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북한 변화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11.04.07
5,612

이우영 교수(경실련통일협회 이사 /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 변화론과 사회적 합의 

요즈음 북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북한주민의 변화를 직접 강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각종 매체나 전문가들이 북한 변화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 이후, ‘천인공노’할 ‘만행’,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도발’ 등 북한은 한결 같다는 말들만 난무하다가 갑자기 ‘북한 변화론’이 대세가 되니 어떤 점에서는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최근 북한 변화론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쪽이 ‘북한 불변론’을 고수해왔던 보수 진영이라는 점이다. 사실 오랜 동안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사안들은 사회적 갈등의 핵심 원인이었다. 햇볕정책으로부터 상생공영의 대북정책까지 늘 논란의 대상이었고, 북한의 현실이나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대립되는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변화 여부에 대한 논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보수 진영이 북한 불변론을 강조한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꾸준히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말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보수 진영에서 북한변화를 강조하기 시작함에 따라 모처럼 북한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북한 변화론을 보다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현실

북한의 사회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핵심 지도층 등 일부 특수층만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통 사람들도 남한의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심지어 좋아하는 남한 배우도 있고, 인기를 끄는 드라마도 생겨나고 있다. 남한에서 방영되었던 작품이 북한에 전달되는 시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상품의 유통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식량이나 의약품과 같은 필수품에서 비누나 치약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람들이 접하는 남한 물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히 남한 것을 찾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회사의 특정 물품을 골라서 구매할 정도이다. 얼마 전에 김정일의 현지지도 화면에서 남한 상표가 뚜렷한 TV가 나와서 화제가 되었지만, 평양이던 신의주이던 기아나 현대 마크가 뚜렷한 자동차들이 길을 누비고 있다. 남한의 문물은 당연히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남한이 잘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상대적으로 북한 체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 구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한의 전통적인 집단 간 서열 관계도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도매상을 거쳐 북한 사람들이 ‘돈주’ 혹은 ‘사회주의 자본가’라고 말하는 새로운 부유층이 생겨나고 있고, 이념보다는 물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당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원하는 직업도 바뀌면서 당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하락한다는 것이다. 또한 배급제의 붕괴는 주민들을 직장에 묶어 놓는 계기를 상실하게 하여 사회적 이동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혹은, 장사하기 위하여 사회적 이동이 확대된다는 것은 곧, 정보 유통의 활성화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비교의식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국경 지역의 외국 핸드폰 확산, 소형화된 저장매체(CD나 USB 등)의 전파 그리고 외화벌이를 위하여 외국을 드나드는 사람들(외국 식당 종업원, 해외 파견 건설노동자 등)은 외부 문화를 전달함으로서 전통적인 북한 문화의 사회통합기능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변화의 원인

북한의 사회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파생되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사회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체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복구와 자립적 근대화 과정에 한시적으로 효과적이었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개인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유일지배체제가 수십 년간 지속됨으로써 체제는 극단적으로 경직되었다. 이와 같은 가운데 동구 및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몰락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이어졌다. 이 결과 배급제 등 핵심적인 국가기능이 상당 부분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배급제의 붕괴는 시장을 강요하고 있고, 동구 및 소련의 몰락은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개방을 강제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체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에서 출발한 시장화와 개방화의 진전은 결국 사회적 변화를 끌고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 요인 못지않게 최근 북한변화 과정에서 남북관계가 끼친 영향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남한 문물이 넘쳐나는 것이나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은 그 동안의 남북한 화해·협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한에서 지원한 물건의 상표를 다 지웠었다. 인도적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북으로 보낸 자동차에서도 마크를 다 떼었어야 했고, 남한 대중문화를 접하는 행위는 중죄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남북 간에 신뢰가 쌓이고 남한의 문물이 북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개성이나 금강산 지역을 포함하여 남·북한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빈번하면서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생각이 적지 않게 바뀌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북지원 사업은 남한에 대한 신뢰감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북한 변화의 의미

북한 사회와 주민의 변화의 원인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변화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먼저 지적할 것은 최근 북한의 변화가 문자 그대로 ‘사회적 변화’ 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사회적 변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체제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불가역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반면에 지배집단을 포함한 정치체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체제가 경제나 사회체제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변화는 결과적으로 정치체제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고 필요한 시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강력한 사회 통제력이 유지되고 있다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그리고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적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억제하는 사회적 힘도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문제는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갈등이 격화되면 사회적 변화를 억제하는 국가적 통제력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만일 북한의 변화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요인들을 확산하고 변화를 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시장이 변화의 동력이라면 시장이 활성화되는 정책을 입안하고 지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 간 긴장 고조나 대북 압박은 북한당국의 입장 변화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르나 최근 이야기되는 북한의 사회 변화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최근 북한 변화론의 핵심인 시장의 확대나 외부 문화의 확대 등 사회적 통제의 이완은 제재나 압박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억제정책이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만 여기서의 변화는 정책, 정확히 말하자면 ‘지배 권력의 정책 변화’라는 것이다. 
 
정책의 정당화를 위해서 북한 사회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정당화를 위하여 북한의 변화를 필요 이상 강조하는 것이 모두 현실에 대한 왜곡이나 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체제가 없는 까닭에 북한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었던 것은 체제의 복합성을 생각하지 않고 보고 싶은 부분만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변화론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편의주의적이고 기대 섞인 분석이 여전하고, 이것이 올바른 북한 인식이나 정책 관련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건 사실이다.  

북한변화의 현상들 몇몇을 가지고 북한체제의 붕괴나 유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북한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북한의 변화가 어느 정도 범위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인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한문화가 어떤 사회집단에게 어느 정도 유통되고 받아들여지는지를 분석해야 하고 공식문화와 어떻게 긴장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집단이 형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변혁의 이념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고 공유되고 있는지를 전망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