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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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무엇을 위한 시.군 통합인가


이기우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인하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제안하면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앙정치권과 중앙정부는 시·군이 통합되기만 하면 지역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처럼 성급하게 서둘고 있다. 주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지역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중앙정부에서는 통합하는 시·군에 대해서 매년 50억의 특별교부세를 추가하고 국고보조금을 상향조정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정부의 약속은 변칙적인 교부세 운용이 된다. 이는 결국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불이익으로 돌아간다. 정치권의 주장처럼 통합으로 지역 경쟁력과 주민 편익이 높아진다면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통합을 할 것이므로 구태여 국고를 낭비하면서까지 무리한 지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군의 통합이 중앙정치권이나 중앙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별반 효과가 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대적으로 통합하고 난 뒤에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효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1인당 행정비용은 증가했다는 보고가 많다. 우리도 1994년 이래 80여개 시·군을 40여개로 통합했지만 좋은 결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방 재정자립도는 떨어지고 행정비용이 증가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시청이나 군청이 주민들로부터 멀어져 주민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통합으로 수천억원의 행정비용이 절감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숫자놀음이다. 청사나 공무원 감축 등을 예상하여 절감비용을 계산하고 있으나 이미 통합된 40여개 도농 통합시에서 청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 많으며 공무원 수도 별반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통합비용과 통합 후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비용 등이 절감되는 비용을 훨씬 능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정부의 주장은 믿을 수가 없다. 특히 큰 지역과 통합한 작은 시·군은 출장소로 전락하고 지역 리더십과 지역 발전 거점을 상실하여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중앙정치권의 구상에 의하면 통합된 시·군에 대해서는 도(道)의 기능과 도의 지방세를 주겠다고 한다. 이는 도를 사실상 분할하여 무력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국경을 넘는 지역간 경쟁에서 지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지역의 규모를 500만 내지 1000만 이상으로 확대하여 지역 역량을 강화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의 중앙정치권에서는 도를 분할하거나 무력화하여 지역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중앙정치권은 시대적인 요구와 흐름에 반하여 역주행하려고 한다.


지방 행정체제 개편을 주도하는 중앙정치권의 정치적인 계산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시·군을 통합해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적 경쟁자인 시장이나 군수를 임명제로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도를 폐지하면 지역에서 검증된 경험을 가지고 대권 고지에 도전하려는 도지사의 정치적 기반이 와해된다. 국회의원들이 그런 계산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중앙 정치인이 지역의 경쟁력과 주민의 생활편익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개인적인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누구를 위한 정치인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주민을 편리하게 하고 지역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방자치체제 개편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겸허하게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여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졸속한 개편방안을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 성급하게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방안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