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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칼럼]“남북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 성찰과 고민”_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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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 성찰과 고민”  

원칙의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이 제발 남북관계에서 ‘올바른 원칙’을 고수하길 기대해본다.
  

김 근 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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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왜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운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남북관계가 진전될 경우에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남북관계가 정체되거나 퇴행할 경우에도 지루한 신경전과 적대적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어렵게 합의를 해놓고도 남북관계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화해협력이 증진되는가 하면 어느 새 불신과 대립이 커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남북관계는 하루도 편안한 날 없이 진전과 퇴행, 정체와 교착, 화해와 불신의 롤러코스터를 되풀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포용정책 시기에도 경향적으로는 화해협력이 증진되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대북강경정책 시기는 남북관계 파탄 속에 한반도 긴장은 고조되었고 적대와 대립이 증대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 이길래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운 것일까? 모두가 원하는 되돌이킬 수 없는 화해협력과 평화정착의 남북관계 개선은 왜 안되는 것일까? 남북관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대부분은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근본적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나열하는 데 그친 경향이 크다. 합의 불이행, 대화의 제도화 미흡, 정경분리 미진, 정치군사적 영역의 진전 부진 등 남북관계 개선에 못미치는 현상들을 형식적으로 진단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점은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현상적 원인이지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본질적 구조적 문제점은 아니다. 왜 합의해놓고 불이행되는지,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가 왜 미흡한지, 정경분리 원칙이 왜 안지켜지는지, 정치군사분야의 관계 개선은 왜 어려운지를 정확히 짚어내야 남북관계의 근본적 문제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합의와 불이행, 재협상의 패턴을 반복하고 화해협력과 갈등불신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소모적이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지속하는 우리 남북관계의 근본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제 차분하게 성찰적으로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2. 남북관계의 근본적 문제: 우위와 열세의 딜레마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운 가장 근본적 문제점은 분단체제의 상대방이 힘의 우열관계에 놓여있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원치 않는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은 상대방을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를 자신의 내부 통치에 활용해왔다. 강요된 분단이었기에 남과 북은 언제나 상대방을 자기 체제로 인입하고 흡수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일관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체제 우위에 있는 쪽은 언제나 열세에 놓인 상대방을 통일하려 하고 반대로 힘의 열세에 놓은 쪽은 어떻게든 우위의 상대방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 할 수밖에 없다. 1970년대까지 북이 남쪽을 공세적으로 적화통일하려 했던 것은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이후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남쪽이 사상 최대의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을 흡수하려 했던 것 역시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었다. 더불어 열세에 놓인 쪽이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흡수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체제유지에 나서는 것 역시 당연지사였다.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지금까지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즉 분단체제의 속성상 힘의 우열관계는 우위의 체제가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고 열세의 체제는 안간힘을 다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근본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티격태격 우여곡절의 힘겨루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북한에게 남북기본합의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체제위기를 맞아 어떻게든 자신의 체제를 흡수통일로부터 지켜내려는 전략적 발로였고 반대로 남한에게 기본합의서는 화해협력을 내세워 북한을 변화시켜 남한과 동일한 체제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도 힘의 우열관계에서 보면 근본적으로는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내세우지만 궁극적 목표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고 옷을 벗겨서 궁극적으로 한국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것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힘에서 밀리는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내세우지만 이 역시 전략적 의도는 한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되 북한체제를 위험하게 하는 체제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남측의 흡수통일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남북관계는 흡수하려는 한쪽과 절대 흡수당하지 않으려는 한쪽의 힘의 작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힘에 의해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한, 대화를 통해 관계개선이 순탄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셈이다. 기실 햇볕정책이라는 자유주의적 접근도 체제 우위에 선 남측이 자신감을 갖고 북에게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내세우는 것이고 경협과 교류를 통해 북의 대남 의존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고 결국은 자유민주주의로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전략적 접근이고 보면 그 바탕에는 힘의 관점에 의거한 ‘현실주의’가 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남북관계의 본질은 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현실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갈등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3. 남북관계의 구조적 문제들

 

힘의 관점에서 일방이 타방을 흡수하려 하고 반대로 상대는 결단코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역관계가 바로 남북관계의 본질임은 결국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인 바, 이같은 힘의 상충이 드러나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해보자. 

