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보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미래사회를 위해 달리는 경실련의 최근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활동가이야기] 좌충우돌 영국연수기(2)-날씨,파운드,여자
200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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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온지 오늘로 어언 6개월 28일 이네요.완전히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그리운 경실련 식구들을 다시 볼 날도 멀지 않았네요.

다들 잘 계시지요? 지방선거 대응 등으로 연일 바쁘게 보내신 것 같아 좋습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노트북으로 달려가 경실련 사이트와 인트라넷 접속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곳에서도 어쩔 수 없이 경실련을 벗어나긴 어려운 모양입니다.

여기 처음 올 때 한국뉴스 일체 보지 않고, 특히 경실련 운동까지를 잊고 여기 생활에 집중해야겠다는 다소 촌스런 결심을 하기도 했었는데 말처럼 쉽지 않네요. 부지불식간에 영국뉴스는 놓쳐도 한국뉴스와 경실련 소식은 놓쳐서는 안된다는 제 자신을 보면 역시 삶의 조건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운동을 많이 못하여 배가 많이 나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잘 먹지 못하는데 배는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동하기에 주변 상황이 최적인데도 한국에서 안하던 운동을 여기 와서 갑자기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워요. 게으른 원인도 있겠지요.  

이곳 캠브리지 대학은 4월말로 05~06학년도 마지막 학기인 3학기 째가 시작되었습니다. 3학기는 시험학기이기 때문에 강의는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1,2학기에 진행된 강의들에 대한 revision class와 시험으로 마무리 되죠. 학생들은 시험 준비하고 페이퍼 제출하느라 정신없지만, Visiting Fellow 자격인 저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네요. 여전히 도서관 가서 책 읽고 가끔 저와 비슷한 자격으로 여기 온 한국 분들 만나며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1년이라는 체류기간의 반환점을 돌았기 때문에 그간 책 본 것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식으로 마무리해야 할 지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남은 기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더욱 심하네요.

공부와 관련해서는 정리가 끝나면 추후에 공유하기로 하고 오늘은 영국생활 6개월 동안 느꼈던 느낌이나 인상을 간단하게 스케치 해보겠습니다. 거창하게 영국인상 비평기라고 부칠 수는 없겠고, 그냥 중간보고 정도로 생각 하십시오.

아…그 놈의 영어, 영어, 영어

자주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음에도 이렇게 늦은 것은 다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입니다. 불철주야 열심인 경실련 가족들을 생각하면 사치스런 것이지만 아무튼 지난 6개월은 정신적으로 항상 여유가 없고 무언가 쫓기듯 보내왔습니다. 그렇다고 바쁜 일도 없는데 마음은 항상 이런 상태였지요.

홀로 지내면 대학 내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어떻게 보면 단편적으로 이곳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상황에서는 영국제도나 생활, 환경에 전면적으로 노출 되어 부딪쳐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정보가 부족한 생활초보자들에게는 심적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지요.

영어가 능통하다면 뭐 별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벌어지는 일마다 부담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다 준비되지 않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 더욱 긴장의 연속이지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앞으로 별일 없이 이곳에서 잘 생활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처음 여기 와서 중세의 고풍스런 건물모양과 천지에 깔린 숲과 잔디밭, 그리고 좋은 공기에 많이 감동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좋은 것도 딱 한달정도 지나니 그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군요. 화려한 외관에 비해 건물속의 비효율적인 구조도 눈에 들어오고, 아주 좁은 도로도 눈에 띄구요. 특히 생활 속에서 부딪치며 발생하는 문제들이 점점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것이 언어문제입니다. 영어가 참 잘 안됩니다. 처음 3달 정도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이곳 사람 만나는 것조차 두려움이 있었지요.

