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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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무늬만 어린이 드라마?

I.들어가며


여러 프로그램 장르중에서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하는데 있어 드라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입이나 호소력은 그것이 허구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성인대상 드라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호랑이 선생님’이나 멕시코의 ‘천사들의 합창’과 같은 어린이 드라마의 인기를 볼 때 어린이들 역시 드라마에 나타난 자기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현재(99년 10월)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 드라마는 KBS2 TV의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개> 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늦은 시간 성인드라마를 보면서 ‘어른 흉내내기’를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러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개>는 환영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KBS에서 과감한 캐스팅을 시작으로 욕심을 내어서 시작한 이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기대감도 더불어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3주간 모니터한 결과, 앞으로 이 드라마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과 드라마에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II.분석 대상 및 기간


분석 대상 :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개
분석 기간 : 99년 10월 4일 – 10월 22일
방영 시간 : 월 – 금 오후 6시 45분


III.분석 내용


어린이 드라마를 접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여건에서 <누룽지 선생과 감지 일곱개>는 우선 그 희소성만으로도 많은 가치를 느끼게 한다. 드라마가 펼쳐지는 주무대도 도회지가 아닌 강원도 산골로 설정하여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심을,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동경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제반의 준비와 기획의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에 있어서 어린이 드라마 특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겨 주고 있다.


1) 어린이 중심의 갈등 구조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된 갈등이 되고 있다. 즉 성인 드라마식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다.


행순 할머니와 동네 이장 할아버지의 갈등이 그렇고 구선생과 윤선생의 갈등이 아이들의 갈등보다 더 부각되어 있는 것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어른들의 티격 태격하는 갈등 속에서 아이들은 부대낄 뿐, 아이들 특유의 감수성이나 그들이 처해진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는 현실적인 갈등들은 잘 보여지지가 않는다.


사례1 : 철구의 아버지 엄충선의 출현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뱀대가리 혹은 개망나니로 부르며 이질감을 드러내고 이 인물과 갈등을 일으키는데 반해,그의 아들인 철구는 폭군인 아버지의 출현에 대해 적절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두려워서 떨며 회피하는 모습만 보여 주고 있다.


결손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이 철구의 갈등과 고민을 진지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동정심만 자아내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말못할 사연이 많은 부자지간의 쌓인 감정을 풀만한 실마리를 제공하지도 못한 채 회피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22회,23회 24회 방영분)


사례2 : 합창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선생과 윤선생의 갈등이 아이들의 갈등 에 비해 더 두드러져 있다. 노래를 잘 못 부르는 행순이와 치국이가 합창  발표를 앞두고 고민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도 보여졌지만, 결국 전체적인 갈등의 줄기는 각자 다른 교육 방식으로 매번 다툼을 일삼는 윤선생, 구선생이었다.(26회,27회,28회 방영분)


2) 강원도 산골짜기가 이 드라마의 주된 무대인데, 시골 특유의 분위기와 이야기 전개를 잘 살려 내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의 배경만 시골이지, 이야기의 소재는 도시 속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사건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시골이기 때문에 일어 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사건과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느낌이다.


3) 어린이 드라마라는 특성을 염두에 두고 볼 때 불필요하거나 오버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언어순화적인 측면에서 다소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대사들이 거슬렸다.


사례1 : 지석 아버지와 차순 이모부가 대낮에 가게집 앞에서 많은 술을 마시고 몸 을 못 가누는 장면


사례2 : 학교 운동회가 끝나고 마을 어른들이 교실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마을  이장 할아버지와 행순 할머니가 술주정을 하는 장면


사례3 : 술집에 둘러앉은 마을 남자들이 청군이 최고야 백군이 최고야 하며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다가 상대방의 얼굴에 상추를 집어던지는 장면 등  어른들의 음주장면이 어린이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보여 지고 있다.


사례4 : 엄충선이라는 인물을 마을 사람들이 지칭할 때 개망나니, 혹은 뱀대가리라고 부르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데(23회분), 사람에 대한 별명 따위를 호칭할 때도 어린이들이 보는 어린이 드라마라는 점을 염두해 두고 어느 정도 언어 순화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례5 : 아이들의 대사에서도 좀 더 자제해야 할 부분들이 보였다.


