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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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정치인의 말하기 능력_박상기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정치의 기본은 말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의 말은 명확한 것은 물론이고, 표현도 신중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통일 대박론’ ‘진돗개 정신’에서 대통령의 내면이 보이는 것 같아 서늘하다.

박상기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말은 생각, 사상을 나타내는 기본 수단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사상을 형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말은 그 자체가 곧 행위이다. “황소는 그들이 가진 뿔에 얽매어 있고, 사람은 말과 의지에 얽매어 있다”라고 한 프랑스 작가의 표현은 그래서 타당하다. 말이 지닌 영향력은 행위보다 오히려 더 지속적이다. 한 인간의 행동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그가 한 말은 두고두고 매체를 통하거나 사람들 입에 회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태생의 유대계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나치 시대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 재판을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이 가진 세 가지 무능을 지적했다. 즉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그리고 타인 처지에서 생각하기의 무능. 이 세 가지 능력은 분리되지 않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타인 처지가 되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없으며, 협소한 사고능력을 지닌 사람이 설득력 있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은 인간 그 자체의 전인격적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장황하게 말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말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정치인과 국민, 국가 간의 교제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 일부 일본 정치인이 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과 식민 지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말은 발언 당사자들의 역사관, 인간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이 국가 간의 교섭을 가로막고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일본이라는 선진국의 이면을 드러내는 부정적 기능을 함은 물론이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 설득이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지배와 복종 관계를 상정하는 대신 국민 동의를 전제로 해서 정치를 한다. 그러므로 국민을 상대하는 정치인의 말은 내용의 명확성은 물론이고 표현방식도 신중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말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경박함과 무배려, 그리고 공격성으로 인해 국민들이 설득되기는커녕 정치 혐오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정당 대변인들의 거친 말은 이미 한국 정치의 전통이 되었다. 오히려 대변인의 거친 입을 능력인 양 평가하는 언론도 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있다. 윤 장관은 말 때문에 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기본적 사고가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미소와 상황에 맞지 않는 답변으로 인해 비판이 빗발쳐 결국 해임되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너무 아낀 나머지 그 의중을 알기 어려운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국민들이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상대로 너무 말을 아끼는 것은 신중한 처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통 부족으로 인한 오해나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크다. 

권력 행사는 침묵이나 미소가 아닌 설득력 있는 말로

국민이 대통령의 정책 목표와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은 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1년이 지난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주장해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의미와 표현의 적절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신년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국무조정실에 대해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첩 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보아 이러한 표현이 심경의 변화인지 사고의 변화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 내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느낌이 서늘하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이 이양되기 때문에 권력의 정당화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권력 행사의 정당화를 위해서 그리고 효율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말이 필요하다. 선출된 대통령이나 총리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침묵이나 미소만으로는 정책에 대한 동의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정치적 반대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말을 하려면 말꼬리를 잡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정책의 정당성·타당성을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하기 능력이다. 소통의 출발점은 말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인> 이 기사는 2014년 2월 25일 시사인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