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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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문화산책] ‘그래도…?’라는 물음에 대답은 늘 뻔하다

‘그래도…?’라는 물음에 대답은 늘 뻔하다
사랑의 변태(變態)를 여자의 눈으로 그려낸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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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사랑일까?’, 이 촌스러운 제목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영화 ‘봄날의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상우(유지태 분)의 물음에 대한 여자의 담담한 대답이다. 영화 속 미셸 윌리엄스는 “사랑이 이렇게도 변하더라. 그리고 사랑은 그렇게 계속 변하는 것”이라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예쁘지 않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 마고(미셸 윌리 엄스 분)는 낯 설고 주의를 요하는 환경을 무 척이나 두려워한다. 낯선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할 때,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될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엉뚱하게도 몸이 불편하다는 ‘거짓말’로 휠체어를 타고 누군가가 이끌어주는 대로 공항 대기실까지 이동한다. 그녀가 두 다리로 걷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대니 얼(루크 커비 분)은 호기로운 눈빛으로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그녀에게 말을 건다.

  사랑은 늘 설렘과 끌림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것에서 오는 호기심, 그리고 알아가면서 느끼는 희열,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까지 오래된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러한 감정들을 영화에서는 여체(女體)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고가 친지들과 함께 간 수영장 샤워실에서 ‘오래된 것’을 대표하는 나이 든 여성의 몸과 ‘새로운 것’을 상징하는 젊은 여성의 탄탄한 몸을 뚜렷하게 비교하며 보여준다. 사실 여자의 눈으로 보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은 ‘삶의 일부분’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영화에 비춰지는 여성의 몸은 ‘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또는 사랑하는 대상이 빛을 바래듯이 여성의 몸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이 늘어지고 주름이 생기고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봉긋한 가슴과 쭉 뻗은 다리를 지닌 여성이 전 세계 여성의 대략 몇 퍼센트나 되겠냐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 사랑이 일상이듯 여성의 몸도 생활의 일부이며, 사랑이 퇴색해감 이 자연스럽듯 여성의 몸도 변해만 가는 것이다. “내 남편은 내가 다리를 면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라는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감정의 변화 역시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막상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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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Buggles’의‘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팝넘버를 들려준다. 눈에 비치는 현란한 조명과 화려한 멜로디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느냐, 익숙함과 안정을 추구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음악이나 패션에 있어서는 새로움을 더 선호하지만, 맛과 친구 등에 있어서는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일 수 있다. ‘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반복되는 가사는 변화를 쫓는 우리들의 행태를 즐거운 목소리로 비웃는 듯하다. 음악과 함께 놀이기구 운행이 멈추자 허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에 시선이 멈춘다. 영화는 변화의 즐거움도 잠시 머물다 흘러간다는 진리를, 그리고 그같은 사실을 ‘이미 너도 알고 있다’라는 말투로 배려없이 보여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지만 당연한 듯 인정하기에는 괜한 오기와 심술이 생기도록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게 죄라도 된단 말인가?

  이 영화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마고와 그녀의 남편이 대니얼이 끄는 인력거를 타고 시내까지 이동한다. 태양은 가라앉아 굵고 진한 햇살을 내뿜을 때 마고는 대니얼의 젖은 등과 보지 않아도 보이는 그의 슬픈 표정을 대면하게 된다.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둘 다 여실히 느끼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대니얼의 뒷모습을 마고는 찡한 가슴으로 응시한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이런 나를 이해해줘’라는 애원도 그녀는 눈빛으로 대신한다. 분명, 대니얼은 등을 지고 있었지만 마고의 마음을 읽었으리라. 사랑이 사랑이었을 때 아름다운 것처럼 그들이 마음으로 나눈 대화도 이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 영화의 원제는 ‘Take this Waltz’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의 국내 등급을 결정지은 장면이 등장하며, 긴 왈츠가 함께 흘러나온다. “이 왈츠를 함께 추시겠어요? 여러분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어요. 제가 이 영화에서 내내 이야기했으니까요”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생생히 전달된다. 글의 서두에서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제목이 ‘촌스럽다’고 한 것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랑이 사랑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자신해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왈츠를 추실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섣불리 대답하기는 힘들다. 늘 그렇듯, 상대가 누구이며, 자신은 어떤 환경에 놓여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기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쉽게 풀 수는 없지만, 결론은 뻔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