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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장을 모르는 정부

[경제칼럼] 시장을 모르는 정부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세계 12대 경제대국의 3대 은행 중의 하나가, 그것도 정부가 소유한 은행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250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굴리며 국제금융시장의 큰손을 자처하던 나라가 500억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었는데도 환율은 50%나 상승했다. 80년 만의 경제위기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필자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외환시장 개입만을 능사로 여기는 정부 당국자들이 문제의 근원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500억달러 쏟고도 외환시장 불안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은 위험자산에 대한 잘못된 평가에 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파생금융상품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요구되었고, 그 과정에서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위험자산 평가 기준이 흔들리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국제금융시장은 안전자산으로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지만, 더 안전한 자산을 찾을 수도 없기에 고육지책으로 미국 국채를 사야 하는 기현상으로 달러 가치의 변동성만 높아졌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세계적 경제위기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고, 자산 거품과 가계 부실이라는 내재적 위험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 쪽으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과소평가한 나머지 자산가격의 하락을 허용하기는커녕 상승시켜서 자금의 유출을 가속화시켰다.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있으니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15%에 달하는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은행이 국내에서 손쉽게 2%에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면 굳이 해외 자금을 빌릴 이유가 없다. 중소기업 대출 요청에 대해 정부가 시늉만 내면, 시장 밖에서 달러를 공급해 주는데 굳이 국제금융시장에 나가서 돈을 빌리는 바보가 어디에 있겠는가? 더욱이 높은 이자를 주고 외화자금을 빌리면 자금 사정이 나쁘다는 신호가 되어 비용을 더욱 증가시키는 시장의 못된 습성까지 고려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오는 것은 자멸행위에 가깝다. 그저 정부의 눈치나 보고 있는 편이 낫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높은 금리에라도 돈을 빌려오면 애국적 행위이지만, 그것이 은행장 연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모든 은행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높은 금리에 대거 돈을 빌려오면 한국의 외환시장은 급속히 안정되어, 지불한 높은 금리를 훨씬 능가하는 큰 혜택을 얻는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폴슨이 대형 금융회사 회장을 모아서 강제적으로 정부의 자금을 받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러한 논리를 한국 정부가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무슨 생각으로 이자율 내렸을까


한국은행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낮은 금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정부가 책정한 위험자산의 가격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끊임없이 시장과 소통하고 구조조정을 활성화하여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외환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한국투자공사를 해체하여 200억달러를 회수하는 등 자금 확보에 전력해야 한다. 조정기능을 발휘하여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국내 지점이 달러를 빌려오도록 하든지, 아니면 직접 해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와야 한다. 미국 투자은행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며 자금을 굴리던 정부가 달러를 구해오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 이도 저도 안되면 무슨 생각으로 이자율을 내렸는지 재고해 볼 일이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