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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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문화산책] 내면의 방에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시하다 – 「자기만의 방」



내면의 방에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시하다

 

이연희 국제팀 간사
yhlee@ccej.or.kr

 

  ‘문학 속에는 사회가 녹아들어 있다.’ 문학 작품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구이다. 그만큼 하나의 문학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은 20세기 영국의 여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수필집으로 작성한 작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수필집 도입부에서부터 느껴지듯 작가는 그 시대의 여성의 고찰과 이를 통한 해결책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그 당시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던 이유를 우선 경제적 요인에서 찾는다. 당시 여성들은 집안에서 육아만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으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또한, 자신이 번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로 빈곤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빈곤은 여성을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들었으며 남성이 우월한 권력구조를 형성하게끔 했다. 또한, 그녀들의 빈곤함은 점차 자신들의 신체를 비롯하여 정신적, 지적 자유를 빼앗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이런 상황의 여성들에게서 창작활동을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시사하며, 자기만의 방과 돈이 그녀들을 해방시켜 줄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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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런던 출생으로 의식의 흐름 장르를 탄생시킨 작가이다.

  저자가 언급한 「자기만의 방」에 대해 정의를 따로 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립된 자기만의 방이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독립된 여성의 방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방은 주체의식을 나타내며 실체 의 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정신적인 내면의 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자신만의 방이 없었던 여성들은 글조차도 쓸 수 없었다. 물질적인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여성의 주체의식의 부재가 그녀의 창작활동을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페미니즘문학의 시초라고 하는 크리스틴 드 피장의 작품 「귀부인들의 도시」에서 저자는 여성의 내면화된 열등의식을 집단적 주체의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혜석 작가 또한 자의식을 지닌 여성으로서 스스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다. 그녀에게는 세 자녀와 남편이 있었고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간적으로 독립된 방은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뚜렷했고 그 정신을 자신의 작품 속에 투여함으로써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는 양성성의 문학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남성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진실성을 갖고 자신만의 문체로 작품을 창출해냈다. 그 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 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던 것이다. 이 세 여성들에게는 주체의식으로 둘러싸인 내면의 방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의 지적 자유를 맘껏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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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년경,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이 프랑스 왕비 이자보에게 자신의 작품집을 헌정한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책에 삽입된 헌정 장면이다.

 

양성 평등의 기회와 한계

  현재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질 기회가 많아졌고 실제로 자기만의 방을 소유한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현대 일하는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만큼 자발적 능동성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들의 직업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출산, 육아, 가사, 자녀 교육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강조된 주체성의 결여로 볼 수도 있겠다. 직업은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일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아실현의 욕망을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인데, 여성들은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직업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들 또한, 여성적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쓰기에 치중한 채 아직 양성적 글쓰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의 삶에 있어서 주체적 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들은 내면의 조작된 시나리오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항들에 맞춰 잘 열거된 시나리오이며 사람들의 잘못된 의식이자 고정관념이고 편견이다. 여성들은 육아나, 출산 등의 고유한 여성들의 삶을 당당히 보호받아야 할 조건으로서 인식하고, 이를 남성과 함께 나누는 등 잘못된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체의식을 갖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모든 국민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지속적으로 적극 지원하여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방에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시하고 여성의 주체성을 장려해야 한다.
  현재 크로스 커팅 이슈(모든 분야에서 고려해야할 개발 사업의 사안)로 계속 거론되고 있는 젠더 이슈는 이제 비단 특정 성, 국가, 계층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빈곤감시 네트워크 조직인 Social Watch에서 발표한 성 평등 지수(GEI, Gender Equity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평등 수치가 동아시아 평균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성평등 수치만 고려해도 지속적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에는 큰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물론, 예전보다는 제도적 개선이나 인식의 변화를 통해 양성평등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젠더 의식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