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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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중소기업] 재벌개혁 포기하면 경제위기 다시 온다

1. 재벌개혁 포기하면 경제위기 다시 온다


 재벌의 연쇄도산은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동시에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 하에 정치권과 정부, 재계의 합의하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였다. 이렇게 비상한 시기에 개정된 법이 채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실련은 일찍이 이점을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정이 다시 위기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현재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논의들이 우리 모두 생생히 목격한 경제위기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재벌은 경제위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주장도 펴고 있고, 재벌의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금융시장을 포함한 주변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런 주장들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세심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재벌이 경제위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 동안 여야정이 합심해서 추진해 온 재벌정책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것인가? 그 동안 추진해온 재벌정책이 효과를 발휘해서 재벌개혁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인가? 외부환경이 바뀌었다는 주장은 과연 얼마나 신뢰할 만 한가? 


 <경실련>은 재벌이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추진된 정책을 경제위기를 도외시한 채 그 존폐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경고하는 바이다.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도 경제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한 논리와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다. <경실련>은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한 졸속 처리를 반대하며, 공개적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것을 요구한다.

2. 대마불사와 대마몰사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위기는 재벌의 대마불사(大馬不死)와 대마몰사(大馬沒死)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재벌의 계열사가 부실화되어도 망하지 않다가, 부실이 심해지면 건실한 계열사까지 포함하여 모두 함께 망하는 대마몰사현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재벌의 부실계열사가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 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정부가 강제적으로 퇴출시키기도 했다. 몇 년이 되도록 30대 재벌에서 문닫는 계열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대마불사현상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불황이 닥치면 다시 한번 전 계열사가 무너지는 대마몰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현대그룹의 경우에도, 자동차의 계열분리를 강력히 주장한 <경실련> 등 양심적 학자들과 이를 받아들인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전 계열사가 동시에 무너졌을 것이다. 98년 이전과 같이 현대의 계열사가 채무보증으로 얽혀 있었다면 정부가 개입해도 계열분리를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동안 이루어 놓은 재벌개혁의 성과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부실기업을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있기에 현재 시장에 주는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개혁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정부의 강제에 의해 계열분리를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는데, 이 시점에서 재벌개혁을 포기한다면 대마불사와 대마몰사에 의한 경제위기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3. 재벌에 대한 규제는 세계적 대기업의 육성을 저해하지 않는다


 재벌에 대한 규제가 세계적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역차별이며, 우리 기업의 대형화를 막고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의 대형화를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현재 규모보다 10배, 100배가 되어도 현행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규정은 부실계열사에 대한 출자나 순환출자를 통한 가공자본의 형성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핵심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계열사 출자나 심지어 비관련 다각화를 위한 투자일지라도 순자산의 25%이내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건실한 계열사에 대한 출자는 사실상 전혀 제한이 없는 것과 같다.


4. 재벌에 대한 규제가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다


 재벌에 대한 규제 때문에 투자가 저해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여러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투자에 관한 연구보고서에서 재벌에 대한 규제가 투자를 저해한다고 언급한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큼 투자와 관련이 있다는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투자는 IT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 이후의 투자 현황은 이러한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현재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세계적 불황 때문이고, 경기가 좋아지면 저절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한다고 해서 투자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을 하는 보고서는 없다. 아무런 실익이 없는 반면 또다시 경제위기를 초래할 만큼 위험한 규제완화를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5. 재벌정책의 핵심은 부실계열사에 대한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독과점에 따른 폐해 외에 정상적인 경영에 대해서는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에서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채무보증을 금지하며 부당내부거래를 단속하는 것은 모두 이처럼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을 감독하는 규정에 불과하다.  


부실한 재벌의 계열사 대신에 건실한 중소 경쟁업체가 퇴출되는 것은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저해한다. 재벌소속 계열사라는 이유로 퇴출 되지 않다가 부실이 심화되면 다른 건실한 계열사까지 무너뜨리는 것 역시 시장을 교란하게 된다. 재벌기업이 진정으로 시장경제를 주장한다면 이러한 공정경쟁에 저해되는 행위는 스스로 그만 두어야 옳다.


 따라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감독하는 공정거래법에서 이렇듯 부작용이 많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6.  재벌 계열 금융, 보험회사 주식의 의결권을 부활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은 재벌 계열 금융회사나 보험회사가 고객이 맡긴 자금을 이용하여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나 보험회사가 보유하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박탈했었다. 이 제도는 부실한 계열사에 대한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동시에 고객의 자금을 총수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던 것이다. 자산증식이나 미래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일반금융고객들의 돈을 계열사 지배 및 총수지배력강화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이 중요한 제도를 아무런 논리적 설명 없이 폐지하려는 것은 부당하다.


