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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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의료법 개정안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


의료법 개정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34년 만에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정부가 발표하려 하자 의료계가 의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하며 집단적인 휴업과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의 궐기대회를 강행하였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의료의 상업화와 의료공공성을 훼손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의료계와 전혀 다른 이유로 의료법 개정안의 독소조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개정안이 환자의 주권 강화와 의료에 대한 규제완화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법안이라고 선전하며 법개정을 고수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형국이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이익집단의 압박에 휘둘리거나 의사단체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왜곡되고 있지만, ‘제2의 의료대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국민들의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의료법 개정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을 엄격히 따져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의료계가 문제로 삼는 주요 내용은 △의료행위에 투약이 빠져있다는 것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이 들어감으로써 의사 고유의 영역을 훼손했다는 것 △유사의료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 △ 표준진료지침의 제정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은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큼 절박한 문제가 아니다.


시술과 투약 등은 통상의 의료행위에 포함되는 개념이므로 굳이 투약을 의료행위의 정의에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조제권을 둘러싼 약사와의 주도권 다툼을 고려한 속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또 간호사의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하는 것이나 유사의료행위 인정에 대해 반발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영역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 이상의 의미일 수 없다.


표준진료지침의 경우에도 많은 선진국에서 적용하고 있고 전문학회나 단체에 제정을 위탁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권 침해를 근거로 반발하는 것을 상식적이라 할 수 없다. 유사의료행위 인정도 침, 뜸 등 그동안 제도권 밖에 놓여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할 근거를 만든 것에 불과하고 의사들의 의료영역과는 엄연히 구분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비본질적인 이유만이 전면에 부각된 채 국민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독소조항에 대한 언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정부가 발표한 최종안대로 의료법이 개정되면 비영리업이었던 의료제도를 영리업으로 바꿔 의료기관을 돈벌이 전선으로 몰아가고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데도 이 같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의료인의 설명 의무나 진료기록 위변조의 조항과 같이 기존에 인정되어 온 환자의 권리는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한 반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의료법인의 인수합병 허용과 비전속 의사 진료허용, 비급여비용에 대한 가격계약허용, 비급여비용에 대한 할인면제에 대한 유인알선 허용, 의료광고 허용 및 범위 확대, 부대사업 범위 확대 등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이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면, 의원급 의료기관보다는 병원 안에 개설된 의원을 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병원에 유리한 구조로 의료기관이 재편성되면서 주거지 근처에 있던 동네병원은 대형병원에 의해 서서히 사라지고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에도 집과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는  대형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동네의원 몰락은 1차 의료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또 비전속진료를 허용할 경우에 유명 의사가 프리랜스로 활약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의사가 진료보다는 돈벌이에 치중하게 만들고 고용 의료기관에는 인건비 부담만 늘 릴 수 있다. 또한, 의료광고가 대폭 허용되고, 진료비 할인과 환자 유인이 가능해지면 의료기관은 더 이상 진료비 수입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의 인수합병을 허용하면 의료기관 자체가 투기대상이 되어 병원을 사고파는 장사가 가능해 지고 병원을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게 된다. 게다가 병원 내에서 관광, 숙박도 가능해 짐으로써 병원이 진료 및 치료행위보다 돈 벌이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온통 돈벌이에만 열을 올리는 의료기관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민의 건강을 믿고 맡길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될 것이다.


특히 지금도 감기나 배탈 환자를 놓고 대학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거대자본과 결합한 의료인과 의료기관만이 의료시장을 독점하는 경쟁적 의료 환경으로 몰아갈 경우 국민들이 의료비 급증은 물론 그 피해자가 될 것은 불보 듯 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환자 중심의 의료법 원칙이 어느 한쪽의 이념이나 직역이기주의에 밀려 더 이상 왜곡되게 만들 수는 없다. 의료법은 환자주권주의적인 관점에서 개정이 돼야 하며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독소조항은 분명히 삭제되어야 한다.


의료는 환자와 의사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해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국가의 개입이 필연적인 공공재이다. 시장경제 원리보다 공적분배 원칙에 충실해야 할 분야인 것이다. 만일 현재 개정안과 같이 의료에 대하여 무리하게 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가장 피해를 보게 될 당사자는 바로 국민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