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스포츠이야기] ‘승부조작’과의 전쟁, 무엇이 필요할까?

‘승부조작’과의 전쟁, 무엇이 필요할까?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 팀장

 

고전 문구의 인용은 진부하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빈번하게 쓰이곤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하나의유령이 대한민국 스포츠판을 떠돌고 있다. 승부조작이라는 유령이.’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두려운 존재. 작년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승부조작 이야기다.

 

 사진01.jpg

▲ 지난 2월16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현대건설-흥국생명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 인사를 하는 모습. 검찰 수사 결과 흥국생명 선수 2명은 브로커로부터 1경기당 300만~500만원을 받고 모두 2~3차례에 걸쳐 경기 중 고의적인 실수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1일 프로야구 LG트윈스 김성현이 브로커로부터 ‘첫 이닝 고의볼넷’ 등 불법 스포츠 베팅사이트의 베팅 항목에 대한 조작 부탁을 받고 기록 조작에 가담한 뒤 수백만원의 사례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혐의로 2일 검찰에 출석한 박현준은 조사가 끝난 뒤 귀가했으나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청정지대’라고 생각되었던 프로야구에서도 승부조작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지난해 5월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이 적발되면서 65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영구 제명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3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프로배구에서도 승부조작에 15명의 전·현직 선수들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4대 스포츠라고 불리는 인기 구기 종목 중 3개의 종목에서 승부조작이 터졌고, 프로농구 또한 ‘3점슛 실패 베팅’ 등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쉬쉬하며 소문으로만 돌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드디어 열린 것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 종목에서 승부조작이 진행된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불법 스포츠 베팅사이트에 거액을 베팅한 전주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 브로커를 고용, 선수들을 포섭한다. 이 브로커들은 대개 해당종목 선수출신으로 경기에 뛰고 있는 선수들과 학연·지연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주로 하위 팀에서, 많은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TV에서 방영되는 경기에서 대놓고 승부를 조작할 수는 없는 일. 의혹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첫 볼넷(야구), 고의 실점(축구), 점수 조작(배구) 등 합법 사이트인 스포츠토토에서는 다루지 않는 항목들과 관련된 조작이 진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하게 말해 이번 사건들은 승부조작이 아니라 경기조작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승부조작이 발생하다보니 스포츠계와 언론 등에서는 불법 스포츠사이트와 브로커 근절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담선수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 선수들의 윤리교육 강화 등 선수들의 자정능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대책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시급히 내려야 할 처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다. 프로스포츠가 어느 때보다도 활성화되어 있고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승부조작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고배당의 달콤한 유혹, 불법 사이트로 몰리는 소비자들

 

승부조작의 진원지는 불법 베팅사이트가 맞다. 당연히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해당 종목을 없앤다면 모를까 불법 베팅사이트를 근절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해외에 서버가 있어 단속할 수 없다는 식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6월 프로축구 승부조작이 터졌을 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1,000여 개로 추산된다. 사이트 1개당 125억 원가량의 매출이니 이 ‘어둠의 시장’ 규모는 12조원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없앤다고 이야기하기에 앞서 왜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 베팅에 빠져들고 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유일한 스포츠 베팅 업체는 앞서 말한 스포츠토토다. 이외에 모든 베팅업체는 불법이다. 그런데 이 스포츠토토,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큰 불만은 베팅의 기준점이 되는 배당률. 가령 A팀이 승리했을 때 스포츠 토토가 1.5배의 배당률을 책정했다고 하면, 똑같은 경기에 해외 베팅사이트들은 1.7배, 높게는 2배의 배당률을 책정한다. 시장 독점을 이용한 횡포라고밖에 볼 수없다. 배당률이 발표될 때마다 관련 커뮤니티는 ‘토사장의 배당률 후려치기’를 비난하는 글로 도배된다.

 

필자의 경우 경기관전용으로 소액을 베팅하는 ‘건전한’ 이용자지만, 아무리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1.01배(1만원 베팅 적중하면 100원 수익!)라는 황당한 배당률이 나오면 자연히 ‘차라리 사설 베팅사이트 한번 가볼까’ 생각이 든다. 그러니 스포츠토토보다 훨씬 높은 배당을 내놓고, 적중하면 환급도 바로바로 해주는 불법 베팅사이트에 소비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불법 베팅사이트가 소비자들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매력은 스포츠토토에서 볼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세분화된 베팅 항목이다. 지난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소속크레익 벨라미는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르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동료 선수를 골프채로 폭행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당사자가 이를 부인하며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그 다음날 잉글랜드 베팅사이트들에 등장한 것은 ‘오늘 벨라미가 골을 넣는다면 골프 세리머니를 할 것인가’라는 베팅항목이었다.

