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CCEJ 칼럼] [스포츠이야기] 약자들의 유쾌한 반란, 그들이 부럽다
2012.03.21
4,982

약자들의 유쾌한 반란, 그들이 부럽다

 

글 |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장

 

레바논

 

지난 11월15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한국과 레바논의 월드컵 3차 예선.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처럼 승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1:2로 뒤진 채 전반이 끝나갈 무렵, 오랜만에 TV에 리모컨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명색이 월드컵 개최국이자 4강 진출팀이다. 잔디 상태나 레이저 빔을 핑계로 댄 것은 참으로 옹졸한 변명이었다. 그저 간만에 보게 된, 너무나도 무기력한 경기였을 뿐이었다.

이어진 후반전.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해온 중동축구의 대명사, ‘침대축구’가 떠올랐다. 너도나도 기회만 오면 경기장에 쓰러져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예상됐다. 하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레바논 선수들은 독기를 품고 뛰었다. 어떻게든지 이 팀을 한번 제대로 이겨보겠다는 모습이 확연했다. 종료 직전까지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고 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동했다면 과장일까. 비록 끝까지 우리팀이 승점 1점이라도 챙기기를 원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감탄을 넘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올해 10월 현재 레바논의 FIFA 랭킹은 146위. 랭킹 31위이자 월드컵 7회 연속 진출에 빛나는 한국과 견주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오랜 내전 속에 제대로 된 프로리그도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이번 경기를 이겼지만 최종예선에 오를지는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국에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날 레바논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는 힘을 짜내어 뛰었다. 마침내 울린 경기 종료 휘슬. 선수들은 마치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쥔 마냥 환호했고, 수많은 관중들 역시 자리를 지킨 채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칼레

‘칼레의 기적’. 축구역사에서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말이다. 2000년 5월7일 프랑스컵 결승전. 매년 열려온 프랑스컵 결승전이었지만 이 날의 경기는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2만개가 넘는 클럽이 있는 프랑스에서 82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마추어 팀이 결승에 올랐다. 당시 1부 리그 팀이었던 ‘낭트’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 팀은 ‘라싱 유니온 FC 칼레’.

 

인구 7만5천의 칼레는 도버해협에 면해있는 작은 도시로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도시다. 그러나 정작 축구팀 칼레는 비가 오면 경기를 할 수 없는 1,000석의 구장을 가진 볼품없는 팀이었다. 4부 리그 팀이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내가 한때 있었던 관악구 인헌 조기축구회 정도 될까. 인헌 축구회가 태릉갈비 사장님, 인헌슈퍼 사장님, 휴대폰 영업사원 등 평범한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칼레의 선수들도 슈퍼마켓 직원, 교사, 정원사 등 모두 생업이 따로 있는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된 팀이었다.

 

2.jpg

▲ 2000년 프랑스컵 경기 후 열린 시상식 모습.

우승팀 낭트의 주장은 칼레의 주장 손을 잡고 단상에 올라가 같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처음에 칼레가 2부 리그 팀들을 꺾었을 때 사람들은 감탄하긴 했지만 언젠가는 끝날 이변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8강전에서 1부 리그 팀 스트라스부르를 꺾자 불기 시작한 칼레 열풍은 4강전에서 전통의 명문 팀인 보르도에 3:1로 승리를 거두자 걷잡을 수 없는 돌풍으로 변했다. 차마 경기를 열 수 없었던 홈구장 대신 랑스에서 열린 4강 경기에 칼레 전 시민의 절반이 넘는 4만명이 원정 응원을 펼쳤고, 경기가 끝나자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얼싸안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파리 생드니 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 어쩌면 상대팀인 낭트 팬들조차 ‘이번만큼은 저들이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모두가 원했던 결말은, 하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종료 직전 터진 극적인 골로 낭트가 2:1로 이기면서 우승컵을 안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칼레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모두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칼레는 프랑스 축구 팬뿐만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경기장을 직접 찾은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이 “두 팀 모두 승자다. 한 팀은 결과에서 이겼고, 한 팀은 정신에서 이겼다”라고 말한 것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 것이 아닐까.

 

레반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시즌 초반 한 팀의 믿기지 않는 활약으로 연일 화제다. 주인공은 발렌시아 지역에 위치한 ‘레반테 UD’. 특별한 재정의 뒷받침이 없어 항상 강등권을 맴돌다 2부 리그로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그저 그런 팀이다. 지난 2008년에는몇 달 동안 선수들에게 급료를 지급하지 못해 파업과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적도 있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이었던 라울은 바르샤와의 엘클라시코 더비 수익으로 레반테를 돕자는 제안까지 꺼낸 바 있다)

 

지난 시즌 2부 리그에서 승격해 겨우 강등을 면하고 올 시즌을 시작했지만 출발은 어느 때보다도 암울했다. 그나마 리그 잔류를 책임져준 주요 선수들과 감독이 재정난 속에 모두 팀을 떠났다. 하지만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반테가 쓸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더욱 빨라지고 강력해진 현대축구의 흐름에서 이제 30대는 황혼으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시기에 레반테 선발출전 선수의 평균 나이는 31.6세. 프리메라리가 최고령 팀이었다. 돈이 없어 다른 팀에서는 퇴물로 취급받는 선수들을 모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든 전문가와 팬들은 레반테의 리그 강등을 의심치않았다. 그것도 사상 최저의 성적으로.

 

하지만 리그 초반부터 레반테의 기적은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1:0으로 꺾는 대반란을 일으키더니 라요, 에스파뇰, 레알베티스, 말라가, 비야레알 등을 잇달아 물리치며 6연승을 달렸다. 결국 시즌 초반 9경기에서 7승2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바르샤와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수년에 걸쳐 프리메라리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바르샤나 레알 마드리드의 한 선수가 받는 연봉이 레반테 선수 전원의 연봉보다 많은 상황에서 일구어낸 기적이다.

한 때는 약자의 입장에서, 없는 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치루면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기회가 제법 있었다. 4전5기 홍수환이 있었고, 북한의 몰수게임으로 대신 출전한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는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4강에 오른 적도 있었다. 이제는 너무 강해져서일까 아니면 풍족해져서일까. 이런 경기들을 볼 기회가 많이 없어졌다.

레바논이 왜 저리도 악착같이 뛰었는지는 모르겠다. 내전으로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는 조국에게 희망을 안기려고 한 것일까. ‘가난하고 못생긴 쓰레기… 우린 레반테다.’ 레반테 팬들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내건 걸개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가 직전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집중적으로 야유를 받자 “내가 돈이 많고 잘생겼고 뛰어난 축구선수여서 야유를 받는다”는 몹쓸(?) 말을 하고 원정을 온 경기였다. 더 이상 잃으려야 잃을 것이 없다는 독기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게는 별반 대수도 아닌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 진출, 바르샤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에게는 관심도 없는 리그 강등 모면을 위해 두 팀은 우리로서는 느끼지 못할 간절함을 가지고 뛰고 있다. 냉정히 애기한다면 어차피 레바논은 본선진출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레반테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공식대로 리그후반부로 갈수록 강등권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3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레바논 국민들이 느끼고 있을 간절함이 부럽다. 자신들의 팀이 만들고 있는 예상 못한 돌풍에 감동하고 있을 레반테 팬들이 부럽다. 멀게는, 한경기 한경기가 기적임을 알고 두근거리며 경기를 지켜봤을 칼레 시민들이 부럽다. ‘한번만 더, 제발 한번만 더…’ 상상하기는 싫지만, 오랜만에 이번 한 번쯤은 우리나라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해야 이런 감정들을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