7.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악성 순환출자 억제, 지배구조 왜곡방지, 무분별한 계열확장 억제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1)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악성 순환출자를 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계열사 A가 계열사 B에 출자하고 다시 계열사 B는 C회사에 출자하는 경우 완전한 가공자본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수시로 계열사간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지원하여 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상되는 폐해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재무비율의 분식


    이러한 가공자본을 이용하여 자본을 증식하는 경우 부채비율이 대폭 좋아지는 등 겉으로 보이는 재무비율이 분식된다. 출자비율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반론을 예상할 수 있지만, 비상장기업을 포함한 순환출자를 하는 경우 주식시장 참여자와 같은 일반투자자는 회사의 재무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은행과 같은 전문금융기관이나 감독기관의 경우에도 계열 금융기관의 뮤추얼펀드나 투자신탁 또는 특정금전신탁 등을 포함하여 자금을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순환출자를 하게 되면 이러한 형태의 분식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2) 기업투명도의 저하


 개별 기업의 재무제표만으로 정확한 재무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전반적인 기업투명도의 저하를 의미한다. 특히 국내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투자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최근 국내 기업의 투명도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매우 부정적인 상태에서 다시 출자총액제한제도마저 철폐한다면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3) 부실기업의 위장


    기업투명도가 저하되면 부실기업을 제대로 가려내기 쉽지 않게 된다. 또한 역으로 기업투명도가 저하된 상태에서 한 기업의 부실이 알려지면, 다른 계열사에 대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건전한 기업마저 악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철폐하면 불투명성을 심화시켜 일부 계열사가 도산하면 전 계열사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실계열사를 지원하게 된다. 결국 부실해 지더라도 망하지 않는 대마불사(大馬不死) 현상이 지속되다가 일단 일부에서부터 부실이 알려지게 되면 전 계열사가 도산하는 대마몰사(大馬沒死)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4) 부실기업의 양산


    전반적으로 부실기업이 위장될 수 있는 가능성은 시장의 규율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되고, 이것이 전반적인 재벌부실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계열사간의 출자는 재벌계열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재벌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계열사를 동원하여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재벌계열사에 대해 시도된 적이 없다. 총액출자제한제도가 철폐되면 더욱 적대적 인수합병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시장규율수단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는 산업에 대한 기업의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지 못하게 함으로써 재벌기업이 주장하는 시장경제의 원칙과도 모순된다.


    (5) 경제위기 초래 가능성


    가공자본은 실제로 일부 계열사가 도산할 때 전 계열사의 연쇄도산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한 계열사의 도산은 그 계열사에 출자한 계열사의 부실을 가져오며, 불투명성까지 고려하여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면 전 계열사가 동반 도산하게 된다.
    IMF사태 이전에는 주로 채무보증을 통해 부실기업을 지원했기 때문에 연쇄도산의 원인도 채무보증이 되었다. 채무보증이 98년에 금지된 후 계열사에 대한 지원은 주로 출자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총액출자제한제도를 철폐하면 전 계열사의 동시 도산으로 인한 시스템위험(system risk)을 높여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2)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현재 재벌 지배구조의 왜곡을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재벌의 총수는 계열사간의 출자를 통해 전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해 왔다. 계열사의 출자액을 높이면 높일수록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철폐하는 순간 재벌총수의 지배력은 공고히 된다.


   (1)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경영


 계열사간의 출자를 통해 총수일가는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재벌을 지배하게 된다. 만약 계열사간 출자가 전혀 없다면 총수는 지배권을 상실했을 것이다.
 적은 지분을 가지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제도와 법의 미비로 인해 이해당사자의 이익이 침해당했을 때 구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총수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왜곡된 경영행태를 보이게 된다. 총수 개인의 경영능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경영실적이 나쁠 때 퇴진시킬 수 없다면, 비효율적인 경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영의 극단적 행태는 주가조작이나 편법상속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이 주가조작이나 편법상속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법제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집단소송제에 이러한 부분은 빠져 있기 때문에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재벌에 대한 규제를 풀어도 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관련법을 완비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관행이 정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때까지 총수의 전횡을 방지할 수 없다면, 총수의 지배력을 억제할 수 있는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2)  세습의 공고화


 선진국에서도 모두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유자와 경영자가 일치하는 형태의 경영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창업자가 사망한 후 2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되었고, 이러한 체제가 기업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경우가 많다.
 출자총액제한이 풀리면 총수 일가는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지배력을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벌의 세습이 매우 용이하게 된다. 전근대적인 경영세습이 지속될 때 한국경제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3)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무분별한 계열확대를 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1) 재벌은 아직도 무분별한 계열확대를 지속하고 있다
 
   현대 경제에서 경쟁력은 핵심역량을 심화시키는데서 온다. 경제위기 이후 정부에서는 핵심역량을 강화하라고 끊임없이 주문해 왔지만, 재벌의 행태가 변화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년 간에도 4대 재벌의 계열사가 25개나 늘었고, 30대 재벌로 확대하면 무려 80개가 증가하였다.


