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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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동숭동 책방골목] 바람 부는 가을엔 사랑이다

 바람 부는 가을엔 사랑이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북폴리오

 

박지호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jhpark@ccej.or.kr

 

가을엔 소설이든 시이든 종이 가득한 활자들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흡수된다. 오랜만에 사랑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자 전 세계를 휩쓴 연애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10대들의…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속 두 주인공은 죽어가고 있다. ‘헤이즐 그레이스 랭커스터’는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시험약품이 기적적으로 몸에 맞아 생명이 연장되어 살아가고 있다. 코에 호스를 달고 산소공급기를 늘 동반한 채로 말이다. 그러던 중 암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경쟁하는 서포트 그룹에서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골육종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잃은 후 의족을 차고 다닌다.

 

이렇게 조금 불편한(?) 생활 속에서 죽음이 누구보다 가까이하고 살고 있는 이 10대들은 그 누구보다 태연하고 의연하고 담담하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그들이 갖고 있는 시간의 총량이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허겁지겁 경험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그런 풋내나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이 책은 암에 걸린 주인공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의 형성, 교감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져 추억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를 먼저 접한 후 책을 읽게 되어 그 감동과 슬픔의 느낌이 온전히 느껴지진 않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새겨나간 시간들은 어딘가 숨겨져 있는 ‘마음’이란 것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매시간 속에서 감정에 솔직하고 남에 대해 이해하는 노력을 하며 살고 있지 않다. 우린 참 아름답지 못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시간의 총량은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무한대’는 아니다. 한정되어 있는 시간 속에 무한대의 영원함을 느끼는 것은 무한대로 치닫는 사랑의 모순에 빠지는 것뿐이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들의 시간은 지독하리만치 짧다. 누구의 말마따라 우물쭈물하다가 나중에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후회만 하고 말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지인들과의 토론 속에서 난 매우 냉소적으로 다시는 이들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 불가능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이들의 모습이 그립고 부러웠다.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 지는 고를 수 있다.” 나에게 상처를 줄 사람을 고르지 못한 모습이 슬프다. 사랑의 계절인 가을에도 그 상처에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한 내 모습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