여기 오기 전 1년 가까이 학원 다니며 연습했지만 막상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여기 와서 리얼하게 경험합니다. 머릿속에는 뱅뱅하는데 입으로는 잘 안나옵니다. 오기 전에 테이프 듣고, 네티브가 아닌 외국생활 많이 한 한국인 2세들한테 학원에서 회화를 배웠는데 이게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더구나 저의 특유한 전라도식 악센트가 영어발음에 그대로 전이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을 초래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발음을 상대방이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대화초반부터 딜레마에 빠지고 ‘what”pardon”say again’소리만 들으면 그 다음부터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요. 그래서 한동안 이곳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다 여기는 BBC 표준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국제화 되지 않은 현지인들의 억양이나 발음은 BBC 발음과는 전혀 딴판이구요. 예를 들어 자동차 정비소 정비공들 발음은 참 어렵습니다. 영국인이라 하더라도 스코틀랜드 출신들은 악센트나 발음이 영 다릅니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 발음도 어렵구요. 영어 기본이 강하면 우리 사투리처럼 알아듣겠지만 기본이 약한데다 발음만 약간 이상하면 도통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미국 사람만 옹알 거리는 것이 아니라 영국 사람들도 입안에서 옹알거립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어가 필요할 때 저의 집사람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만치 떨어져서 “니가 가서 이야기 해봐라”하는 식이었지요. 물론 저의 집사람도 초보고, 근래 영어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지만 그래도 결혼 전에 미국생활 조금 했다고 저보다는 잘 알아들어요. 그리고 순발력 있게 쉬운 단어 써서 대응도 잘하구요. 여성의 순발력의 강점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초기에 이곳 사람들과의 곤혹스런 대화를 몇 번 경험하고 보니 이후에는 버벅거리고 있다는 창피감, 자존심 상실 등으로 아예 애초부터 가급적 대화자체를 꺼리게 되더군요. 그러니 당연히 이곳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되든 안되든 무조건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있었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관리인, 라면 대접 후 다시는 못 만나        

제가 있는 기숙사플랫에 관리인이 있습니다. 숙소 시설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도 주고 주위 청소도 하는 사람인데 custodian이라 불리죠. 그런데 하루는 플랫 화장실의 변기 손잡이가 고장 나서 수리를 위해 이 사람을 불렀습니다. 와서 다 고쳐 주더군요.

여기 화장실 변기는 미관을 위해서인지 변기만 외부로 나와 있고 변기 물탱크는 벽면 뒤로 들어가 있도록 해놔서 손잡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벽을 다 뜯어야 했습니다. 물론 벽은 나무 합판으로 되어있죠. 그래서 가벼운 고장인데도 벽을 뜯어야 하는 큰 공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 고치고 나서 고맙기도 해서 제가 “내일 점심을 우리 집에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고맙다며 응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 날 집사람이 간단히 라면과 김밥, 호박전을 준비해서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안 되는 영어지만 거의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이야기, 영국 생활 이야기를 했지요.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가수 남진의 인터넷 팬사이트를 접속하여 ‘가슴 아프게’ ‘빈잔’ 등 남진의 대표적 히트송을 틀어주면서 노래의 느낌도 물어보고 그랬습니다. 남진 노래에 대해서는 “sorrowful 하다”며 대개 느낌이 좋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국의 엘비스라고 이야기 해주었지요.    

이 사람의 이름은 Flack이라고 전에 교도관을 했다는데 이미지와 달리 잘생기고 점잖은 분입니다. 은퇴하고서 이곳 관리인을 한다고 그러더군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주 진지하게 대화에 응하더군요. 물론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고, 버벅 대며 어쩔 때는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의사전달은 되었습니다.

어떻든 제가 편안한 마음으로 임해서인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죠. 그 이후로 이곳 사람들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어쩔 때는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제 말을 못 알아들으면 계속 내방식대로 계속 말할 수 있게 되었죠.

제가 아마 외국 사람들 만나서 영어로 대화했던 첫 경험은 여기오기 전 영국문화원에서 치른 IELT시험 때문에 영어인터뷰 했던 것입니다. 생각만 하면 지금도 창피하고 그런대요, 이렇게 한번 정도 외국인과 대화해 놓고서 여기 와서 대화가 잘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죠. 아무튼 효과적인 영어를 위해서는 Native와 자주 접촉하여 아무렇게나 자주 대화하는 것이 최상인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과 자신감 결여도 쉽게 사라질 수 있구요.  

저에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그분은 현재 여기에 없습니다. 어디 primary school의 custodian으로 옮겨 갔다고 그러더군요. 갑자기 가는 바람에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점심식사를 초대받은 이후에 저만 보면 피했습니다. 식사말미에 다음에는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만 이후에 숙소 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언제 우리 집에 올거냐”고 물어봐도 금방 연락하겠다고 할뿐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 집사람과 밥 잘 먹고 왜 저럴까 하고 토론도 해 보았지요.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라면이 그 분을 잡은 것 같습니다. 라면이 신라면 이었는데 그날 그분은 아주 땀을 뻘뻘 흘리며 집사람이 담아 준대로 2개 정도가 든 큰 그릇의 라면을 다 먹었습니다.

