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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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장의 힘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90년 초에 쏘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경제들이 와해된 이후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경제란 사유재산제도와 결합된 시장경제를 말한다. 물가, 실업, 경제성장, 주식가격, 전세 가격, 무역 등 우리의 살림살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제문제들이 주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메카니즘을 통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경제전문가란 사람들도 시장이 과연 무엇인지, 그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경제학원론 책들도 많지만 막상 시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시원하게 설명하는 책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230 여년 전에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시장경제 안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고 말한 이래로 시장을 마치 무슨 신기한 마술 기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장은 결코 하나님의 손이 작동하는 신비하고 전지전능한 기구가 아니다. 시장은 단지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상품을 사고 파는 공간에 불과하다. 시장을 통하여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장경제는 사회주의 관리경제보다 생산의 효율성이나 개인 자유의 보장에서 더 좋은 경제체제이지만 불공정한 분배와 빈부격차, 경제의 불안정과 불황, 실업, 독과점의 횡포, 환경파괴, 윤리의 타락과 인간소외와 같은 여러 심각한 구조적 결함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단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2차대전 이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현재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는 수정자본주의경제이다. 수정자본주의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경제이다. 수정자본주의 경제 안에는 시장경제와 정부의 경제개입이 함께 존재한다. 시장경제와 정부의 경제개입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잘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번 글부터 네 번에 걸쳐서 시장의 성공과 실패, 정부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사회주의의 실패를 살펴 보자.

시장의 성공

시장이란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물건을 교환하는 공간을 말한다. 공간은 물리적 장소만이 아니라 인터넷 상의 공간과 같은 가상적 공간도 의미한다. 사유재산제도와 결합된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이므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경제를 구분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이 둘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현실에서 시장은 사유재산제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되지 않아서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없다면 시장에서의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붕괴되기 전 유고슬라비아에서처럼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와 시장경제가 결합된 시장사회주의가 시도된 적이 간혹 있었다. 이 경제에서는 공동소유의 생산조합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매매되었다. 그러나 시장사회주의는 지속되지 못했다. 공동소유와 시장경제는 서로 조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힘은 곧 자본주의의 힘이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주의경제나 과거의 봉건경제와 같은 다른 경제체제보다 생산의 효율성이 높다는 것이다. 생산의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이 생산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경제의 생산효율성이 높은 이유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자기위주라는 인간 본성에 부합한다.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대부분 인간의 본성인데 자본주의에서는 사유재산제도 덕분에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가지므로 누구나 돈을 더 벌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사유재산제도는 특히 기업가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여 사회에 필요한 물품들을 필요한 곳과 때에 맞추어 공급하도록 한다. 자본주의경제에서 큰 돈을 버는 길은, 공급이 부족한 물건을 장소와 때에 맞추어 공급하여 좋은 가격으로 파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높은 산 위에까지 시원한 막걸리를 지고 가서 파는 장사꾼도 기업가이다. 이처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저절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장의 힘이다. 시장의 힘은 신비로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돈을 벌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돈벌이를 찾아서 열심히 애쓰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다.

둘째, 경쟁이 존재한다. 경쟁은 기업들로 하여금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더 싸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강제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기업간 경쟁을 영어로 '목베기 경쟁'(throat-cutting competition)이라고 끔찍하게 표현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가 지적한 바와 같이 경쟁은 또한 발견과정이다. 결과를 모른다는 점에서 시장에서의 경쟁은 실험이나 경기와 같다. 실험이나 경기를 통해 가장 최선의 것이 밝혀지듯이, 경쟁을 통해 필요한 재화의 종류와 수량과, 가장 효율적인 생산방법이 발견되게 된다. 경쟁은 또한 인간의 강한 본성인 탐욕을 억제한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양심은 탐욕 앞에서 무력하므로, 탐욕의 발호를 곉과를 모질서를 유지하는 강제규범인 법이 필요하다. 법 이외에 탐욕을 예방하는 또 하나의 효과적인 모적 장치가 경쟁이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경쟁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는 독점이 나쁜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로 시장에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시장기구의 신호등기능이 존재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품들이 생산되는 현대의 거대한 분업 경제에서 기업과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정부가 교통정리를 하는 사회주의경제와 달리 교통순경이 없는 자본주의경제에서는 각자 알아서 생산과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경제에는 불황과 실업이 많이 발생하고 창업기업들은 대부분 문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경제가 사회주의경제보다 상대적으로 자원 낭비가 적고 더 많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생산과 수요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종합하여 전달해 주는 시장기구의 신호등기능 덕분이다.


