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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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200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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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전, 현직 부총리가 지금은 한가롭게 이념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고 훈수를 두고 나섰다. 경제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경제 관료들이 그 정도 이념논쟁에 영향을 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필자가 예측컨대 그들은 조정의 미학을 충분히 발휘하여 분배를 강조하는 세력들의 예봉을 무디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는 누워서 떡먹기 같은 손쉬운 게임에 불과하다.




  경제 관료들에게 축복을 내려줄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촉발된 성장과 분배논쟁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재경부 관료들은 외형적으로는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경쟁에서 처진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보장을 통해 보조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민주노동당이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만 주장한다면 지금까지의 정책과 크게 모순되지 않는다. 사회보장제도의 급격한 확대를 꾀하는 민주노동당의 주장과 이에 반해 사회보장제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어렵지 않게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사회보장제도를 넘어 부유세와 해고를 촉진하는 구조조정 반대까지 포함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부유세를 들고 나온 것은 정치적 천박함의 소치로 보인다. 누진적인 재산세나 소득세 등은 사실상 부유세의 일종이며 현재 한국의 문제는 세제가 아니라 복잡한 세금체계와 그로 인한 불법적 세금탈루에 있음을 감안할 때 사실상 지지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외에는 실익이 거의 없는 제도이다. 재경부 관료들이 나서지 않아도 침소봉대하고 색깔론을 덧붙여 제도의 실행을 막아줄 수구세력의 힘은 충분하다. 관료들은 불필요한 논쟁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충분히 실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경제 관료들의 이해와 부합한다. 장기적 성장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구조조정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다는 재경부의 논리에 입각해 경제 관료들은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노사관계에 있어 약간의 논쟁이 가능하겠지만, 그동안의 긴장관계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 역시 제도권 정당으로서 챙길 것을 위해 일부를 양보해야 하는 정치적 행위에 종속되어 버린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적절한 유화책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그럴 듯한 논리를 앞세워 민주노동당에 모든 비난을 뒤집어씌울 수구적 언론의 도움을 전제할 때 민주노동당의 등장은 경제 관료들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재벌비호당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한나라당의 장점은 일관성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규제완화를 통해 재벌의 투자확대를 유도하고 이에 따른 성장만이 최상의 분배정책임을 주장한다. 비록 그 정책으로 인해 외환위기를 맞고 IMF구제금융이라는 치욕적인 결과를 초래했지만, 현재 주장하는 정책이 IMF위기를 초래한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일관되게 친재벌정책을 고집한다.


 


  그들은 일관된 법의 적용을 주장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마비되어 있는 기형적 현상을 하루속히 종식시키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자는 제안조차 법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한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그들은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공정한 법 집행을 주장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는 항상 엄정한 법 집행을 주장해 온 그들이지만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한다. 한나라당이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재벌 앞에서 무너지는 일관성을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재벌과 관련된 정책에 있어서는 끈질김을 보이는 야당이 부동산 폭등과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서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자세는 재경부 관료들의 자세와 일치한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재산세 인상에 대해 혁명적 상황이냐고 반문하며 딴지를 걸었던 전임대표의 발언과 부동산 가격 안정에 미온적인 재경부의 자세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유능한 재경부의 관료들은 민주노동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시에 한나라당과는 적극적 협력관계를 통해 자신들이 의도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난데없는 실용주의라니…




  탄핵정국을 틈타 과반수를 넘는 제1당으로 부상한 여당의 이념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실용주의가 채택되었다. 더욱이 정동영 대표가 실용주의의 주창자라는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가 누구였던가? 그는 지난 대선 때 주자로 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누이 홍콩의 염정공서를 언급하여, 그 낯선 외국기관의 이름을 온 국민에서 알린 당사자다. 염정공서를 본 따 부패방지위원회에 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반에 들어서면서 노무현 후보로 결정되어 맥이 빠진 경선과정을 끝까지 지키면서 경선지킴이이자 부패척결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다짐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과반수를 넘는 여당의 대표가 되었기에 아마 첫 일성은 부패방지위원회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가 들고 나온 것이 실용주의였기에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정적 의석의 여당 대표가 되자마자 돌변한 그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랴.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전직 경제 관료들에 점령당한 다수 여당에게 더 이상 무슨 개혁을 기대할 수 있으랴. 개혁의 종언을 선언할 시기만 남았을 뿐이다.


 


  노동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의 요구와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나라당의 정책은 상호배타적이라는 피상적인 인식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노동자와 재벌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윈윈전략은 분명 존재한다. 실용주의는 그 어느 것과도 배타적 속성을 지니지 않았으니 더더욱 만족시키기 쉽다. 유능한 경제 관료들은 충분히 3당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경제 정책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한국경제의 미래에 바람직한 정책인가일 테지만, 과연 현실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차치하고 한국경제의 미래를 고려할 주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안정주의자와 동반 몰락하는 한국경제




  성장과 분배라는 2분법에 빠져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에 앞서 지난 10년간 한국의 경제정책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지난 10년간 재경부의 관료들이 분배정책을 취했기에 한국경제가 현재 요 모양 요 꼴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지난 10년간 재경부의 관료들은 일관되게 성장정책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 반면 국가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고, 온 국민이 빚에 허덕이며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육박하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진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왜 보지 못하는가?


 


  지난 10년간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안정적 경제운용과 꾸준한 구조조정만이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재경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경기부양책은 벼가 안자란다고 인위적으로 뽑아내 농사를 망치는 정책으로 비판해왔다. 10년이 지난 오늘 이들이 옳았고 재경부의 정책은 철저히 잘못되었음이 판명되었음에도, 이들의 주장이 성장과 분배 논쟁의 와중에 묻혀 종적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정답은 성장이나 분배가 아니라 안정인데….


 


(이 글은 경실련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