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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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인가?





강철규 공동대표 교수직(서울시립대 경제학부) 정년 퇴임사

 



강철규 경실련 공동대표

<편집자 주>

지난 3월 9일 강철규 경실련 공동대표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직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20년이 넘는 경실련의 역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강철규 대표의 정년퇴임사의 핵심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강 대표는 “일한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경실련의 변함없는 모토는 경제정의의 바탕을 이룬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성장률이 낮아도 생명, 자유, 신뢰, 재산 등에 대한 가치들이 실현되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며 ‘경제성장은 이러한 기본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수단적으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의 최근 저서 <소셜테크노믹스 Social Technology +Economics: 사회적 기술이 역사를 바꾼다>.는 그러한 기본적 가치를 바탕으로 지난 10여년간 15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증분석 자료를 분석해가며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사회적 기술이란 제도와 조직, 정책, 법률, 운영능력 등을 망라하는 개념으로 강 대표는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연구 및 개발하고 그것이 강 대표가 원하고 우리도 원하는, 사회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 평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몇 차례의 전기가 있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서너 차례의 전기가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든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한 것이든 그 이후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전기는 1975년 사건이다. 12월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있었는데 후문 경비실에서 교육부 사무관 아무개가 찾아왔다는 전갈이 왔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 나가보았다. 역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잠시 볼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것이다. 어디를 가느냐고 하였더니 잠시면 되니 가자는 것이다. 지프차의 뒤에 실렸다. 눈을 가렸다. 도착한 곳은 서빙고 보안사 분실. 그로부터 고문과 조사와 재판을 받은 후 귀가할 때까지 1년이 걸렸다. 긴급조치위반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과 서울의대 사건에 연루된 서울의대학생 Y 군과 서울법대생 C 군이 나한테 불온사상을 교육받았다고 하여 나를 연행해간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나는 6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여야 했고 가족들은 1개월 동안 어디에 가 있는지 조차 몰라 고생을 하였다. 내게는 이 고난의 기간 동안 얻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1년 동안 독방신세를 졌기 때문에 200여권의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수많은 고전과 소설, 철학 등을 집중적으로 섭렵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도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라면 십 년은 읽어야 할 분량이었을 지도 모른다.

두 번째 전기는 미국 유학을 간 것이다. 나는 원래 외국 유학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76년 출소한 후 국제경제연구원에 취직을 할 수 있었는데 이곳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비록 정소영 원장의 배려로 기획실장직을 맡고 있었으나 후배들이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우리 연구원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1980년 미국 유학을 시도하였다. 신원조회에 결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연구원 원장이하 간부들의 적극적인 보증으로 미국 Northwestern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이 36세에 아내와 아이들 2명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유학시절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이후 학계에 몸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 체류하는 4년 반 동안 매년 방학 1개월은 미국 각지를 여행하는 데 할애하였다. 여름방학만 되면 텐트를 차에 싣고 가족과 함께 첫 해는 동부, 다음해는 서부, 그리고 다다음해는 남부 키웨스트까지, 그리고 마지막 해는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등까지 42개주를 다니면서 이틀은 캠핑, 하루는 모텔에서 샤워하는 식으로 여행과 답사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부에서 유학하고 있던 이근식(메릴랜드대), 조성종(브라운대), 김태동(예일대), 이제민, 양동휴, 노성태(이상 하바드대), 허성관(뉴욕주립대) 등과 교류하였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역을 몸으로 체험하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세 번째 전기는 1989년 서울시립대학교로 옮긴 일이다. 13년 동안 몸담았던 산업연구원을 떠나 대학교수로 전직하게 된 것이다. 학자가 학교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이미 나이도 있었고 해서 머뭇거렸으나 김용환 군 등 제자들의 강권에 못 이겨 학교로 옮긴 것이다. 학교로 옮긴 후 두 가지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학교로 옮긴 그 해 5월부터 경실련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서경석, 김태동, 이근식 등과 함께 6월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8월에는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세미나를 여의도 100인 회관에서 열었다. 주제발표를 내가 하였으며 당시 토지공개념 3법의 입법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1월에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경실련 활동을 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정부 각료로써 봉직하게 된 것이다. 1999년 대통령 자문기관인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을 시작으로 하여 2000년에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2002년에 초대 부패방지위원장, 그리고 2003년부터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하고 2006년 임기를 마치고 학교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약 7년 동안 정부 일에 봉사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이러한 전기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본인의 의사와는 관련이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의지와 환경적 요인이 합해져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인생의 행로를 크게 바꾼 1975년 사건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인생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는 3.1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고 내방 위층에는 김지하가 있었으며 맞은 편 동에는 나병식이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나의 연구주제 중 하나는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가’였다… 정년을 맞이한 지금 인류가 지향하는 기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은 물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다. 국제경제연구원으로 간 것이나 그곳의 특성상 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등은 따지고 보면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결심을 한 것은 나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세계 최선진국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접할 수 있었고 새로운 학문세계에 빠지고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얻은 것이다.  연구원으로 복귀하였을 때 연구원 연수케이스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제1호라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후 수많은 박사가 산업연구원 연수제도로 배출되었다.

