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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동숭동 칼럼] 촛불과 시민운동 /고계현 (경실련 前 사무총장)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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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후세에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지도자를 뜻하는 혼군’(昏君) 또는 암군’(暗君)으로 기록될 듯하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루이14세처럼 권력을 사유화하고, 업무공간인 집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은 채 관저에서 내시에 둘러싸여 여왕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주권주의에 따른 민주적 대의제에 전혀 맞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국민들은 광장에서 평화적인 촛불로 저항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헌법조항을 화석화시키지 않고 직접 실천하였다. 훗날 역사는 국민 저항권에 의한 명예혁명으로 지금의 상황을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투쟁의 현장에서 시민운동은 초라하고 왜소하다. 국민들의 도도한 흐름에 떠밀려 참여했지만 먼저 제기하고 주도하지 못했다. 광장은 제공했으나 뒤로 숨었다. 이는 현재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일반의 신뢰와 위임의 정도가 크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결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완결되는 것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공직사회개혁, 정치개혁, 부패비리구조 청산 등 어느 것도 쉽지 않고, 국민과 함께 시민운동이 일체화 되어야 가능하다. 필요하면 권력분산 차원의 개헌도 해야 하지만 정치인들의 권력놀음이 되지 않기 위해선 국민중심의 개헌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또한 국민적 지지하의 시민운동이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의 시민운동은 이러한 기대를 갖기 어렵다.    

 

 시민운동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진단을 먼저 해야 한다. 우선 시민운동의 환경, 즉 사회구조가 바뀌었다. 국민 개개인이 의제 선점도 할 수 있고, 여론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매개로한 네트워크 사회로의 전환이다. 현실세계와 사이버세계를 연결하고 통일하는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네트워크 사회를 대표하기에 이르렀다. 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람과 지식, 정보가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결된다. 따라서 사회적 의제와 여론도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고 소비된다. 기존에 제도언론을 능가할 정도로 국민 개개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에서는 국민들은 시민단체에 과거와 같이 의탁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참여의식이 강한 개인일수록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문제제기하고 해결책을 마련하여 공론화한다. 이러한 공론이 공공의 정책결정 집단이나 언론에 역으로 영향을 미친다. 결국 시민단체는 사회의식 있는 국민 개개인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이유로 특히 에드보커시(대안비판) 시민운동의 기반이 되는 전문성 확보가 여의치 않다. 쉽게 말하면 국민들이 시민단체에 의탁하지 않으니 사회개혁 의지가 강한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시민단체에 모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국민 개개인이 하지 못하는 데이터에 기반한 심층탐사형 운동 등 시민운동의 강점을 발휘 하는 게 불가능하다. 시민운동이 공론장인 네트워크에서 의제를 선점하고 리딩해야 하는데 모두가 다하는 주장과 구호만으로 일관해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운동의 수준과 강점을 낮추고 조직의 지속성을 위협한다. 지금 시민운동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시민운동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고,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공론형성이 가상과 현실이 일체화된 네트워크 사회구조를 반영하여 어떤 수단과 방식을 활용하여 남들이 하지 않은 심층적 근거와 주장으로 운동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웹사이트나 겨우 개설해 놓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도권 언론에 성명만 남발하는, 구체적인 사회변화상에 걸맞는 구체적인 대안마련 없이 고준담론만 일삼아 방향성만 흩트리는 과거식 운동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 패러다임에 근거한 운동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존의 틀과 형식, 필요하면 참여의 주체까지도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는 용단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새로운 운동을 위해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이는 시민운동 생존의 문제이다.








  

(이 글은 월간경실련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을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