   (2) 무분별한 계열확대가 수익성을 저하시킨다
 
   재벌은 계열사간 출자를 이용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많은 산업에 진출해 왔다. 때로는 중소기업을 몰락시키기도 하고, 재벌 계열사간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어 모두 부실화되기도 하였다. 부실계열사가 자연스럽게 퇴출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빅딜이나 워크아웃, 강제 퇴출과 같은 인위적 개입을 통해 부실기업을 정리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산업의 경험을 통해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이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많은 비용을 들여 경험한 바 있다. 삼성자동차가 진입하자 다른 자동차회사들도 생존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확장을 해서 전 자동차 산업이 붕괴되었고, 많은 공적자금을 투하하는 원인이 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철폐되면 또다시 문어발식 확장이 계속될 것이며, 모든 재벌이 어쩔 수 없이 확장경쟁에 뛰어들어 많은 재벌을 부실화시킨 과거의 폐해가 반복될 것이다.


8.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는 존속되어야 한다


  온 국민은 아직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던 97년도의 악몽같은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한보(14위)사태로 시작하여 진로(19위)와 기아(8위)의 부도로 외환위기가 촉발되었고, 그 이후 한라(12위), 동아(13위), 해태(24위), 뉴코아(25위), 거평(28위), 신호(30위)의 연이은 부도로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일반 서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을 고려할 때 30대 기업집단제도를 폐지하자거나 아니면 그 수를 대폭 줄이자는 논의는 이해하기 어렵다. 30대 기업집단을 관리해 왔음에도 이렇게 연쇄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아예 관리를 포기한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를 폐지하거나 그 수를 줄이자고 주장하기 전에 97년과 같은 중소재벌의 연쇄 도산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부터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런 대책이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무조건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다시는 97년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실재벌의 생성을 사전에 막고 재벌의 계열사가 동시에 무너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평상시는 황제경영을 일삼다가 경영이 부실화되어도 책임지지 않는 총수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아직 경제의 안정적 운용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재벌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재벌을 양산하여 위기를 초래했던 IMF구제금융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9.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30대 재벌 중 절반이 도산하면서 역사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재벌의 수익성을 무시한 방만한 투자의 결과였다.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경영관행을 주주중심의 수익성위주 선진경영관행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출자제한이 폐지되었던 2년간 재벌들의 무분별한 투자행태를 볼 때 출자총액제한을 당분간 지속하여 재벌들에게 외부적 제약을 가해 합리적 우선 순위에 입각한 투자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출자제한이 폐지되었던 지난 2년간의 투자행태를 보면 재벌들이 아직 변한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늘려 그로 인한 폐해만 급증하였다. 재벌들이 스스로 무분별한 투자를 억제하고 핵심사업에 경영역량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재벌들에게 외부적 제약을 가해 합리적 우선 순위에 입각한 투자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출자제한은 당분간 지속되어야 할뿐 아니라, 이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가급적 예외는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은 장기적으로 폐지되어야 하겠지만, 이를 성급히 폐지하는 것보다는 그 필요성이 소멸되도록 경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자총액제한은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우리만의 특수성에 의해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음을 볼 때 출자한도의 성급한 폐지보다는 그 필요성이 소멸되도록 경제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재벌의 수익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투자, 주주를 경시하는 불투명한 경영관행, 차입자본 및 가공자본을 통한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재벌문제가 해소된다면 출자제한 정책도 그 존재의의가 상실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나라가 취해야 할 정책방향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주주중심의 수익성위주 경영관행이 정착되도록 지배구조가 개선되어야 하고, 또 이를 시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경영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집단소송제를 조속히 도입하여 소액주주 및 시장규율에 의한 경영진의 적절한 견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업의 투자가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면 굳이 출자한도와 같은 인위적인 제한조치를 가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독과점 방지를 위한 제도가 미비 되어 있고 이를 규제할 수단도 불비한 반면 단순한 독과점 문제의 차원을 넘어 경제력 집중 등 우리만의 특수한 문제는 더욱 심각함을 감안할 때 우리 나라도 조속히 선진국 수준의 독과점 규제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80년대 Bell사나 최근 MS사 등 과도한 독점기업에 대해 분할명령권을 행사하였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과도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나 계열사간 편법지원 등을 통해 사세확장에만 치중하는 거대재벌에 대해 분할을 명령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제한과 같은 제도는 재벌의 경영․지배구조가 선진화되고, 분할명령 등 강력한 공정거래체제가 정착된 것이 확인된 후에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벌들도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를 주장하기 전에 그러한 여건을 가급적 조속히 조성하기 위해 경영관행을 스스로 개선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