서울시립대학교로 옮긴 것은 제자들의 요구가 있었으나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결과 정년을 맞이할 직장을 얻은 셈이었다. 청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대학교수직은 한국은행이나 연구원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시민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정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자유의지가 그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잘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정부에서 행정을 할 때는 물론 환경적인 요인들이 많이 작용하지만 교수직과 시민운동 등은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영역이 컸다.

이제 정년을 맞이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네 번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유의 확대를 발전으로 보면 나의 정년은 인생에 있어서 확실히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나의 연구주제 중 하나는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가’였다. 한동안 경제학자로써 경제성장이 곧 발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년을 맞이하는 지금은 다르다. 인류가 지향하는 기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기본적 가치란 고귀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개개인의 자유 확대 그리고 신뢰사회의 구축 그리고 재산권의 보호 등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성장률이 낮아도 이러한 기본적 가치들을 실현하면 발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며 이점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쾌락 중심의 공리주의와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고귀한 것이다. 자기 탓이 아닌 모든 차이는 다양성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개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이 발전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기 때문에 상호 신뢰가 높아져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발전이다. 신뢰는 공감을 높이고 거래를 확대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한 비록 그것이 총량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였다 해도 진정한 발전으로 보기 어렵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가해 만들어낸 재산에 대한 권리는 인격에 비유될 만큼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재산권이 문란한 것은 남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한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경실련의 변함없는 모토는 경제정의의 바탕을 이룬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재산권의 보호이며 이는 비단 재산과 소득만이 아니라 권리 기회 등의 분배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비록 경제성장률이 낮아도 이러한 생명, 자유, 신뢰, 재산 등에 대한 가치들이 실현되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보통 이들 기본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수단적으로 중요하다.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또는 직접적으로 기본적 가치들을 실현하는데 제도나 조직 운영능력 등 사회적 기술이 매우 중요함을 발견하였다. 
 

“일한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경실련의 변함없는 모토는 경제정의의 바탕을 이룬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재산권의 보호이며 이는 비단 재산과 소득만이 아니라 권리 기회 등의 분배에도 적용된다.”


나의 저서 <소셜테크노믹스 Social Technology +Economics: 사회적 기술이 역사를 바꾼다>는 이러한 내용을 실증 분석한 결과와 역사적 사례 등을 정리한 책이다. 실증분석 결과도 기본적 가치를 실현한 제도와 조직 운영능력 등 사회적 기술이 직접 간접으로 발전을 이끌고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를 집약한 것이 바로 이 책인데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나는 학문연구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안 것을 청년들에게 가르치며 연구결과를 인류와 사회를 위하여 발표하는 일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생을 노력해보아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닫기도 쉽지 않을 만큼 우리의 지식은 한계가 있으나 그것을 탐구하고 조금이라도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에 보탬이 된다면 다행한 일이다.

평생 동안 몇 개의 직장을 거쳤지만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한 것은 행운이다.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학졸업이후 한국은행, 산업연구원, 그리고 마지막 직장이었던 서울시립대학교는 지금까지 몸담았던 집들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분들께 감사한다. 부모님, 가족, 친지, 선배교수, 동료 후배 등 일일이 표현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 이 글은 월간 경실련 3~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