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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스포츠이야기] 난 ‘무적 LG’가 불편하다
201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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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적 LG’가 불편하다

 

글 |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장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LG 트윈스 팬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때, 서울사람이니까 유일한 서울팀이었던 MBC청룡을 응원하는 것이 당연한 걸로 알았다. 게다가 개막전에서 터진 이종도 선수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 그 홈런은 마치 세례와도 같았고 나의 신앙은 그 순간 결정되었다.

 

30년 애정은 식을 줄 모르지만 TV에서나 또는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볼 때마다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무적 LG’ 구호를 들을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17년 동안 우승 한번 못해본 팀이 ‘무적’이라니… 롯데의 뒤를 이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매년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는 팀이 아닌가. 내가 보기엔 적이 없기는커녕 나머지 7팀 모두가 강적이기만 하다.

 

여기까진 그냥 팬으로서 투정을 부렸다 치자. 정작 내가 불편한 건 왜 응원구호의 대상이 LG인가 하는 점이다. 야구경기장에서, 팀명인 트윈스도 아니고 연고지역인 서울도 아닌 기업명에 불과한 LG에게 왜 ‘무적’의 찬사를 보내야 하는가이다. 경기 중반에 접어들면 으레 등장하는 ‘LG없이는 못살아’는 또 어떠한가. 트윈스가 없으면, 이병규나 박용택, 박현준이 없다면 확실히 사는 재미는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웬 LG? 굳이 따지면 내가 사는데 가장 필요한 존재는 삼성이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내 방에 있는 모든 가전기구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삼성 제품이다. 하다못해 지갑에 있는 유일한 신용카드도 삼성카드다. 삼성 없이는 못 살 판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 명칭은 참으로 독특하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과 같이 연고지역명이 먼저 붙는다. 물론 메이저리그도 다들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이나 그룹이 있다. 하지만 지역이나 팀 이름으로 그 정체성이 확인되지, 그 팀을 소유한 기업을 쉽게 알아채기 힘들다. 야구를 어느 정도 좋아한다면 뉴욕양키스의 구단주가 조지 스타인브레너였고 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인 것은 안다. 하지만 스타인브레너가 무슨 그룹을 운영하는지, 일본의 게임업체인 닌텐도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프로축구 K리그의 경우에서와 같이 다른 종목의 경우에도 기업 이름이 팀 명칭 안에 들어가거나, 굳이 들어가더라도 구단 이름 맨 앞에 기업명을 앞세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하나 더, 한국 프로야구처럼 재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리그도 보기 드물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하면 올해 6월 기준 자산규모로 봤을 때 삼성(1위), 현대자동차(4위), SK(5위), LG(6위), 롯데(7위), 한화(13위), 두산(15위) 등 국내 굴지의 재벌들로 프로야구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이들 재벌들에게 기업이름을 맨 앞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커다란 신세를 진 것인가? 프로야구는 누가 뭐라 해도 현시점에서 600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간혹 스포츠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축구네 야구네 하는 논란을 볼 수 있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이끌어나갈 때 좋아하는 야구팀이 어디냐고 물어보지 축구나 농구팀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축구나 농구팬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렇게 프로야구가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지역연고제의성공적인 정착이었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그리고 좋건 나쁘건 지역감정이 아우러진 라이벌전들이 수많은 팬들을 야구장으로 몰고 온 힘이었다. 지금도 바뀐 건 없다. 타이거즈 팬들은 ‘남행열차’와 ‘목포의 눈물’을, 자이언츠 팬들은 ‘부산갈매기’를 부르면서 팀에 대한 충성을 되새긴다. 이럴진대 정작 팀 이름에는 지역이 들어가 있지도 않고 외치는 것은 기업명이라니, 상당히 어색한 일이 아닌가. 재벌들이 야구판을 주름잡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프로야구는 팬들이 지니고 있는 팀에 대한 애정과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재벌을 홍보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병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야구장에서 재벌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싫은 이유는 또 있다. 재벌들이 이 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나쁜 관행과 행태들이 유독 야구 판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틈만 나면 시장경쟁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으로는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경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태는 어쩌면 그대로인지…

 

올해 초 KBO가 발표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8,704만원이다. 연봉 1억원을 넘는 선수들의 수는 총 100명. 이 숫자들만 보면 프로야구 선수들 노조 만들 생각일랑 하지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재벌들의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최저연봉인 2,400만원 이하를 받는 선수들이 전체 선수들의 27.5%(129명)를 차지한다는 점, 4천64만원 이하는 절반이 넘는 265명(56.5%)에 달한다는 현실은 말하지 않는다. 일본과 같이 사회인야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거나 메이저리그 같이 수준별 리그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프로야구 노동시장은 재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방적인 독점시장이다. 재벌들이 담합하여 임금수준을 정하면 어느 누구도 대들 수 없는 법이 된다.

