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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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CCEJ 칼럼] [사무총장 칼럼] 정책선거를 하려면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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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선거를 하려면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

제19대 대통령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헌정 사상 유래가 없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그리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공격 발언 등 어느 때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치러졌다.

시민들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고 외형적 경제성장을 넘어 경제적 부정의와 불평등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이 시대정신은 정당과 후보자들의 공약으로 공개된다. 정당은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형성된 집단이고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자의 철학과 공약을 보고 지도자를 선택한다. 그래서 공약은 정치집단이 자신들의 지향하는 가치와 사회변화의 방향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집단의 공약과 경쟁을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약속이다. 만약에 공약이 사회전체를 포괄하지 않고 일부분만을 담고 있거나, 제시된 정책들이 상호 유기적 연계 없이 파편화되어 있거나, 정책 수행에 따른 치밀한 예산계획이 없다면 그 정치집단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다.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경실련이 이번 선거에서 정책선거를 가로막는 요인들을 평가하면

첫째, 후보자의 철학과 비전이 아닌 엉터리 공약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와 정당의 공약들은 공약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매우 부실한 것들이었다. 공약이 최소한 후보자 등록 때에는 제시되어야 하지만 투표일 10여일 전에야 공개되고, 공개된 공약이 논란이 일자 감추거나 숨기고, 내용은 없고 제목만 나열하거나, 공약을 실행할 예산이 없거나 제시된 예산도 엉터리였으며, 후보자들이 자신의 공약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정당에게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그 비용의 30% 이상은 반드시 정책 개발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정당들이 지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선 공약집을 제 때에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19대 대통령선거가 대통령의 탄핵이란 특수한 조건에서 조기에 실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정당들의 대선공약집을 늦게 발표한 결과 전 국민이 보는 TV토론에서 좋은 공약 경쟁을 통해 사회변화의 정책적 합의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네거티브 공방이나 가짜 뉴스가 선거의 흐름을 장악하였다. 향후 국민의 세금으로 정책 개발비를 보조받는 정당은 후보자 등록과 동시에 공약집을 함께 제출하도록 강제하거나 공약집을 제출하지 않는 정당에 대해서는 선거보조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제약하여 제대로 된 정책 검증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후보자들 공약의 우열을 평가하지 못하도록 막은 선거였다. 선거는 좋은 공약을 경쟁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현행 선거법 108조 3은 언론기관이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공약에 대해 비교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후보자 등별로 점수 부여 또는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즉 정책과 공약을 ‘비교평가’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점수로 서열(우열)화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순된 법이 정책 대결을 막고 있다. 어떤 것을 평가하던지 완전한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고 주관적 요소가 작용한다. 그 주관적 요소란 평가자 집단이 추구하는 자신들의 가치에 기반을 두어 후보자들의 공약을 평가하거나 검증하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를 바라는 집단이 정당과 후보자들이 공개한 공약에 대해 자신들의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점수로 공개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좀 더 후보자들의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평가에 대한 논란 속에서 정책선거가 더욱 활성화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국 공약평가의 서열화를 금지하는 선거법의 수혜자는 정치인들이고 피해자는 시민이다. 향후 ‘정치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과 정책 논쟁을 가로막는 선거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들에 대한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권리이기에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제약하거나 정책 검증의 기회를 박탈하는 선거법은 개정되어야한다.

셋째, 후보자 TV토론회가 정책 경쟁의 장으로 이용되지 못했다. 미국은 비정파적 민간기구인 대통령토론위원회(Commission on Presidential Debates)가 토론의 방식이나 주제 등을 결정하며, 방송사별 차별화된 TV토론이 이루어진다. 한국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미국의 대통령토론위원회와 유사한 비정파적 민간기구가 방송사와 협의하여 좀 더 자유롭고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정책 검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 보장과 후보자 정책 비교 등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만 TV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청중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를 진행하고, 1위와 2위 후보 간 양자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선거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금지하여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 선거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일 6일 전부터는 공표하지 못한다.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그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여론조사기관의 책임성을 모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정책 경쟁이 실종되면서 네거티브와 가짜뉴스가 넘실대는 깜깜이 선거가 진행되었다. 선거여론조사 공표금지는 오히려 왜곡된 여론과 근거 없는 비방이 은밀히 SNS 유포되는 환경을 만들었고 여론조사기관이 선거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만 제공하였다. 특히 이번 선거는 SNS 상에서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여론을 출렁이게 만들었음을 고려하면 과감하게 풀어 공개적으로 검증하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자가 제시하는 공약을 공개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선거와 관련한 소소한 규제들은 과감히 없애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여 정책 논쟁의 장을 마련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알 권리, 그리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보다 의미 있는 선거 경쟁,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금권선거, 관권선거, 조직선거의 병폐들로 인하여 공정성을 강조하는 선거법은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맞게 반영하여 개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