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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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릴레이인터뷰]굽이굽이 넘어가는 삶의 길에 재미난 이야기꾼_정회성 간사


정회성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간사 인터뷰


아직 인생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름과 내림이 많은 삶이란 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누구보다 빨리 가야하는 데 장애물이 있다. 누군가는 앞서 장애물을 애써 걷어내며 앞을 향해 간다. 여유가 없다. 이 때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셰에라자드와 같은 이야기꾼이 있다면 장애물로 인해 길이 막혀도 돌아가는 여유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하면 재미있고 누가 하면 재미없다고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풀어내는 것은 그 소재가 무엇이냐도 중요하지만 화자의 말투와 뉘앙스, 구성 등이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꾼이 주위를 둘러보면 한두명 있을까? 이 곳 경실련 사무국에는 준비된 이야기꾼, 정회성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간사가 있다. 그를 통해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을 것인데 그 전에 그의 삶을 들어 보자.


Q. 살면서 가장 재밌게 해본 일이나 행동은 무엇이 있나?

A. 중학생 시절에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그때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볼 수 있는 영화는 모조리 다 봤다.(19금 빼고!!) 어떤 날엔 비디오대여점 주인아저씨가 “마침 잘 왔다”며 가게를 잠시 봐달라고 할 정도였다.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도 영화를 좋아했는데, 친구들과 영화 속 장면을 패러디하며 “이거 어느 영화의 어느 장면이게?”라며 맞추기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조악한 가정용 캠코더로 친구들과 중학 2학년 여름방학엔 단편영화 한 편을 찍기도 했다. 영화이야기로 죽이 잘 맞던 친구를 따라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정도였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 영화를 보며 친구들과 어울렸던 때가 생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시절 같다. 수집욕구 같은 게 있어서 그 때 집에 모아 둔 비디오테이프가 500∼600개 정도 됐고, 친구들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것도 수두룩하다. 아마 그 시기에 국내에서 떠돈 영화는 다 꿰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영화를 즐겨보지만, 그때만한 열정은 없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는데, 내게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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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인천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인천 거리를 활보하는 그에게서 ‘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 



Q. 표정을 보면 묵묵해 보이고 차가워 보인다. 하지만 말을 꺼내면 굉장히 위트있고 재밌는데 그런 유머능력이 영화 때문인가?

A. 경실련 처음 들어올 때도 어떤 분이 비슷한 말을 하셨다. 표정이 왜 그렇게 딱딱하냐고. 그래서 “저는 정말 유머러스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었다(웃음). 스스로는 몰랐다. 표정이 그런 줄…. 최근에 뭔가 좀 힘든가 보다(웃음). 대학 친구들이 굉장히 입담이 좋았다. 예전에 TV토크쇼에 나온 유재석이 친한 친구들과 모이면 카페에서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주인이 눈치를 주면 주차해둔 차로 돌아와 밤새 수다를 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모습이 내가 대학 친구들과 어울리던 때와 비슷하다. 그러면서 입담도 늘지 않았나 생각된다.


Q. 경실련 미디어워치팀에서 잠시 활동했다. 미디어 쪽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이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

A. 사실 어려서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화감독이나 평론가처럼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을 꿈꿔보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오해처럼 영화 때문에 전공을 결정한 것도 전혀 아니다. 수능성적표를 받았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법학과와 신방과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고3시절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서 법대로 진학하는 것을 굉장히 원했다. 하지만 두꺼운 책에 파묻혀 살아갈 법대생의 모습을 상상하며, 부모님을 설득해 얻어낸 타협안이 결국 신방과였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부터 ‘남자셋 여자셋’까지 미디어에 등장하는 신방과의 모습들, 그 속에 묘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입학하고 나서 ‘신방과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는 선배의 질문에 답이 탁 막혔다. 언론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 정확히 ‘ㅎ신문’의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가졌던 때는 대학 3학년 가을 무렵이다. ‘ㅎ신문’의 김 모 기자의 르포기사를 봤다. 그 기사는 우리 사회 속 가난의 의미와 뿌리를 이야기 들려주듯 파헤쳤던 기사다. 지금이야 흔한 형식의 르포가 되었지만, 그 당시엔 생생한 현장성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커다란 반향을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제서야 직업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꿈이 생겼고, 기자의 꿈을 이루고자 학보사, 인턴 기자 등등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기자의 꿈을 안겨주었던 ‘ㅎ신문’과는 너무나 인연이 없었다. ‘ㅎ신문’에서 인턴기자를 하는 도중에 공채시험을 한 번 치른 이후 지금까지 입사원서 한 번 내보지 못했다. ‘ㅎ신문’이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올 때면, 내겐 늘 큰 사건이 일어났었다.(물론 준비도 부족했다). 그렇게 결국 ‘언론고시 바닥’, 정확히 ‘ㅎ신문’기자라는 꿈과 결별했다.


