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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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사필귀정이란 말 아직 믿어요?”
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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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에 들어온 지 몇달 지났을까. 한 정책위원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확신에 찬 “네” 라는 나의 대답에 선생님은 의외라는 듯 신문지상의 무수한 사건들을 예로 드시며 흥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그 말을 믿겠냐는 듯. ‘그런 믿음이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저의 생각은 그러했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제가 더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같은 질문을 지금 받는다면 “그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모든 것은 정도에 따라, 척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놀라면서도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있어 가치판단의 기준이 그것이 효용성이 있든 없든, 더이상 옳고 그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요즘 사람들의 가치판단 기준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면 선이고, 이득이 되지 않으면 악이라는 논리는 다시 말해 돈이 되면 선이고, 돈이 되지 않으면 악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부동산투기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신의 투기행위가 집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가질 기회를 박탈한다는 걸 그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요? 또 주식투기꾼들은 본인들이 얻는 막대한 차익이 개미투자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의 결정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요?

사실 어느 시대에나 순박한 서민을 울리는 악인은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판단기준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넓고 깊게 퍼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재테크책이나 절세정보를 알려주는 신문기사에서도 돈버는 만큼 세금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옳고 그름을 강조하면 낡은 사고방식이라 치부하고 그렇게 살면 돈을 많이 벌 수 없다고도 합니다. 요즘 세상에 너무 착하면 손해본다고 어른들은 가르치며, 악녀가 성공한다는 책이 등장하는가 하면 ‘팜프파탈’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엿한 사업체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은 말로만 듣던 각종 사회적 관행들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더 독해져야겠다고,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적응하는 속도만큼 승진의 속도, 성공의 속도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벌써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 갑니다. 그런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득의 여부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있지 않나?’ 저도 경쟁 치열한 자본주의 시대의 현대인 중 한명일진대 어찌 완전한 예외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얼마 전 몇 백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두산총수 형제가 단 하루의 형도 살지 않고 집행유예 받는 것을 보며, 우리사회가 도를 넘어도 너무 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득의 여부에 자신의 이성을 맡기지 않는 말없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그 분들에게 현재의 제가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지영 경제정책국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