 

(1)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

 

한반도가 갈등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음은 바로 정전체제라는 군사적 대치 상황이 극적으로 입증한다. 남북은 전쟁을 공식종료하지 않고 일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이고 따라서 정전체제하에서는 하시라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국지전이 재개될 수 있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과 북의 도발 역시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서해교전과 연평해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은 사실상 전투행위였다. 

  

남북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전투를 일시중지하고 있음으로써 한반도 정전체제는 그 자체로 남북관계의 갈등의 구조적 토대인 셈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워 정치군사적 갈등과 상관없이 경제협력은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결국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은 남북관계를 교착시키고 경제협력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봄의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극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정전체제하에서 정경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닫게 한 셈이다. 결국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라는 구조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인 것이다 

 

(2) 분단체제의 정치적 대립

 

남북은 서로 원치 않는 분단을 겪었고 따라서 상대방은 결코 태어나서는 안될 정부였다. 상대방의 정치적 부인에 기초해서 각각의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한반도의 유일 정통성을 자처하고 있다. 강요된 분단으로 탄생한 남과 북인 만큼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부정하고 향후 통일은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만 했다.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은 각각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소거하는 통일노선일 수밖에 없었다. 분단체제하의 남북관계는 결국 남과 북의 정치적 적대와 대립을 구조적 토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북한이 제기했던 4대 근본문제는 남북관계가 아무리 진전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숙제들이었다. 경협이 가속화되고 사회문화 교류가 증대되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여전히 남북관계에서 풀기 힘든 장애물이다.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근본적 구조하에서 남북은 경제와 사회문화는 진전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와 분단체제의 정치적 갈등은 결국 남북관계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절름발이 현상을 낳게 된다. 대북포용정책의 시기에 남북관계의 현상적 문제점으로 매번 지적되었던 영역별 불균등 발전의 문제 즉 정치군사적 차원의 진전은 부진한 반면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의 관계개선은 상대적으로 활발한 것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남북이 상호 윈윈하는 경제협력과 상호 필요에 의한 일회성 교류는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을 이끄는 주요 동력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정치적 화해협력과 군사적 긴장해소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남북관계의 속성상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3) 북미관계와 북핵문제라는 외적 환경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빠트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은 바로 북미관계라는 외적 환경이다. 남북관계는 자체만으로 진전과 후퇴가 결정되는 독립변수가 아니다. 북미관계의 부침에 따라 남북관계는 불가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핵문제가 협상으로 풀리는 형국이면 남북관계 역시 개선의 동력을 받게 되지만, 북미관계가 교착되거나 대립국면이 되면서 핵문제가 악화될 경우는 필연적으로 남북관계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개선을 추동하기도 하고 북미협상을 촉진하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북미관계의 유동성을 관리해내는 안전판과 촉진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독자적 역할이 존재함에도 북핵협상 악화로 북미관계가 강경대결로 치달을 경우, 이를 무시하면서 남북관계가 진전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미동맹의 구조하에서 미국이 북한과 힘겨루기를 하는데 적대적 북미관계를 무시한 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대부분 엇박자를 냈던 아픈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포용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시기에 미국은 대북 강경정책을 펼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을 어렵게 했던 적이 적지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음에도 2000년 말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후 북미 대결국면에서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노무현 정부 역시 임기 내내 부시 행정부의 선핵포기와 대북압박 기조 때문에 남북관계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역으로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 협상을 반대하고 북미관계 진전을 말림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엇박자를 내야만 했다. 결국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와 북핵문제의 진전 여부와 연동되어 가다서다를 반복했던 셈이다.

 

(4) 厭北·嫌北 의식과 被包圍 의식이라는 내적 환경

 

남북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남과 북 내부에도 존재한다. 남측에 자리잡은 염북과 혐북 의식이 남남갈등의 심화와 함께 확산되었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동력과 기대는 상당부분 사라졌다. 남북관계가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북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지속적으로 증대되는 기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 과정에 강경 대결의 남북관계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역설적이게도 관계 개선의 필요성 대신 대북 강경론과 북한 책임론이 지배적인 여론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파탄은 북한에 대한 염증과 혐오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3대 세습을 목도하고 핵실험을 겪고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을 당하면서 국민들은 厭北 의식과 嫌北 의식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북과는 잘 지낼 수 없다는 회의가 깊어졌고 북은 어찌해볼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북한의 과도한 도발과 강경 맞대응이 지속되면서 상호 책임소재를 따져보기 전에 이미 대북 강경론은 정당화되어 버렸다.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정상적 관계개선에는 아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젓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 북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목숨과 생명을 앗아가는 군사적 도발을 서슴치 않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은 한순간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북의 책임으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접촉사고를 내고 시비를 가리던 와중에 먼저 욕설을 해대고 손찌검을 하면 한순간에 그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결국 남북관계 경색의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여론은 대북 강경과 대결 상황을 지지하게 되었고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은 더 어렵게 되었다.