 

스포츠토토의 베팅항목은 승패 여부 그리고 최종 점수 및 점수대 맞추기가 전부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확인됐지만 이런 ‘단타성’ 또는 경기 중간에 벌어질 수있는 특정 상황에 대한 베팅 항목은 당사자들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조작 여부를 잡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베팅항목들은 거금을 투입해 ‘한방’을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피해가기 힘든 유혹이다. (참고로 말하면, 벨라미는 골도넣었고 멋진 골프 스윙도 보여줘서 고배당을 안겨줬다)

 

사진02.jpg

▲ 2007년 2월22일 UEFA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바르셀로나와 리버풀간 대결에서 ‘웨일즈 악동’ 벨라미가 전반 43분 동점골을 넣은 뒤 ‘골프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잉글랜드의 경우 약 8천개가 넘는 베팅업체가 수백가지가 넘는 다양한 방식의 베팅 항목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승부조작은 시작된다

 

선수들의 자정능력 강화와 처벌 강화는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머나먼 이야기로 들린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프로에 입문할 때까지 끊임없는 승부조작과 담합, 뇌물거래에 노출된다. 이번에 프로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이 문제되고 있지만, 사실 학원스포츠에서의 승부조작은 이전부터 끊임없이 발생되어 왔다. 2010년 9월 광양제철고는 같은 재단 소속인 포철공고가 왕중왕전에 진출할 수 있도록 후반 막판 9분 동안 5골을 내줬다. 누가 봐도 승부조작임이 뻔한 일이 대놓고 벌어지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지난해에는 초등축구리그에서 승부조작이 발생하여 해당지도자들이 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대표팀 승선을 둘러싼 쇼트트랙의 져주기 파문, 전국체전 예선 통과를 위한 전남지역 야구예선 승부조작 등 거의 전 종목에서 승부조작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들에게 상급학교로의 진학과 대표팀 진입을 위해 경기성적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절대선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로가 학연과 지연, 파벌을 동원하여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결국 검은 거래를 낳게 된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이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여전히 요원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우리끼리는 어떻게든지 밀어줘야 한다’는 강고한 위계질서 문화와 폭력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변 동료선수들이 “선배가 부탁하는데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너무한 것 아니냐”등의 발언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지만, 어찌 보면 이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단기적 해결 아닌 스포츠 문화 전반 바꾸는 노력 필요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승부조작을 노리는 검은 유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제대로 된 감시·자정 시스템 도입과 불법 사이트에 대한 강력한 단속·처벌도 이루어져야겠지만, 우리의 스포츠 문화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오로지 성적만을 요구하는 학원스포츠를 뿌리부터 바꿔나가고, 학생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갖출 수 있는 정상적인 학습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각 종목과 경기단체 내에서 인맥과 학연, 파벌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챙기려는 ‘마피아’를 해체시켜야한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스포츠 베팅사이트의 경쟁체제 도입이다. 다른 사행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따르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은 불법사이트를 더욱 양산하고 있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스포츠토토의 독점을 해체하는것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사진03.jpg

▲‘칼치오폴리(Calciopoli)’는 2006년 유벤투스 등 세리에A 유력 구단들이 심판배정관을 매수, 자신의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을 배정해 승부조작을 한 사건이다. 축구(Calcio)의 기둥(Poli)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사건 명칭이 붙여졌다. 사진은 관련 재판에서 증언하고 있는 이탈리아 축구스타 델 피에로.

 

많은 사람들이 승부조작이 우리의 리그 수준을 떨어뜨리고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을 걱정한다. 맞는 애기다. 2004~05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심판 배정을 조작하다 적발된 ‘칼치오폴리’사건은 관중을 1년만에15% 급감시켰다. 세계 3위권을 유지하던 세리에A 리그는 이제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밀려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승부조작이 정말로 무서운 것은 우리가 스포츠에 기대고 있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얼마 안 있어 시작될 프로야구. 누군가가 1회에 볼넷을 내준다면 모든 사람들은 이제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혹시 ○○○ 너마저?’

 

순수함, 공정함, 땀방울, 같은 출발선, 규칙…. 스포츠가 DNA를 갖고 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가치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이를 잃는 순간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나마 스포츠를 보며 위안을 삼아왔던 팬들의 삶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저 선수가 항상 최선을 다해 뛰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고 난후의 먹먹함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승부조작과의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