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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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론] 인간미를 더한 제도적 틀 구성을 제안하며

이선우 (사)갈등해소센터 이사장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친구 둘이 술을 먹다가 각기 가지고 있던 현대 ‘포니’와 대우 ‘맵시나’ 중 어느 것이 더 튼튼한지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어느 것이 더 강한지 실험을 하기로 하고 각자 ‘맵시나’와 ‘포니’를 몰고 부딪쳐 보기로 하고 일정 거리에서 속도를 내어 정면충돌 했다고 한다. 결과는 ‘어느 것이 조금 덜 망가졌는가?’ 하는 것이지, 술 먹은 정신에 정면충돌 했으니 사람도 차도 안전할 리가 있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가 마치 이런 것 같다. 술 취한 상태에서 서로 뜻이 맞지 않다고, 자신에게 피해가 왔다고 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사실여부를 확인,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로를 향해 욕설하고 주먹질하는 ……. 물론 모든 이가 그렇고 우리 사회 전체가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전한 비판정신과 긍정적 사고를 가진 다수의 국민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관망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들로 마치 전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것처럼 비치는 것일 것이다.


다수의 건전한 정신과 긍정적 사고를 가진 국민들도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발생하면 순간 ‘욱’ 할 수 있을 것이나, 이들 대부분은 조용히 그 분을 삭이고 만다. 그래서 항상 손해 보는데, 목소리 큰 사람들은 이 조용한 사람들의 관망적 태도와 자기희생적 수용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논리성과 사실 관계 확인 등의 검증과정은 불필요하게 되며 사회적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도적 틀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사실 사회적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도적 틀도 따지고 보면 구조적으로 약자이며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집단들에게는 동의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현장에서는 이들이 동의하지 않은 제도적 틀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용산참사도 사실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대결구도에서 나온 것이며, 제도적 틀보다도 배려와 관심, 그리고 이해가 부족하여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용산 재개발 제4구역에 땅이나 건물을 가진 이들은 배상을 받았으나 많은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세입자들이나 무허가 건물의 세입자나 상인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여 생긴 문제이다. 이들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 주는 재개발절차라는 제도적 틀이 정착되어 있었더라면 투쟁중심적인 강성의 제3세력들이 개입할 단초를 제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이 사건은 마무리되고 재개발은 진행되겠지만 도시재개발과 관련하여 제2, 제3의 용산사태의 가능성을 가진 지역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갈등 없이 순탄하게 재개발을 이루어낸 지역들로부터 그 성공사례를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배려이고 이해이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조합 측과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측의 입장을 조율해 줄 제3의 중립지대가 필요하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재개발이 합의되었다고는 하지만, 반대한 소수들은 용산에서처럼, 아니 여느 재개발지역에서처럼 끝까지 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합 측과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 측에서는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면 이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수가 원하기 때문에 소수는 참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이 소수를 배려하지 않을 때 이들은 폭탄으로 변하고 만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만들어진 법제도라 하더라도 소수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