 

북측에도 사방의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피포위’(under-siege) 의식에 기초해서 수령제와 선군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바, 피포위 의식은 핵심적으로 남북 적대관계를 전제로 형성되는 것이다. 북의 선군주의는 핵무기 보유에 집착하는 체제유지 경향성과 수령제와 후계자론을 고수하는 정권유지 경향성이 결합된 고도의 전체주의와 획일주의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피포위 의식에 토대해 정당화되고 있다. 피포위 의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북한 내부적으로 남북관계는 적대성을 일정정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는 곧 남북관계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4. 해법과 고민: 포괄적 평화체제?

 

이상의 구조적 장애요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해소하고 남북의 정치적 대립을 완화시키고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뤄내고 남측 내부의 염북,혐북 의식과 북측 내부의 피포위 의식을 해소해낼 수 있는 신통방통한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1)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은 원론적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해속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는 정전체제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억지되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며 한반도에 긴장완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군사적 긴장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갈등을 예방(conflict prevention)할 수 있는 것으로서 ‘불안정한 평화’(unstable peace)를 말한다. 군사력에 기반한 억지에 토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전된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는 평화협정 체결로 정전이 아닌 전쟁의 공식적 종식을 이룸으로써 갈등의 종결(conflict termination)을 이룬 상황이다. 이는 전쟁 가능성이 없는 갈등 부재 상태로서 안정적 평화(stable peace)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법제도적 전환을 요구한다.

 

(2) 남북관계와 연동된 평화체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문서 하나로 담보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북의 정치적 적대와 대결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평화협정은 실질적 평화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군사안보적 구성요소와 함께 본질적으로는 남북관계적 차원의 평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의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정치적 대결과 반목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무슨 화려한 평화협정에 서명한다 하더라도 남북의 평화는 불가능하고 당연히 한반도 평화는 자리잡지 못한다. 즉 남북의 적대관계 해소와 정치적 화해협력 그리고 되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한반도 평화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 없이 군사안보적 차원의 평화체제 논의는 그야말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유동적이고 언제라도 적대와 대결의 긴장된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구조라면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는 충족되지 못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진전시킨다 하더라도 대결의 남북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한반도 평화는 현실의 남북관계에 토대해야 하고 평화의 진전 역시 남북관계의 진전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상호 화해협력이 증대되어야 가능하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민족화해의 개선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측면이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고 진전되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일상화되고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해주는 신뢰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이끌어내는 셈이다. 경제협력으로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북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남북의 군사적 조치와 합의가 진전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이 남북의 경제협력을 추동해내는 상호 선순환 과정이 바로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이 지속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음도 마찬가지다. 상호 군축,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 평화협정의 조항, 주한미군 주둔 여부, 유엔사 해체 여부, 한미동맹의 변화 등이 적극적 평화를 위한 주요 쟁점이지만 이들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고 매번 제시되는 과제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직 그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할 한반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핵심에는 남북관계의 현 단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핵심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다. 관계의 평화 없이 문서나 조약의 평화는 취약한 평화일 뿐이다. 되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결정적 진전을 이뤄내면 정치적 화해협력과 군사적 평화보장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병행되어야만 평화협정 체결이 실질적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북핵 해결을 위한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진전을 포함한 포괄적 의미의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핵문제 해결에서도 핵심적역할을 할 수 있다. 장기 교착되어 해결난망으로 여겨지는 북핵문제를 지금 조건에서 진전시키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결국 평화체제 논의다.