한국의 popular noodle이라며 제가 “남기지 말라”고 그랬지요. “한국에서는 다 먹어야 예의”라며. 그런데 그분은 “very spicy! very spicy!”하면서 다 먹더라구요. 그런데 그 날 신라면은 그러잖아도 매운데 집사람이 급하게 준비하면서 물을 적게 넣는 바람에 더욱 매운 라면이었지요.

매운 라면 먹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는데도 참고 먹었던 것 같아요. 더구나 김치까지 먹으라고 그랬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음에 또 초대받아 식사를 하면 그런 매운 음식이 나와서 자기 부인까지 고통스럽게 될까봐 아마 피했던 것 같아요. 다 안 먹어도 되는데 제가 한국예절 운운하며 괜한 말을 해서 힘들게 한 것 같아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믿지 말아야 할 3가지 – 날씨, 파운드 그리고 영국 여자

영어문제와 함께 영국이라는 나라는 여러모로 초보자를 어렵게 합니다. 어려움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와서 들은 이야기인데 영국 사람들은 “3가지는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네요. 이 3가지는 날씨와 파운드, 영국여자랍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영국생활의 특징과 어려움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국생활을 해보면 이 말의 진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도 6개월 남짓이지만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합니다.

먼저 날씨 얘기를 해보지요. 날씨는 정말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뀝니다. 아침에 청명하게 햇볕이 나오다가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 듯이 표변하여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곤 합니다.

저녁에 BBC 뉴스방송을 보면 다음날 일기예보를 하는데 우리처럼 다음날 날씨에 대한 개괄적이고 특징적인 상황을 예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날의 2~3정도의 시간 단위로 날씨상황을 예보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곳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하루 동안의 날씨변화도 심하지만, 긴 겨울동안의 날씨는 이곳 생활의 초보자를 아주 힘들게 합니다. 겨울은 아주 깁니다.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겨울날씨가 유지되는데 습기 많은 차가운 기운에 검은 구름, 어둠 컴컴, 음산하고 비와 바람이 계속 반복하지요. 눈은 거의 드물게 내립니다.

가끔 햇볕이 들지만 거의 순간입니다. 더구나 낮까지 짧아 오후 4시면 해가 지지요. 이런 날씨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첫겨울을 나는 것이 몹시 고역입니다. 몇 달 동안 이런 날씨 속에 지내다 보면 몸은 축축 처지고, 무언가에 억눌린 것처럼 답답해집니다. 정신 건강에 정말 좋지 않구요.

한국 분을 만나면 제일 먼저 “언제 오셨느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나서 겨울기간을 지낸 것 같으면, “영국사람 다 되었겠네요”라는 말을 합니다. 이만큼 초보자에겐 영국의 겨울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아시지만 저는 남도의 정열적인 사나이(?) 아닙니까. 화끈하게 춥고, 더울 때는 확실하게 더운 뭐 이런 날씨에 익숙한 저로서는 정말 이곳 날씨가 싫은 것을 떠나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지겹고 활력도 떨어지고 우울하구요.

평소에 제 모습을 떠올리며 무지 엄살떤다고 하시겠지만 정말이지 이곳 날씨 정말 안 좋습니다. 오죽하면 중세 초에 유럽대륙 사람들이 이곳 음산한 겨울날씨 때문에 영국을 “악마가 사는 땅”이라며 가기를 꺼려했겠습니까?  지금이 5월말인데도 아직도 햇볕 나는 날은 거의 없고 연일 바람불고 음산한 구름에 비 오고 그러내요. 여기 올 날부터 최근까지 좋지 않은 겨울기간 동안 저는 음습한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4월 중순이 되면 부활절(Easter)이 오는데 이곳에서는 학교부터 직장까지 Easter Holiday Week라고 해서 다들 여행가고 방학하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보냅니다. 물론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기독교적 영향을 크게 받아 이 같은 행동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영국 사람들에게는 부활절이 종교적 의미도 있지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참고 지내면 기나긴 겨울을 지나 좋은 계절이 온다”는 계절의 부활이라는 의미이지요. 영국사람 들의 항상 과묵하고 무거운 표정을 하는 것을 보면 날씨가 큰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엇갈리는 평가와 함께 남아있는 후유증, 대처의 신자유주의 개혁

파운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영국 사람들이 파운드를 믿지 말라는 것은 이곳 경제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1970년대 영국은 과도한 사회복지에 따른 재정팽창과 지속적인 임금상승, 그리고 생산성의 저하로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하여 소위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영국병에 시달렸습니다. 경제성장률은 뚝 떨어졌고 물가상승률은 연 24%까지 치솟았죠.

