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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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3 : 사회적 자유주의





지난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국은 19세기 초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달성한 이후 19세기에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시대 영국은 세계 제일의 산업기술과 전 세계에 널린 광대한 식민지라는 두 가지의 막강한 경쟁력 덕분에 압도적인 세계제일의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자유방임주의를 전면 실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빈부양극화, 독점화, 불황과 같은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가장 먼저 분명하게 나타남에 따라서 자유방임주의는 비판을 받게 되고 퇴조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정부의 경제규제가 철폐되고 법질서가 확립되면 상공업이 발달하고 그 덕분에 부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모두 생업을 갖게 되어 잘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런 스미스의 전망은 틀렸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경제는 크게 발전하였지만 그 혜택은 소수 자본가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인구의 절대다수를 점하던 무산자 계층들(노동자계층과 실직 빈민층)은 비참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시 영국에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매우 낮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하였으며 실업자도 많아서 무산자 계층은 말할 수 없이 더럽고 비좁은 빈민가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당시 부르조아들만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지식인들도 가난은 당연한 것이라고 보고 방치하여 공공복지제도가 거의 없었다. 위대한 칸트조차 “불평등은 효율성을 위한 필요악이다”라고 말하였으며, 감자 흉년으로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1847∼51) 아일랜드 총독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하고 영국정부는 시장에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조를 거절하여 백만 명이 아사하고 백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여 아일랜드 인구가 25%나 감소하였다. 188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의 노동자계층이 여가를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19세기 노동자들의 극심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전적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등장한 새로운 사상이 둘이다. 하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이다. 신자유주의(the New Liberalism)라고도 불리는 사회적 자유주의는 밀(J. S. Mill, 1806∼1973)에서 시작하여, 그린(Thomas Hill Green, 1836∼1982), 홉하우스(Leonard Trelawny Hobhouse, 1864∼1929), 홉슨(John Hobson, 1858∼1940)으로 대표되는 사상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말고 과거에 두 개의 신자유주의가 있었다. 하나는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이고 또 하나는 2차대전 직후 서독의 질서자유주의(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봄)이다. 사회적 자유주의자들과 질서자유주의자들은 모두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르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영국은 국회입법을 통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노동문제와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개량주의가 성공적으로 추진된 대표적인 시대이며, 이 시절 영국 개량주의를 뒷받침한 사상이 바로 사회적 자유주의이다.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한 마르크스와 달리 이들은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면서,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치적 자유주의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소득재분배정책을 통하여 빈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19세기 영국에서는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국가권력이 개인을 침해하는 일은 거의 없어져서 국가권력은 더 이상 자유의 압제자가 아니게 되었다. 반면에 자본주의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빈부양극화는 심화되어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무산자계층은 비참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 자유의 주된 적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생각이 널리 공감 받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 이러한 개인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 빈곤이다. 따라서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자유의 개념이 종전의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베를린(Isaiah Berlin)이 말한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란 타인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며,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불공정한 분배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점에서는 사회적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나 똑같다. 하지나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량주의적 방법으로 노동자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토지와 상속과 고소득에 대하여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저렴한 공교육을 제공하여 기회의 균등을 마련하고 강력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노동조합을 보호하여 무산계층의 빈곤을 해결하자고 이들은 주장하였다.

정부를 신뢰하고 시장을 불신하는 이러한 입장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반대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부를 불신하고 시장을 신뢰하여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던 것에 반해 사회적 자유주의는 시장을 불완전하다고 보고 정부를 신뢰하여 정부의 경제개입을 주장하였다. 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노동자의 빈곤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면서 자본주의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된 덕분에 정부는 이제 압제자가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개인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개인이었다. 이러한 원자적 개인주의를 비판하여 사회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개별성(개체성)과 함께 사회성을 강조하였다. 밀은 타인의 행복을 자기의 행복과 동일시할 때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으며, 노동자의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제도의 문제이므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의식향상과 함께, 토지소유의 제한, 엄격한 상속세의 실시, 노동조합의 육성, 협동조합의 건설과 같은 사회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밀의 관점을 이어받아 그린은 사회유기체설을 주장하고 홉하우스는 이를 계승하였다. 이는 사회와 개인은 서로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으므로 개인은 사회에 협력하고 사회는 개인의 어려움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사회유기체설은 개인은 사회목표를 위하여 봉사하여야 한다고 보는 전체주의와는 전연 다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단지 사회를 떠나서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만을 인정할 뿐이지,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단연코 반대한다. 이들에게 여전히 궁극적인 가치는 개인만이 가지며, 자아실현(적극적 자유)이라는 목표를 개인이 달성할 수 있도록 개인능력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라고 본다. 전체주의에서는 국가가 목표이고 개인이 수단인 반면,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이 목표이며 국가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도 여전히 개인주의이며 자유주의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국 자유당의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보수당과 함께 교대로 집권하였던 자유당은 사회적 자유주의의 이념에 따라서 많은 사회개혁법을 제정하였다. 예를 들어 1906년에, 노동자 배상법, 노동쟁의법, 중소농장려법, 노인연금법, 어린이 보호법, 광부 8시간 노동법, 주택 및 도시계획법, 최저임금법, 직업알선법, 국민보험법을, 1913년에 노동조합법을 입법하였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진보주의라는 뜻을 동시에 갖게 된 것도 사회적 자유주의 때문이다. 자유당은, 노동당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보수당에 대립한 진보적 정당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노동당이 등장한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본가의 정당도 노동자의 정당도 아닌 애매한 성격으로 인하여 급속하게 쇠락하여 개혁정당의 주역을 노동당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노동당으로 옮겨갔다.

이처럼 사회적 자유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났다고 볼 수 있으나, 사회적 자유주의의 이념과 정책은 그 후 영국의 노동당과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그리고 미국의 수정자본주의에 의하여 오늘날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현대의 복지국가의 이념으로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8년 만에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였던 영국 노동당 당수이자 수상(1997∼2007)이었던 토니 블레어가 수상 취임 시 사회적 자유주의를 새로운 것인 양 들고 나온 것은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이근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11월 0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