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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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자치구 및 구의회 폐지, 반민주적이며 반자치적 발상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이하 개편추진위)가 13일 본회의에서 서울을 제외한 부산·대전·광주·울산·인천·대구 등 6개 광역시의 경우 구청장은 정부가 관선으로 임명하고, 서울 모든 광역시 구의회는 없애는 내용을 의결했다. 즉, 74개의 지방자치단체를 한꺼번에 폐지하는 무모한 결정을 한 것이다. 개편추진위원회는 또 인구 또는 면적이 해당 특별시나 광역시 자치구의 평균보다 크게 낮은 10개 자치단체를 획일적인 잣대로 통폐합하도록 했다.

 

특별시나 광역시의 구 의회의 폐지와 구청장 임명직 전환은 한마디로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먼저 자치구의 폐지는 구단위의 주민편익과 지역발전을 챙기고 책임을 지는 지방정치인이 없어져 지역발전의 구심력이 상실될 수 밖에 없다. 지역주민들이 겪고 있는 여러 생활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구정에 반영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삶에 밀착된 풀뿌리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단위의 역할은 존재해야 한다. 개편추진위가 처리한 개편안대로라면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는 자치구는 없어지고 행정구만 남게 되어 사실상 인구 100만명 이상의 광역시로 기초단위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구가 많고, 정치적 발언권이 강한 지역에 자원이 집중적으로 배분되어 지역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으며 풀뿌리 생활 정치는 불가능해지면서 지역별 자율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게 진다. 또한 서울은 그대로 둔 채 6대 광역시만 구청장을 관선으로 바꿔야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 경우도 구청장을 민선한다고 하더라도 자치권이 박탈된 구청장은 지시에 따라 집행하는 기능만 하는 하급기관일 뿐 구민을 위한 아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형태를 “준자치제”라고 미화한 것은 일종의 대국민 사기이다.

 

구의회 폐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이를 전달할 구조가 완전히 없어져버리게 된다. 광역의회가 그 기능을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의회의 규모가 다르고 그 책임성도 약한 광역의원들이 개별 구정 활동에 관심을 갖고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제기 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반 시 이상의 인구 규모를 갖는 정도의 자치구에 지역주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지역주민들의 자치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구청장은 민선으로 하고 구의회를 폐지하는 서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독일의 준자치구의 경우는 구청장은 임명하되 구의회는 구성하도록 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의회 폐지나 구청장 임명직 전환은 광역단체-기초단체의 역할과 위상의 정립, 이에 따른 권한 배분과 같은 전체적인 큰 그림이 그려진 후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부차적인 문제이다. 도와 광역시의 통합 문제나 기초자치단체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들 문제를 논의하게 되면 향후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개편 논의가 자치구의 개편 내용에 맞추기에 급급해지면서 매우 기형적인 개편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시・도 폐지와 70-80개의 통합시 설치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구의회 폐지, 구청장 임명직 전환은 지역주민의 삶과 직결되며 지방자치의 근간을 바꾸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므로 충분한 논의 과정과 이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개편추진위는 이번 결정을 충분한 여론 수렴과정도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하게 강행했다. 그동안 회의를 전원 합의로 진행해왔던 개편추진위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서는 일부 위원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격 표결 처리를 강행했다. 강현욱 위원장은 “시간이 없다, 내가 책임진다”며 비공개 회의를 통해 표결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결 처리에서도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는 등 처리 과정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개편안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 것은 개편추진위의 개편안의 정당성과 타당성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학계,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공개적인 논의 과정을 거치고 이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개편추진위는 밀실에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시간에 쫓겨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을 끝내려고 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시간에 쫓겨 급하게 끝낼 사안이 절대 아니다. 개편추진위는 이번 미숙하고 무모하며 반자치적인 개편안을 그대로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해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결정인 만큼 해당 지역민의 합의와 자치적인 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자치권을 박탈하여 무장해제 시키고, 지방자치단체를 예속적 행정기관으로 전락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경실련에서는 이번 추진위원회의 결정을 반민주적인 지방자치 학살 음모로 규정하고 이번 개편안이 폐기될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밝혀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