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돈 주고도 욕먹는 ‘대외 유상원조’

이태주 (경실련 ODA Watch 실행위원 / 한성대 문화인류학 교수)


식민지 지배와 전쟁, 기아와 가난, 냉전과 군사독재로 얼룩졌던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의 기적을 만들더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 글로벌 리더 국가로 주목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분쟁.환경.개발.인권.빈곤퇴치와 같은 지구촌 문제에 더 적극 참여하고 국제개발원조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유엔 설립 목적처럼 개발원조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지구촌 공동의 책무다. 그래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정하고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대외 원조 논의는 아주 편협하고 지나치게 국익 중심적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식 모델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상업적 동기가 우리 원조에도 지나치게 강하다. 무상원조보다 차관원조가 기형적으로 더 많다. 거의 모든 원조가 우리의 상품, 자본, 기술 수출과 연관된 조건부 원조다.


원조정책, 관리 시스템도 차관사업과 무상원조를 분리, 시행하고 있는 일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가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따로 따로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재경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이용한 차관원조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국익을 우선 생각하는 타당한 논리 같지만,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원조의 질은 매우 낮게 평가되고 국가 신뢰도를 높이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유엔의 MDG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원조 규범과도 상치한다. DAC의 선진 공여국들이 개도국에 제공한 원조 총액의 90%가 무상원조다. 일본과 몇 나라를 제외하면 차관원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는 개도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가장 큰 장애인 부채도 조건 없이 탕감해 주는 데 합의하고 있다. 또 최빈국에 대해선 비조건부(untied) 원조만을 제공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런 추세인데도 유독 한국은 일본이 비난받는 상업적 동기의 차관원조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한다. 개도국에는 부채가 가중되고, 원조의 질이 낮아 원조를 주고도 비난받는 일본 꼴이 될까 심히 걱정된다.


지난해 우리의 대외 원조 규모는 7억5000만 달러로 국민 1인당 연간 15.6달러였다.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다. 앞으론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한국의 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하는 개발원조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원조의 양적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다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한국적 원조를 통해 원조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일본의 상업적 원조 모델을 더 이상 추종해서는 안 된다.


원조는 국격(國格)과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지식산업이고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는 최고의 외교 전략이며 미래세대에 대한 장기적 투자다. 근시안적인 상업주의 대신 긴 안목에서 미래지향적이고 통합적인 국제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