 

북한은 2013.3.31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공식채택했다. 핵무기 불포기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병진노선은 오히려 경제건설의 절박성에 토대하고 있다. 경제와 핵무력 병진노선에 담겨진 핵보유 논리는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는’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안보 대책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경제국방 병진노선이나 김정일 시대 ‘국방공업을 우선하면서 농업경공업을 동시발전시킨다’는 선군경제노선과는 구별된다. 기존에는 국방병진을 위해 막대한 자원과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이지만 지금 핵무력 병진노선은 국방비를 최소화해서 경제건설에 매진하기 위한 논리다. 결과는 핵보유 기정사실화지만 논리는 경제건설을 위한 절박함인 것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7.1 조치의 주역이자 시장개혁의 상징인 박봉주를 다시 총리에 복귀시킨 것도 핵무력 건설이 사실은 경제회생과 경제발전을 위한 논리적 귀결임을 뒷받침한다. 지난 해 4.15 연설에서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김정은의 연설 역시 절박한 경제건설의 필요성을 짐작케 한다.

 

핵무력 병진노선이 미국과의 대결 상황에서 북의 안전보장을 위해 채택한 것이라면 협상국면에서 북이 안전보장을 위해 줄곧 주장했던 것은 평화체제 협상이다. 북한은 이미 2005년부터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관계 정상화의 첩경으로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다. 9.19 공동성명에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시에 명기된 것도 그 맥락이었다. 6자회담이 중단되고 북미대결이 재연된 이후 북한은 2010.1.11 외무성 성명을 통해 향후 협상은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경제건설을 위한 자신의 체제보장과 안전보장은 평화체제 전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논리였다. 결국 평화체제 논의가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어 있는 셈이다. 평화체제 없이 북핵문제 논의는 이제 불가능하고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북핵문제는 진전될 수 있다.

 

북핵해결과 북미관계 진전이 남북관계 개선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더불어 한미의 대북 ‘공동포용’(co-engagement) 기조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번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이 엇갈림으로써 그동안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의 부침에 따라 출렁거려야만 했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이 일관되게 공동으로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해야만 남북관계도 꾸준히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4) 관계의 평화, 내부의 평화

 

결국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증대된 평화는 다시 남북관계 진전을 추동한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시켜주는 상호적 관계인 것이다. 경협이 군사적 보장을 통해 신뢰구축에 기여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의 증대가 남북경협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상호 선순환의 관계가 이를 입증한다. 관계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만으로 한반도 평화가 완성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경제협력이나 사회문화적 교류가 한반도 평화의 우호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해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남북의 군사적 긴장고조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너무도 쉽게 무력화되고 말았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남북의 적대적 대치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충분조건에는 이르지 못하는 셈이다.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환경이 되지만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정치군사적 대치와 대결은 그 자체로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획기적이고 극적인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정치적으로 우선 결심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차원의 법제도적인 평화체제 마련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를 가능케 하는 남북관계 차원의 ‘내부적’ 평화가 자리잡지 못하면 평화협정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당국간 회담을 무산시키는 이른바 ‘격’ 논란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과연 지금의 남북관계와 우리 내부의 현실은 평화를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적대와 분노 그리고 적개심과 오기로만 가득차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 회담의 대표로서 충분함에도 이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국 회담을 무산시킨 박근혜 정부에게 절대다수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대북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언급할 자격이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읽어보아도 명백하게 NLL을 고수하는 전제하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안하고 있음에도 이를 NLL 포기라고 우겨대고 그 주장이 다수로 수용되는 작금의 우리 내부 분위기는 평화협정이 당장 사인된다 하더라도 결코 북한과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고 기어이 북을 타도하고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험한 반평화적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인정하고 북과 공존하려는 것보다는 북을 굴복시키고 혼내줘야만 올바른 남북관계라고 믿고 있는 우리 내부의 현실,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주장마저 이제는 종북세력으로 치부되는 우리 내부의 골깊은 분열과 적대는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도저히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도 필요하고 군사적 신뢰구축도 중요하고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증대도 필요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고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그리고 남과 북 내부에 켜켜히 쌓여가고 있는 상호 적대와 분노의 악순환을 이제라도 끊어내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하다. 관계의 평화 없이, 우리 내부의 평화 없이 법제도적 평화체제와 문서로 보장된 한반도 평화는 공허할 뿐이다.

 

관계의 평화와 내부의 평화가 진정으로 정착된다면 그것은 곧 염북 혐북 의식의 완화와 남남갈등의 해소에 기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도 대남 적대의식이 평화로운 관계로 대체되면서 피포위 의식이 약화되고 자연스럽게 선군과 수령제의 토대가 약화될 것이다.

