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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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좋은 갈등, 이상한 갈등, 나쁜 갈등

이선우 (사)경실련갈등해소센터 이사장

갈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는 욕구갈등과 가치갈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좋은 갈등, 이상한 갈등, 나쁜 갈등의 세 종류로 구분하면서 이 갈등을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좋은 갈등이란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어떠한 사익도 개입하지 않는 갈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갈등집단 간 가치의 아치는 있을지언정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동일한 경우이다.


이상한 갈등은 정작 갈등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고 제3자들에 의한 제3자들을 위한 제3간 또는 제3자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소위 대리갈등 또는 갈등의 대리전으로 명명할 수 있다.


나쁜 갈등이란 사회와 국가를 위한 대승적 차원이 아니라 갈등당사자집단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진행되는 갈등 또는 서로 간 믿지 못하여 해소되지 않는 갈등을 말한다.


좋은 갈등이 착한 갈등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순수성과 솔직함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 갈등의 시작은 좋은 갈등들이다. 천성산 도롱뇽 생태습지보호, 새만금 갯벌보호, 노사 간 대립 등등 모두가 국가의 발전과 건강함을 위한 갈등들이다.


이상한 갈등이 이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인은 제쳐두고 손님들에 의한 갈등대리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주인의 주장보다 손님들의 입장만이 강조되기 때문에 갈등의 근본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가치는 멀어지고 손님들의 이해충족만이 남는 이상한 형국을 맞게 된다. 오랜 갈등 속에서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없다고 하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 있는 갈등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나쁜 갈등은 애초부터 사회나 국가의 이익은 고려치 않고 갈등당사자집단 자신들의 이익만 고려한 이기적인 갈등이거나 오랜 갈등 속에서 불신만 남고 커져 사회를 반목과 편 가르기로 지치게 만드는 갈등들이다.


그러면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너무나 순수하고 순진한 진단이지만 필자는 갈등의 핵심 속에서 솔직함과 자신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본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오!’ 라는 어느 종교계의 캠페인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의 현장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은 갈등 속에서 상대로부터 완벽한 승리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 과장과 논리적 비약성을 가진 주장을 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말에는 겉으로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원하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갈등당사자들 개개인들부터 갈등을 빚게 된 원인에 대하여 자신부터 솔직한 반성을 보이고 실제로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여 상호간의 오해가 없도록 한다면 이상한 갈등, 나쁜 갈등은 사라지고 좋은 갈등만 이 사회에 남지 않을까? 지금까지 감상적으로 써내려온 글의 내용에 대하여 필자 본인도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희망 섞인 메시지를 갈등의 현장에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