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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최고 헌법수호기관 임무 포기한 헌재 결정

헌재는 오늘 ‘국회의장의 부작위로 법률안 심의ㆍ표결권이 침해됐다’며 민주당ㆍ창조한국당ㆍ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85명이 낸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4(각하) 대 1(기각) 대 4(인용)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우선 이번 헌재 결정은 일반 국민의 법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각하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헌법재판소가 권한침해만을 확인하고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처분의 무효확인이나 취소를 선언하지 않은 이상, 종전 권한침해확인결정의 기속력으로 피청구인에게 위헌·위법성을 제거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말 미디어법의 처리과정에서 야당의원들의 권한 침해를 인정했으나 이들 법의 효력에 대해서는 국회의 자율영역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기각해 ‘절차적 하자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효력은 인정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결정이라며 논란이 일었던 헌재의 결정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추인한 것이다. 헌재가 국회의 심의․표결 절차에 위법성이 있었고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는 자신들의 결정의 기속력을 무시한 행위가 정당하다고 스스로 인정해 준 꼴이다. 이는 헌재가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헌재의 권능과 위상을 떨어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둘째, 헌재는 사실상 최고 헌법 수호기관이라는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헌재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 요건이며 법 정신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절차적 정의를 무시한 행위, 그리고 헌재의 결정의 기속력을 무시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며 헌재 스스로의 임무를 부정해버렸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사실상 정부와 여당의 논리를 그대로 수긍하고 이들의 무소불위 행태를 용인해 준 것으로 앞으로 여야간 민주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다수를 점하고 있거나 물리적인 힘을 앞세운 정치세력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어도 법적 제한을 가할 수 없는 합리적인 근거를 헌재가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크나큰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헌재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경실련은 오늘 헌재가 헌법과 법의 정신에 입각한 판결이 아닌 정치권과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내린 정치적 결정이라 본다. 헌법과 법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오늘의 헌재의 결정은 부끄러운 재판의 하나로 사법 역사에 기록될 것이며 일반 국민의 법의식보다도 못한 헌재의 결정은 두고두고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사인이 아닌 헌법기관인 국회의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결여를 인정하면서도 그 시정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현대 헌법정신의 기본요체인 사법적극주의를 헌법재판소 스스로 무시한 셈이 되었다.

또한 미디어관련법은 오늘 헌재의 결정과 상관없이 입법 과정의 하자로 법적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법 존재의 정당성에 대해 계속 시비거리가 될 수 밖에 없고, 이를 근거로 한 법 집행 또한 정당성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의 : 정책실 02-3673-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