 

5. 새로운 제언: 중년부부의 남북관계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체제가 일합을 겨루면서 보인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상호작용은 분명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와도 차별적이고 또한 이명박 정부와도 구별된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과 패턴으로 진행되는 최근 남북대화를 보면서 이제 변화된 환경에 걸맞는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남북관계 방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탈냉전 이후 남북의 화해협력과 관계개선이 진전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지지가 증대되었다면 이명박 정부 시기의 극단적인 정면대결과 남북관계 파탄을 겪으면서 지금 국민여론은 厭北과 嫌北 의식이 우세하고 대북 화해협력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에도 그리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의 남북관계를 거쳐 지금은 이른바 ‘재냉전’의 남북관계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관계 악화는 결과적으로 대북강경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강경 맞대응으로 인해 대북 여론의 악화와 북한책임론이 고착화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 온 셈이다. 접촉사고를 내고 시비를 가리던 와중에 먼저 욕설을 해대고 손찌검을 하면 한순간에 그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이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너무 좋아하지도, 너무 미워하지도 않는 냉정한 실리추구의 남북관계가 이제는 적절하고 필요할지 모른다. 감정에 치우쳐 한 때는 북을 지나치게 설레임으로 접근했고 또 어떤 때는 북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적대시했다면 이제는 감정과 정서가 아닌 이성과 실리에 따라 대화도 하고 압박도 하고 견제도 하고 합의도 하는 실속형 관계가 필요할지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시기가 서로 죽고 못사는 신혼과 연애의 남북관계였고 이명박 정부 시기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와 권태의 남북관계였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서로에게 익숙해가는 덤덤한 중년의 부부사이가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7차례나 지속되었고 아무런 합의나 성과가 없어도 판 자체를 깨지 않고 만나고 또 만나서 결국은 상호 합의가능한 지점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의 좋은 사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 가능하면 북의 요구와 트집을 이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처럼 한번의 회담으로 남북대화를 결판내고 끝장내지도 않았다. 한번에 북을 완전 굴복시키려 하거나 단번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것이다.

 

현실적 남북관계의 모습은 서로 갑론을박하면서도 관계 자체를 파탄내지 않고 무덤덤하게 실속을 차리는 중년의 부부관계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무던하게 서로 대화하고 서로 논쟁하고 가능한 합의지점을 찾기 위해 만나고 또 만나는 데 익숙해야 한다. 과도한 애정과 지나친 분노는 이제 수면 아래로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남북은 끈질기게 마주앉아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고진감래의 남북관계에 익숙해야 한다.

 

신혼과 권태의 시기를 지난 뒤 이제 우리는 담담한 중년의 남북관계를 준비해야 한다.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지나치게 미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저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결국 수용가능한 합의지점을 만들어 내고 조금씩 차분하게 천천히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중년의 남북관계는 과도한 애정행각을 벌이지 않는다. 또한 중년의 남북관계는 가정을 깨거나 이혼불사의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고 할 일을 할 뿐이다.

 

실리추구의 실속형 남북관계, 중년의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그래서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도발과 긴장고조는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한다. 가정이 깨져서는 안되고 집안의 평화가 지켜져야 하듯이 중년의 실속있는 남북관계는 무엇보다 천안함 연평도와 같은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기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둘째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신혼이나 이혼이 아닌 중년의 부부는 집안이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그렇다고 애정표현으로 요란스럽지도 않다. 평화로운 중년부부의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인은 남편의 생각과 생활과 주장에 대해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의 생각과 생활과 주장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해야 가정은 평화로울 수 있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와 박근혜 정부 역시 상대방을 무릎꿇려야 할 굴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대화와 협상의 한 주체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셋째 중년의 남북관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이나 가정을 깨는 일은 피하고 부부로서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어도 그래도 가정은 유지되어야 하고 이혼해서는 안된다. 이번 개성공단 실무회담처럼 입장의 평행선 때문에 합의가 없고 성과가 없어도 회담은 지속되어야 하고 대화 자체가 깨지거나 완전파탄의 남북관계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크게 흥분하지도 크게 분노하지도 않고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고 부부로서의 할 일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현명하고 안정적인 중년의 부부관계이다. 이제 우리 남북관계도 그럴 때가 되었다.

 

6.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우려와 성과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김정은 체제의 핵무력 강화 방침이 맞물리면서 남북관계는 당선인 시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후 한반도 긴장고조와 군사적 위협을 지속하면서 실질적 핵무장국가로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으려 했다. 정부 출범부터 북한의 대남 강경기조에 봉착한 박근혜 정부는 무력도발에 대응하면서도 한반도 긴장이 전쟁위기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했다.