다슬기를 잡아 담임인 구선생에게 주며 만길이는 <이게 남자들에게 그만이 래요>하며 남자들 정력에 좋다는 말을 암시하는데, 아무리 선생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시골의 학교일지라도 겨우 4,5학년의 남자애가 그런 말을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4)모범적인 父性(아버지상)과 어른상의 부재


술주정뱅이 아버지(지석이네),폭군 아버지(철구네),혹은 너무 보수적이다 가끔씩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독재적인 이장 할아버지, 자기 자식의 교육에만 열성적인 희라 엄마.. 등등 상식적인 인물과는 다소 거리가 먼 어른들이 이 드라마에 많이 나온다. 이렇게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들과 대립을 이루며 드라마의 균형을 맞추어 가야 할 모범적인 가장, 균형적인 어른, 표준적인 아버지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점인 것 같다. 보편 타당한 합리적인 가치관을 심어 줄만한 어른이 있어서 자칫 편협 되기 쉬운 어린이들의 가치관에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5)어른들의 지나친 희화화


쓸데없는 말참견을 늘어놓는 이장 할아버지에서부터, 술을 마시면 엉뚱한 이야기를 연발하는 지석의 아버지, 이장 할아버지와 틈만 나면 말다툼을 일삼는 행순이 할머니를 비롯한 동네의 다수 어른들, 때로는 주인공격인 누룽지 선생까지 희화화되어 있을 때가 많다. 어린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들의 묘한 부조화가 과연 어린이 드라마에 적합한 지 의문이다. 진지하고 신중한 어른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 줌으로써,지나치게 희화화되어서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여지는 어른들의 모습을 다소 수정 보완해 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어른의 상을 제시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6)결손 가정이 지나치게 많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가정은 일반적이고 표준적인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다. 어느 한 부분이 모자라 있는 결손 가정이 많다.


사례 : 철 구 네 -병든 할머니와 살고 있다. 
       지석이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이고 엄마는 가출한 상태. 
       만 길 이 -삼촌과 살고 있다. 


많은 결손 가정이 등장하여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와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결손 가정에 속해 있는 어린이들의 고민과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시청자인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려고 하는지, 그것의 분명한 의도와 효과가 없이는 결손가정의 등장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7)교사 역할이 아직까지는 미약하다.


구선생(누룽지 선생)은 전원 생활을 즐기며 시골 분교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즐긴다.굳이 산골 분교까지 지원해온 이유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으며 산골 분교에서 일어날 만한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와 열악한 교육 환경, 교사의 고민, 갈등 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시골 분교로 자원해서 들어온 주인공 구선생의 뚜렷한 교육적 철학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선생인 윤선생과 구선생의 사사건건 말다툼과 갈등에도 분명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처럼 싸우고 다투는 모습이 너무 빈번하여 식상하고, 어른들인 선생님이 다투는 모습이 시청자들인 어린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친근감은 심어 줄 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교사의 위상이 다소 격하되는 결과도 초래할 것이다. 특히 너그럽게 보여지는 구선생에 비해 윤선생은 사소한 일에도 토라지고 화를 내고 있어서 여교사의 일반적인 위상에 다소의 왜곡이 생겨날까 우려된다.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사명감을 다하여 고군분투하는 열성적인 교사상을 기대해 본다.


IV.맺으며


이상으로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개>를 모니터 분석하여 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어린이 드라마 부재의 상황 속에서 <어린 왕자>의 뒤를 이어 더 야심차게 어린이 드라마를 준비한 그 기획의 의도는 분명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어린이 드라마를 표방하면서 그 내용은 성인 드라마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모니터 결과 알 수 있었다. 시청층을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까지 포괄적으로 염두해 두고 일종의 시청률을 의식한 의도로도 보여지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대는 분명, 어린이들이 주시청자층임을 한번 더 상기하여서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드라마로 차별화를 할 것을 권고해본다.


어린이 드라마가 어린이들이 볼만하고, 또 그들이 즐겨 보게 하기 위해서, 드라마에 출연하는 성인 배역들을 모조리 희화화하고 우스운 에피소드를 남발하고 억지의 갈등 요소를 만들어 낸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드라마 일수록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진중한 교육적 철학과 고급한 가치관과 풍성한 예술적 감성이 더 절실히 요구되어야 함을 장수하고 있는 외국의 여타 어린이 프로그램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가 유치함으로 치달으면 어린이들로부터도 외면당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는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 유치한 것과 진지한 것의 차이를 어른들보다 더 본능적으로 알고 느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동경을 자아내는 자연의 풍광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동심을 키우는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주시청자들인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는 바람직하고, 볼만하고, 흥미있고, 가르침이있고, 그리고 장수할 수 있는 드라마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니터를 하고 분석하였음을 밝힌다.  <99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