결국 국가재정 파탄상황에 내몰려 급기야는 1976년에 IMF의 금융지원을 받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약 1년 만에 상환을 하기는 했지만 영국사회 전체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고 국가적 자존심은 곤두박질 쳤죠.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 총리는 79년 집권하자마자 저비용·고효율로의 경제구조 전환을 통하여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경제 전 부문에 걸친 경제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 개혁’이지요.

대처리즘의 골자는 복지정책에 따른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으로 이는 공공부문 개혁으로 집대성됐습니다. 대처 총리는 79년부터 3연임에 성공하면서 90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5개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시장을 개혁했죠.

84년 3월부터 1년 동안 파업으로 버틴 탄광노조를 실업률이 11%까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원칙에 입각해 처리했습니다. 80∼87년에는 공무원 수를 75만명에서 64만명으로 11만명이나 줄였고 79∼89년에 국영기업 50여개를 민영화했습니다. 86년에는 ‘빅뱅’으로 불리는 금융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국경제는 회복과정을 밟지만, 파운드로 대변되는 영국경제의 불확실성은 영국국민들에게 계속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최근 강력한 인플레 억제정책으로 영국경제는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의 반복적인 인플레에 따른 높은 물가와 파운드 가치의 등락은 여전히 영국 국민들의 불안요소로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겠지요.

대처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평가는 다 아시지만 양 극단으로 갈립니다. 영국 내에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캠브리지 대학의 Faculty of social science 도서관에 가면 대처리즘의 평가와 관련된 책들이 서고를 가득 채울 정도로 다양한데, 그 내용도 많이 갈립니다.

그런데 6개월 생활로 단언해서 말할 순 없지만 제가 그간 보고 느끼면서 피부에 와 닿는 점은 어찌되었든 대처의 개혁을 통해 영국 경제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영국사회는 개혁을 통해서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는 부분도 있고, 개혁의 후유증으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도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살인적인 물가, 졸지에 ‘쫀쫀한’ 남편으로 변신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고 물가’입니다. 현재 영국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 중에 하나지요. 예를 들어 북해산 브렌트유를 생산하는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기름값이 아주 비쌉니다. 자동차 휘발유가 1리터에 1파운드(1700원)에 육박합니다. 비산유국인 우리나라도 1600원 정도인데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러니 다른 공산품이나 생필품이야 말 안해도 알 수 있지요. 한국에서 몇 천원 주면 살수 있는 플라스틱 김치통 같은 것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있더라도 아주 비싸서 혀가 나올 정도지요. 부동산 임대료도 정말 비쌉니다. 제가 생활하고 있는 플랫도 다른 것은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방이 2개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조금 싸다는 대학 기숙사인데도 한달에 물세를 포함 790파운드를 받습니다. 전기세는 따로 내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쌉니까?              

물가 이야기가 나오니 참 할말이 많아지네요. 요즘 저와 집사람과 최악의 상황입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집안 경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여기 와서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물가 때문이지요.

여기는 한국과 같은 조그마한 슈퍼나 가게들이 없어서 사소한 것들을 사기 위해서도 도시 외곽에 있는 Tesco나 Asda같은 대형슈퍼체인으로 차를 갖고 일주일에 한두번씩 가야합니다. 한국물건을 파는 한국슈퍼도 하나 있어서 이 두 곳을 병행해서 항상 장보러 갑니다. 그런데 장을 갈 때 마다 꼭 집사람과 한판(?)을 합니다. 집안 살림 하는데 여자와 남자의 판단이 많이 다릅니다.

남자의 눈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살림을 해본 여자에게는 중요한 것이 많지요. 남자인 저는 잘 모르면서도 물가도 비싼데 도대체 필요 없는 물건을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케리어를 밀고 따라다니며 “제일 싼 것으로 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게 되고, 집사람이 물건을 선택했더라도 제가 판단해서 필요 없다 싶으면 인상을 쓰면서 다시 진열대에 놓아두곤 했지요. 그러니 당연히 싸움이 날 수 밖에요.

결국 저는 졸지에 아주 장보는 것까지 개입하는 쫀쫀한 사람으로 변했고, 집사람은 장보러 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지금은 집사람이 살 목록을 종이에 적어주고, 차에 타서 주차장에서 기다리면 저만 슈퍼 안으로 들어가 목록의 물건을 사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한국에서 없었던 이런 일을 겪고, 물가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몇 달 전에는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하는 통에 제가 아주 힘들었지요. 지금은 잠잠하지만 여전히 불평불만은 가득하지요. 

* ‘좌충우돌 영국연수기’는 다음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