 

2013년 봄 한반도 위기를 최대로 고조시킨 북한은 급기야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대남 위협의 카드로 꺼내들었고 군통신선 차단과 출경제한에 이어 결국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킴으로써 사실상 공단폐쇄를 시도했다. 강대강의 남북 대결이 한껏 고조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4.11 남북대화를 제의했지만 결국은 4.26 개성공단 잔류인원 철수결정을 내림으로써 공단폐쇄를 기정사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의 과도한 공단 폐쇄에 대해 대화를 제의했음에도 북이 나서지 않자 스스로 공단폐쇄를 감수하는 강수를 사용함으로써 강온병행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북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6월 장관급 회담이 추진되다가 이른바 ‘격’ 논란으로 무산된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의 끈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북한 대표의 격을 우리가 평가하고 규정하는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이후 남북은 다시 실무회담의 끈을 이어갔고 결국은 7차례의 지루한 회담 끝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는 성과를 도출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를 평가한다면 ‘우여곡절의 다행스러운 첫걸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처음부터 남북 갈등과 강경 대립에 맞닥뜨렸고 한반도 긴장고조로 치달았지만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파국보다는 관계 정상화를 시도함으로써 결국은 남북관계의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좀 더 일찍 관계개선의 모멘텀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6개월의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 이상을 매길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전개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을 함께 보여줬다. 3차 핵실험 이후 북의 한반도 긴장고조 국면에서 4.11일 남북대화를 공식제의한 것은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모습이었다. 반대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갑자기 4.25일 최후통첩성 대북제의 후 4.26일 개성공단 잔류인원을 철수시킨 것은 다소 감정적이고 강경한 조치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

 

북이 박근혜 정부의 대화제의를 수용함으로써 장관급 회담이 추진되었지만 남측이 김양건 통전부장 외에는 북측 회담대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격’을 고집하는 바람에 회담이 무산되었던 점은 박근혜 정부의 과도한 대북요구와 지나친 원칙고수라는 점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장관급 회담 무산에도 불구하고 북의 공단 정상화 의지와 남의 당국회담 요구가 맞물리면서 다시 실무회담이 개최되었고 7차례의 회담 끝에 결국은 공단 정상화와 재발방지에 합의한 점은 남북 모두 대화 유지와 관계 개선의 끈을 이어가려는 적극적 의지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의 실용적 양보와 박근혜 정부의 유연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성과를 도출한 셈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는 때로는 북한에 대한 과도한 원칙과 지나친 고집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아쉬움을 보인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북의 실리적 접근에 대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화 성사와 합의 도출을 위해 유연성을 발휘하는 긍정적 평가도 동시에 존재한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관계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상대방의 완전 굴복과 일방적 수용만을 일관되게 요구할 때 발생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관계 파탄과 대북정책 실패의 결정적 계기도 사실은 북의 대화 제의와 유연한 접근마저도 이른바 ‘버릇 고치기’ 차원에서 완전굴복 요구로 강경대응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지난 6개월은 여전히 대북 원칙론과 버릇고치기의 감정적 대응의 우려가 존재하면서도 그럼에도 남북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신뢰의 끈을 이어가려는 최소한의 유연성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와 성과가 공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7.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개성공단 정상화와 함께 통일부는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책자를 발간했다. 여전히 애매하고 불충분한 대목이 있지만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설명은 그 자체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개념과 목표 및 추진원칙과 추진기조 등도 큰 틀에서 그리 흠잡을 데 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항상 그렇듯이 정부의 대북정책 설명은 좋고 바람직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추진방향과 추진과제 등도 우리가 희망하고 원하는 로드맵을 그려놓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도 설명책자로는 충분히 기대할 만한 것이었다.

