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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릴레이세미나]나는 걷고 싶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6차 릴레이 세미나 ]

 

■ 주제 : 보행환경 현황과 향후 추진방향

■ 일시 : 2012년 11월 7일(수) 저녁 7시, 경실련 강당

 

■ 사회 : 박찬우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

■ 발제 : 하동익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

■ 토론 :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성현곤 (한국교통연구원)

          신치현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나는 걷고 싶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경실련 (사)도시개혁센터 6번째 릴레이 세미나
‘보행환경 현황과 향후 추진방향’ 돌아보기

 

멈추세요, 자동차에게 양보하세요
  우리나라에는 – 보행자가 지켜야할 – 이상한 교통질서들이 있다.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추려서 소개한다.
  하나, 보행자는 신호기 등 지시에 따라 횡단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의 바로 앞이나 뒤로 횡단하여서는 아니 된다.(도로교통법 제10조 제4항)
  둘,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차마와 마주보는 방향의 길가장자리 또는 길가장자리구역으로 통행하여야 한다. 다만, 도로의 통행방향이 일방통행인 경우에는 차마를 마주보지 아니하고 통행할 수 있다.(도로교통법 제8조 제2항)
  셋, 보행자는 도로를 통행함에 있어서 법령을 준수하여야 하고, 육상교통에 위험과 피해를 주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교통안전법 제8조)
  물론 법체계가 사회문화와 문명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먼저 통행을 양보해야하고, 도리어 육상교통의 안전을 살펴야하는 제도와 환경 속에서 ‘걷는 즐거움’ 혹은 ‘걸을 권리’가 현실적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까. 따라서 앞서 소개한 사례와 같은 엉터리 법조항이야말로 지척지간을 두고도 자동차부터 찾는 우리 교통문화의 뿌리이자 대안마련의 실마리일 수 있다.
  걷기는 모든 이동수단의 시작과 끝이다.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그 바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로서의 걷기, 경실련 (사)도시개혁센터는 우리나라의 보행환경 실태와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6번째 릴레이 세미나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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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치현, 성현곤, 하동익, 박찬우, 김인석(소속/직책 생략)]

 

전시행정으로 멍든 보행환경
  3년 전 서울시(오세훈 전 시장 재임 시절)는 5호선 군자역에서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구간을 잇는 자동차전용도로 1개 차로를 자전거길로 교체했다. 하지만 상습교통체증구간과 오르막 경사로에 만들어놓은 자전거길은 이용하는 사람 없이 주민들의 불만만 쌓여갔고, 결국 올해 6월 자동차전용도로로 복구됐다. 한편, 서울역 환승센터는 많은 비용을 들여 보행환경을 개선하고도 서울시와 서울매트로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조만간 지하철환승통로확장공사로 상부 보행로가 헐릴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도 남양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남양주시가 자전거도로 조성을 위해 설계와 계획까지 마치고 답사한 현장에는 이미 자전거길이 버젓이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자전거길을 새로 만든답시고 보도를 없애버린 황당한 사례까지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듯 교통정책은 진행과정 속에서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러 주체들 사이에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현장을 지향하지 않는 공무원들의 업무관행과 전문성마저 의심스러운 전시행정은 열악한 교통문화와 보행환경의 출발점 노릇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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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군자역-어린이대공원역 구간 자전거길(좌)과 엉터리 자전거길의 사례(우)]

 

‘물질적 인프라’냐, ‘문화적 토대’냐
  우리나라에는 설계기준과 설치시설에 따라 도로의 서비스 수준을 분석한 ‘도로용량편람’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하지만 도로용량편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용해보면 위험하고 불편한 보행로를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지 수치에만 의존한 공급자 위주의 설계방식과 계산적으로 접근한 서비스평가 등이 이용자의 경험과 편의성을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또 전기, 가스, 상하수도시설이 보행시설과 공존함으로써 갖가지 보수공사가 보행권을 침해하는 사례 역시 지난해 서울시에서만 1만 건이 넘었다고 한다.
  다만, 물질적 인프라로써 사람이 다니는 길은 문화적 토대로써의 보행환경, 즉 유행의 흐름과 지역의 역사처럼 상황과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 구조물로 완성될 때 ‘걷고 싶은 거리’, ‘즐거운 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물리적 평가와 인문학적 접근이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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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정차가 침범한 보행로(좌)와 보행로 없는 국도변(우)]

 

쉽지 않은 해법
  우리나라의 대도시, 특히 서울의 교통공간은 매우 기이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도로의 구분이 자동차가 고속으로 주행하는 간선도로와 집 앞 골목길처럼 좁은 이면도로로 양분되어 있을 뿐, 중간계층의 역할을 하는 도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구도심일수록 사정은 더한데, 빽빽이 들어찬 건물과 시설물들은 보행공간이 들어설 여백을 내어주지 않는다.
  길의 위계구조가 왜곡된 상황에서 사람은 차량의 고속통행에 노출되거나, 좁은 길에서도 자동차와 함께 다녀야하는 처지다. 문화적으로 보존해야할 구도심의 경관은 지켜내면서도 사람과 자동차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 결국 해외의 선진 사례를 모방하거나 이식하려는 지혜도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적합한 종합적인 보행환경 개선계획을 개발해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인식의 변화로부터 출발하자
  유럽에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구분하지 않는 ‘공유공간’이 곳곳에 있다. 무기물인 자동차와 유기물인 사람이 한데 섞여 다니는 길이지만, 보행자도 운전자도 사람이기에 그들은 소통하고 접촉하며 마주치며 서로의 길을 찾는다.
  우리에게도 영구의 공유공간과 유사한 길들이 있다. 경실련 사무국이 자리한 대학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로를 가득 메운 인파는 자동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대학로에 자동차를 몰고 나온 운전자 역시 갈 길을 가로막는 인파를 향해 경박스런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사람과 자동차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선진교통문화, 규제를 늘리고 제도는 바꾸고 시설은 고치지 않아도 만들어갈 수 있는 보행환경의 현실적인 개선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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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공유공간의 사례인 네덜란드 드라흐덴의 데카덴 교차로(좌)와 서울의 대학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