 

현실이 이처럼 힘들어도,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며 뛰어든 선수들에게 한국 프로야구는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인가? 재벌들의 단단한 결속력은 이마저도 불가능으로 만들고 있다. 좁은 관문을 통과해서 팀에 들어가도 그 구단에서 보류로 묶어버리면 어디로도 옮길 수 없다. 실력은 있지만 해당 팀에 워낙 스타플레이어가 많아 자리를 잡기 힘든 아까운 선수라도 트레이드라는 구단의 은전이 있지 않고서는 은퇴할 때까지 2군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실력이 뛰어난 만년 후보 선수를 구제하기 위한 ‘룰5드래프트’는 올해도 구단들의 반대 속에 도입되지 못했다. 구단의 허락이 없이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신세. 정현욱 선수뿐만이 아니라 프로야구 선수 전체가 노예인 셈이다.

 

그나마 선수들의 노력을 보상해주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던 FA제도도 빛 좋은 개살구 신세다. 올해 초 한화의 이도형, 최영필 선수가 FA를 신청하였다. 이들로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둘 다 강제은퇴. 보호선수 18명 외 1명과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는 이들을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화 구단은 마치 배신자에게 처분을 내리듯 제대로 된 협상 한 번 하지 않고 은퇴를 종용했다. 두 선수 다 몇 년은 충분히 보탬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FA선언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행 FA제도와 ‘너희가 감히 FA선언을…’식의 한화의 조폭논리가 합작한 결과였다.

 

연봉이 높은 스타플레이어라고 이 불합리한 시장에서 특별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올해 초, 지난해 타격 7관왕에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롯데 이대호는 구단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연봉 조정신청을 신청했다. 결과는 구단의 승리. 연봉조정위원들의 변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구단 측 자료에 비해 이대호 측 자료가 너무 부실했다는 것. 야구 규약상 연봉조정신청을 한 이대호에게 자료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5일이었다. 애초부터 체급이 다른 권투선수들이 링 위에 오른 셈이다. 이대호가 경기 끝나고 나서 매번 밤을 새면서 자신의 기록을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평소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데이터도 축적을 해놓고,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러저러한 자료를 만들어놨으면 어땠을까. 지극히 상식적인 이런 발상도 우리나라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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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가전업계 라이벌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를 겨냥하여 LG의 임직원들이 잠실야구장에 들고 나타난 대형걸개. 야구장에서 야구팀이 할 일은 3D로 붙는 것이 아니라 야구 실력으로 붙는 것이다. 야구를 보기위해 온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야석을 거의 가득 채워버린, 이 천박하기 그지없는 퍼포먼스는 재벌들에게 있어 야구팀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일을 하는 선수 대리인, 즉 에이전트 제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10년이 지났어도 재벌들과 KBO는 나몰라라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이전트를 도입하면 불필요한 몸값폭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스포츠 상업주의가 최고로 발달해 있고, 심심치 않게 구단과 선수들이 갈등을 겪으면서 직장폐쇄까지 불사하는 미국에서도 차마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선수들에게 불리한 제도와 처우가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해를 넘기니 선수노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오죽했으면 평생 운동만 해온 선수들이 노조를 꾸리겠다고 나섰겠는가.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내 주변에도 노조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붉은색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는 투우장의 황소처럼 앞뒤 없이 흥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 선수노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러한 분위기를 등에 업고 재벌과 보수 언론은‘적자’, ‘시기상조’, ‘가난한 선수들 역차별’ 등을 내세우며 노조 죽이기에 나서왔다. 이도 모자라 지난2009년 노조 결성 논의가 활발해지자 삼성과 LG는 노조가 설립되면 프로야구에서 발을 빼겠다는 공공연한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재벌 관련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깎아주지 않으면 고용창출도, 투자도 어렵다는 재벌들의 어깃장은 차라리 애교로 보인다. 

 

물론 야구장에서 LG를 외치건, 트윈스를 외치건, 서울을 외치건 별 상관없을 수도 있다. 해당 임직원이면 모를까 ‘무적 LG’를 외친다고 LG그룹이 무적이라고 생각하는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LG없이는 못산다고 외치지만 일부러 다른 회사제품 제쳐놓고 LG제품만 구입하며 사는 팬들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가 이만큼 커왔던 비결을 되짚어 봤을 때,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재벌들이 야구판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들을 봤을 때 마냥 그들의 이름을 3시간 넘게 목청껏 외쳐주는 것은 한번 고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시인의 ‘꽃’의 시구처럼, 그 가치에 걸맞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더군다나그 대상은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보듬어 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오늘도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무적LG’.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