 
문제는 책자에 설명된 내용과 과제를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접근방법이다. 이명박 정부는 희망적인 남북관계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선 북한변화론’의 접근방법을 고수했고 그것도 북의 근본적인 변화를 관계개선의 전제로 자리매김하는 바람에 어떤 경우에도 남북대화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은 관계 파탄과 최악의 안보위기로 결과되고 말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책자에 설명된 대로 제대로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근방법이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밝혔던 신뢰와 균형의 접근방법을 아직은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북에 끌려갔다고 보고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나치게 북에 강경일변도로 대했다고 평가하면서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alignment)을 통해 그리고 합의 이행을 통해 ‘신뢰’를 축적(trust politik)하겠다는 접근방법으로 설명된다. 북에 대한 원칙을 지키되 신뢰형성의 끈은 놓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원칙을 견지하면서 남북간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접근방법은 화해협력의 대북정책과 대북강경의 대북정책이 모두 가능한 사실상 애매한 접근일 수 있다. 대북 원칙 고수에 경도될 경우 강경기조로 흐르고 신뢰 형성에 경도될 경우는 유화기조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매개 국면에서 정부의 선택과 결정 여하에 따라 대북 접근이 강경으로 치닫기도 하고 화해협력으로 진전되기도 한다. 최근의 남북관계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접근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반도 긴장고조 국면에서도 대북 대화를 제의하거나 개성공단 합의과정에서 남과 북을 공동주체로 한 재발방지 표현을 수용한 점 등은 남북간 신뢰축적을 위한 유연한 접근의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북 대화를 제의해 놓고 갑자기 최후통첩 하루 만에 개성공단 철수결정을 내린 것이나 장관급 회담 과정에서 고집스럽게 북측의 회담 대표를 특정인과 특정 ‘격’으로 고수한 것 등은 잘못된 북을 바로잡겠다는 대북 원칙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강경한 결정이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키면서 남북의 신뢰를 형성해가겠다는 접근방법이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한 대북접근으로 자리잡는 게 무엇보다 요구된다.

 
우선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은 상황과 국면에 따라 때로는 안보를 내세우고 때로는 교류협력을 결정하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 북한의 긴장고조에 대해서는 당연히 안보를 강화하고 북의 실용적 관계개선 시도에 대해서는 응당 교류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안보 강화와 교류협력 진전은 국면과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긴장고조 국면에서도 교류협력은 유지되어야 하고 교류협력 국면에서도 안보는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서해교전 상황에서도 단호한 안보적 대응과 함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남북관계는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약속과 합의 이행을 통해 신뢰를 축적한다는 접근방법 역시 약속을 어길 경우 댓가를 치루게 한다는 부정적 경고와 함께 합의된 약속은 우리부터 솔선수범해서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한다는 긍정적 의지를 반드시 북에게 전달하고 보여줘야 한다. 신뢰형성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명심해야 한다. 합의 이행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축적 방법이 자칫 북이 약속을 어기거나 도발을 할 경우 응분의 댓가를 치르도록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측면만 강조되는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쌍방이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약속을 어길 경우 단호하게 댓가를 치루게 하는 것과 똑같이 약속한 내용에 대해서는 선의를 갖고 반드시 합의이행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긍정적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 동시에 요구된다. 북이 도발하면 응징하겠다는 부정의 경고만 반복하지 말고 북과 합의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성실히 지켜나가는 긍정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킨 북에 대해 공단폐쇄도 각오하겠다는 응분의 경고를 보내는 것과 함께 박근혜 정부는 북과 합의한 대로 개성공단 정상화와 재가동에 전력을 다해 성심성의껏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이치다. 북한의 조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passive, reactve) 신뢰형성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먼저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positive, active)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프로세스가 정치군사적 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면 이를 꾸준하고 일관되게 실천에 옮기는 성실한 노력 역시 지금 박근혜 정부에게 필요하다.

 
셋째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연계론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여전히 북핵문제는 진행형이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안보상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동시키는 것은 한반도의 현실에서 사실상 남북관계 유지와 진전을 가로막는 ‘조건부’ 접근이 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 시기 이른바 ‘비핵개방 3000’ 구상과 ‘그랜드 바겐’ 접근이 그 부정적 결과를 극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개선됨으로써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한반도 긴장고조의 위험을 막아내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고 또한 북핵문제 진전 상황에서는 북핵협상을 더욱 추동하고 진전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음은 지금까지의 북핵과정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결코 박근혜 정부는 북핵해결의 유혹에 빠져 남북관계를 수렁에 빠트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근은 어떤 경우에도 교류협력을 포기하지 않고 남북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고수하고 견지해야 한다.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유지되고 진전될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만이 신뢰형성을 가능케 함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버릇 고치기라는 ‘잘못된 원칙’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신뢰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오히려 이 원칙을 위해 더 큰 유연성과 적극성을 발휘하는 게 필요하다. 원칙의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이 제발 남북관계에서 ‘올바른 원칙’을 고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