시장기구의 신호등기능이란 매출량, 가격 및 수익률(이윤율)이라는 세 가지 항목의 변동이 시장참여자들에게 적절하고 신속한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말한다. 시장에서 기업은 판매량의 변동을 보고 생산량을 즉시 조정할 수 있다. 기업은 계속 잘 팔리는 물건은 계속 생산하여 공급하고, 반품이 늘고 재고가 쌓이는 물건은 생산을 중단할 것이다. 다음, 공급부족은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고, 가격상승은 생산자에게는 생산을 늘리라는 신호를, 소비자에게는 소비를 줄이라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반대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반대 방향의 신호를 보낼 것이다. 배추 가격에는 배추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비료나 농약의 가격, 작황에 영향을 미친 기후, 경작자의 노력, 수송비, 교역국의 생산 상황 등)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소비자들의 취향, 식당의 경영상황, 배추의 수출입 등)에 관한 정보들이 하나로 응축되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이들 수많은 정보를 종합하여 반영하는 가격이라는 하나의 신호를 보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수익률의 변동은 기업의 투자결정에 관한 신호등 역할을 한다. 수익률이 높은 것은 공급이 부족한 산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수익률이 낮은 산업은 공급이 과잉이므로 투자하지 말하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하이에크에 따라서 시장가격의 변동만을 중시하여 시장가격기구의 신호등기능이라고 부르지만, 판매량과 수익률의 변동도 생산과 투자에 중요한 신호등 기능을 수행하므로, 가격만이 아니라 판매량과 수익률의 변동까지 합하여 시장기구의 신호등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욱이 현대 경제에서는 대부분의 가격들이 경직되어 가격이 쉽사리 변동는 것이 므로 가격변동보다는 판매량변동이 훨씬 더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는 신호등이다. 시장경제가 사회주의경제보다 자원배분에서 더 우월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시장기구의 신호등기능 덕분이다. 그러나 이 기능을 과신하여 시장에 맡기면 필요한 상품들이 과부족 없이 적절하게 생산된다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폐기되거나, 생산비도 못 건지는 헐값으로 처분되는 상품들이 얼마나 많으며, 투자비도 못건지고 망하는 기업들도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넷째로 시장은 개인들의 사익을 조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개인들의 사익추구가 서로 충돌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갈등만 존재하고 경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사익추구를 조화시키는 조절기구가 필요하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시장기구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시장기구의 이 기능을 신비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전혀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단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교환의 이익일 뿐이다. 시장 교환에서는 거래 당사자 쌍방이 모두 이익을 얻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만일 어느 한쪽이라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자발적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시장기구가 사익을 공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당사자 쌍방 모두가 이익을 얻을 뿐이다. 스미스는 시장경제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전체의 이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시장경제를 신비한 것으로 칭송하였으나 이는 과장이다. 시장거래는 거래 당사자에게는 이익을 주지만 당사자의 경쟁기업들에게는 이익이 아니라 경쟁 탈락이라는 손해를 준다. 시장거래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거래 당사자들과 이들의 협력기업에게만 이익을 줄 뿐이다.

앞에서 본 여러 이유 덕분에 자본주의경제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경제적 풍요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 이를 시장의 성공(market success)이라고 부른다. 수 천 년 동안 거의 정체되어 있던 인류의 경제생활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발전하였다.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17세기 중반부터 세계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서기 원년의 2억5천만명에서 1650년의 5억4천5백만명으로 천육백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겨우 두 배로 증가하였던 세계인구가 1750년에 7억2천8백만명, 1800년에 9억백만명, 1900년에 16억8백만명, 2000년에 60억9천만명으로, 1650년경부터 급속하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Todaro & Smith, Economic Development, 9th ed. 2006, p. 265).

자본주의의 성공

경제발전은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모두 인정한 바다. 자본주의경제의 발달은 비단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발전을 초래하였다. 자본주의경제의 발달을 토대로 하여 과학과 의학, 정치제도와 법, 음악과 미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 이전보다 훨씬 급속하고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발전시켰는데, 자유주의의 보급이 그것이다. 앞의 칼럼 6, 7, 8에서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발달 덕분에 부르조아지가 새로운 사회주도계급으로 성장하여 이들의 이념인 자유주의가 널리 보급되고 실현되어 자유와 평등이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확대되었다. 수 천 년의 오랜 세월 동안 신분, 인종, 종교, 성, 재산 등 여러 이유로 민중들을 억압하여 오던 많은 사회적 차별이 철폐되거나 크게 완화되어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이 그 이전과 비교가 안되게 널리 실현되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과거 봉건 사회에 비하여 경제와 비경제 모든 면에서 훨씬 인본적이고 풍요롭고 합리적인 근대문명사회를 건설한 것을 자본주의의 성공(capitalism success)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성공은 경제에 국한한 것인데 비하여 자본주의의 성공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의 긍정적 기여를 지칭한다. 시장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부분이다.

자본주의가 여러 심각한 병폐를 갖고 있긴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과거보다는 전반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더 확대되었고, 인간의 염치없는 무자비한 폭력이 증가하여 다른 생명들은 많이 멸종하고 살기 힘들어졌으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물질적 풍요도 많이 증대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은 다음 번 글에서 보기로 한다.

 

 

 

/이근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9월 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