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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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이야기]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한 안식년
200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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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경실련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어섰다. 작년에 나는 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안식년을 맞게 되었다. 미국에서, 그것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황금같은 안식년이기에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 바쳐 가족에 충성 vs 영어 완전 정복

주변에 수소문을 해 보니, 비학위과정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1년을 보내게 될 경우 대체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목표로 정하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중 하나는 ‘온몸 바쳐 가족에게 잘하라’는 거다. 그 동안 직장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간들을 통해 그 동안의 못했던 걸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숙원처럼 인식되어 온 ‘영어 완전 정복’. 1년 동안 미국인들과 수시로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어에 모든 게 노출되기 때문에 이 기회에 영어를 확실하게 마스터라는 거다.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라

그러나 미국 생활을 앞두고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은 어떤 선배가 나에게 던져 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우리네 인생을 축구로 비교하자면 우리 인생은 전반, 후반 그리고 중간에 쉬는 시간인 하프타임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내게 주어진 안식년을 하프타임으로 이용하라는 조언이었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고,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점검하며 숨을 고른다. 그리고 어떻게 후반전을 뛰어야 할 지 작전계획을 세우고, 체력을 비축하는 인생의 후반전을 멋지게 뛸 수 있는, 그런 하프타임을 가지라는 거였다.

미시간 주립대 VIPP 프로그램

내가 지난 1년을 보낸 미시간 주립대의 VIPP(Visiting International Professional Program)과정은 1991년에 만들어졌으며 주로 각 기업체, 공무원, 금융기관 종사자, 기자, 교수 등 각 분야에서 10여년 이상된 중견 간부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강의는 주로 미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인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세미나와 미시간 주립대의 정규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또한 미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세미나와 현장모임 등이 주선된다.

비학위 과정이다 보니 그것이 여행이 되었든, 공부 또는 연구가 되었든 본인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동안의 기간에 재충전하고 휴식하며, 미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내는 듯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근 미국에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여러 대학에서 생기고 있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간의 연륜과 노하우 때문인지 입학과정과 프로그램의 내용, 그리고 페로우들의 초기 정착 등에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새로운 깨달음

가방을 둘러매고 캠퍼스를 걷고, 학생들 틈바니 속에서 강의를 듣고 있으니 마치 아련한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내용과 관계없이 외형적으로 바뀐 학생이라는 신분과 새로운 환경은 그것 자체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또한 지금까지 처해 있었던 한국이란 상황, 시민운동 그리고 모든 대인관계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과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직면하게 되었다.

“지난 10여년 간에 해 왔던 시민운동은 나에게 의미있는 것이었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등등. 그 때 나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 선배가 말했던 하프타임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런 의문들을 가지면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변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삶은 어느 한곳의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신없이 앞만보고 달리느라 옆의 것들을 여유있게 보지 못했던 것이 지난날의 나의 삶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급해 하지 않고 내 주변에 주어진 것들을 찬찬히 살피고 그것들을 음미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새롭게 깨닫게 된 내 자신의 모습, 내 주변 사람들과 일의 의미 등을 근거로 보다 힘찬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잘 쉬다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후 많은 분들이 “미국 생활이 어땠냐”고 물어볼 때면 나는 “잘 쉬다왔다”고 대답한다. 뭔가 대단한 답변을 기대했던 모양들이신지 나의 이런 대답에 약간은 어이없어 하신다. 그러나 지난 나의 1년간의 미국생활을 ‘잘 쉬다왔다’는 것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왜냐하면 그간의 생활은 지난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하프타임이었기 때문이다.


(김한기 경제정의연구소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