Q.  그런데 경실련 입사까지 하게 됐다.

A. 어려서부터 삶을 돌이켜보면 그저 부모님 말 잘 듣는 아이였지, 나만의 꿈이 없었다. 그러다 인생에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삶의 목표나 방향 따위를 통째로 잃어버렸던 사건이었다. 스스로 목표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학창시절 작은 영역에서는 언제나 능동적으로 활동했지만, 삶의 커다란 부분들에서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힘겹게 이뤄내고도 주변에 “잘했다”고 기뻐하거나 칭찬해주는 존재가 사라지고 나니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부터 목표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여행이든 공부든 일이든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패턴이 오랫동안 반복됐다. 


그러던중 지금의 조카가 태어나고 여자친구를 만났다(실제로 처음 만난 건 훨씬 전이었지만;).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존재들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삶의 목표가 생겨났다. 경실련에 오게 된 이유는 그저 내 조카가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 때문이다(실은 여자친구도 한 몫 했다).


Q. 지금까지 업을 시작하면서 이루지 못하고 그만 둔게 많은 거 같다. 경실련에서는 무엇을 이루고 싶나?

A. 아직은 간사라는 위치가 실수도 용납이 되는 위치지만, 스스로 사업을 기획하고 ‘내 사람들’을 꾸려가며 활동할 것을 생각하면 욕심이 난다. 경실련 생활과 시민운동은 정말 스스로 욕심낸 만큼 거둘 수 있는 구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만, 아직은 게을러서,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올인’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경실련은 연금술사라고 생각한다. 돌맹이를 금덩이로 바꿔내는 요술쟁이가 아니라, 당장 이뤄질 수 없는 꿈인 줄 알면서도 오늘도 묵묵히 실패를 반복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점점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는 곳, 그래서 연금술사가 아닌가 싶다.


Q. 올해 초 계획은 무엇이었고 얼만큼 이루었나?

A. 연초에 여자친구와 함께 1년의 계획을 짰다. 월별로, 분기별로, 반기별로 무척 세세하지만 대단하지 않고 실천 가능한 목표들을 스프링노트 한 쪽에 빼곡하게 썼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진 않은 것 같다. 그 중 꿈을 정확하게 갖자는 목표가 있었다. 인생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는 계획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50대 즈음이 됐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계획을 짜야 하는 데 그걸 못한 거 같다.


Q. 그럼 내년에 목표를 두는 것은 다시 그 계획을 이루는 것인가?

A.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며칠 전 경실련에서 활동하고 계신 임원 한 분의 인생스토리를 짤막히 들었다. 그 얘기가 무럭 흡입력 있었고,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았다. 그리고 비슷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경실련에서 얻어갈 수 있는 자산은 시민운동가로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당분간은 사람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듣고 싶다. 예전에도 부모님이나 이모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서 내가 꾸려내고 싶은 마음에 간사들을 포함해 경실련 사람들을 더 알고 싶다. 영화도 그렇고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세상사를 지식보다는 탈무드처럼 어른들로부터 구전(口傳)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내면세계를 키워 왔기에 그런 것 같다. 이야기를  모아 이를 전수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정회성 간사. 그의 얘기를 모두 다 옮기진 못했다. 한 가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삐져나온 갈대 우거진 길을 휘적휘적 지나오지 않고 돌밭, 가시밭, 개울 등 다양한 길을 굽이굽이 지나왔구나’하는 것이다. 2013년부터 경실련에서 그가 펼치는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아라비안 나이트’보다 흥미진진하고 ‘탈무드’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개봉박두!


 글 | 김상혁 정치입법팀 간사 


 ※릴레이인터뷰는 인터뷰를 받은 상근활동가가 상대를 지목해 인터뷰하는 릴레이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재까지  권오인 부장 → 최희정 수습간사 → 김삼수 팀장 → 안세영 간사 → 최승섭 간사 → 박한 간사  → 윤철한 국장 → 이연희 간사  → 남은경 팀장 → 이기웅 간사 → 윤순철 실장 → 정지영 간사  → 김상혁 간사 → 정회성 간사의 순서로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