법으로 효율적인 통화 신용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은의 정치적 독립성과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 신용 정책의 중립성이 요구되고 있고, 우리 사회가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국제 금융 위기의 불똥이 국내 경제의 취약성과 맞물려 내부 위기로 확산되는 와중에 한은은 존재 이유를 자주 훼손당하는 아픈 경험을 했다. 물밑에서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같은 내용의 통화 신용 정책을 발표하더라도, 그 주체가 한은이 되는 것과 정부가 앞서서 주체가 되는 것은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정부의 성장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한은의 물가 안정 정책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나서서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우리의 금리 수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한은은 물론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 말할 수 있고, 전문성 뛰어난 사람이 ‘적임’


 지난 2년 동안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을 현 이성태 총재가 드디어 국회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 경제가 정부가 말하는 것보다도 가계 부채발 위기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 물가 상승의 조짐이 있어 정부의 바람과 달리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언급했다. 비록 참여정부 대통령이 임명한 총재라는 한계는 있었겠지만, 임기 말에 와서야 한은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무척 아쉬우나, 그래도 다행이다. 자동차가 아무리 잘 달리고 이상이 없어도 브레이크는 속도 조절과 균형을 위해 부드럽게 가끔씩 밟아주어야 한다.


 민주화의 물결과 더불어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하적 평판을 받았던 한은이 중앙 은행으로서 물가 안정을 위한 정치적 독립성과 정책적 중립성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합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총재와 임직원 등 한은 구성원들이 밥그릇 키우기 식의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법에서 부여한 설립 목적을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 언론들은 현실적 가능성을 중심으로 신임 한은 총재에 대한 하마평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은 총재로서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멸사봉공의 검증된 소신을 중심으로 하마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관계에 모든 초점이 가 있는 현실이 무척 서글프다. 새 한은 총재가 임명되면 당장 해결해야 할 한은법 개정 문제를 국민 경제의 건전성이라는 차원에서 소신 있게 풀어나갈 능력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지금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진통을 겪고 있는 한은법 개정안은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간 마찰을 넘어 각종 이해 관계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 있어 난마와 같은 상황이다. 국민 경제를 위해 금융 안정 기능 추가와 단독 검사권 문제를 지혜롭고 소신 있게 풀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


 둘째, 한은 총재는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내 중앙 은행 총재들과 수시로 교류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전문성과 언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금융 시장의 위기 전파 과정은 분초를 다투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수시로 통역 없이 선진국 중앙 은행 총재와 금융 정책을 협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은폐·엄폐되고 누적된 한은의 구조적 비효율성에 대해서 과감하게 개혁할 수 있는 소신 있고 깨끗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부터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여론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올해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대통령도 친소 관계를 떠나 불편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통화 금융 분야의 소신 있는 전문가를 한은 총재에 임명하는 새로운 역사를 써 간다면 청계천보다도 훨씬 멋진, 우리 경제·사회를 업그레이드하는 치적으로 남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24일 시사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