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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칼럼] 김정은 체제 1년과 핵전략의 변화_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김정은 체제 1년과 핵전략의 변화

 

 

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북한 핵전략.jpg

 

 

2012년 4.13일 국방위 제1위원장 취임으로 공식출범한 김정은 체제가 1년을 경과했다. 지난 1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내적으로 경제개혁과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대외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일관되게 강경과 대결 기조를 고수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에 맞춰 북한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13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은 12.12일 은하 3호 발사를 재강행했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안보리 제재 결의안 통과로 응수했다. 북미 협상 국면은 사라지고 2013년은 시작부터 강경 대결 국면이 지속되었다. 북한은 급기야 3차 핵실험을 진행했고 한반도는 최대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마침내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1주년을 맞아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건설과 핵무장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곧이어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를 정당화하는 대내적 입법조치마저 단행했다. 비핵화 협상을 전제로 안전보장을 담보받고자 했던 기존의 대미 핵전략이 이제는 ‘세계의 비핵화’ 이전에는 비핵화 협상 불가라는 사실상의 핵보유 장기화 전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북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시종일관 강경일변도로 고조되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만 해도 북미협상의 동력은 유지되었고 어렵사리 북미는 2012년 2.29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해 4월 김정은 체제 공식출범을 정당화하고 강성대국 선포를 가시화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었던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해야만 했다. 2.29 합의에 ‘대륙간탄도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일체의 발사 금지’라는 문구 대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으로 표시된 것도 사실은 북이 김정일 체제 출범이라는 대내적 요구에 의해 장거리 로켓을 쏠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로켓 발사 직전인 2012.4.7일 미 백악관 관리가 비공개로 평양을 방문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북미간 물밑논의가 진행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4월 로켓발사 이후에도 북미간 최소한의 동력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대응은 제재결의보다 수위가 낮은 ‘의장성명’으로 도출되었고 북한 역시 외무성 성명에서 추가 핵실험을 예고하는 고강도 표현은 삼갔다. 실제로 북은 5.22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평화적인 위성발사를 계획했기 때문에 핵시험과 같은 군사적 조치는 예견한 것이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8월 미 백악관 관리의 2박3일 비공개 방북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또 다시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공식표명하고 12.12일 은하3호 발사를 강행 성공시켰다. 북한의 로켓발사 강행 의지와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노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결과로 해석가능하다. 그즈음 북한은 미국을 비난하면서 대미전략의 변화를 예고해왔다. 2012년 7월 북한 외무성은 이른바 ‘동까모’ 사건 적발을 계기로 자신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특대형 적대행위에 미국이 개입되었다고 강력비난하면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지고 ‘제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2012.7.20) 이어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실제적인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선군의 위력으로 짓부실 것이라며 ‘핵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 군사력전반을 끊임없이 강화’할 것을 공언하고 나섰다.(2012.7.29)

 

결국 북한은 8.31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으로 인해 핵문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 뒤,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한다면 화답할 것이지만 ‘미국이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의 핵보유는 부득불 장기화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 것’이라는 경고로 끝을 맺었다.(2012.8.31) 8월 평양에서의 북미협상 불발과 ‘동까모’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와의 협상 시도를 거부한 채, 핵확산 우선이라는 대미 강경전략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이후 북은 12.12일 예고한 대로 은하 3호를 쏘아 올렸고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가(2013.1.22) 채택되자 마자 미리 준비한 듯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세계의 비핵화 이전에는 조선반도비핵화가 불가능하다’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리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2013.1.23)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은 종말을 고한 셈이 되었다. 연이어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후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워싱턴 불바다와 대미 핵선제 타격 언급 등 미국과의 강경대결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강화하고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 이후 미국의 대북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군축을 위한 회담은 있어도 비핵화와 관련한 회담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로동신문. 2013.4.20)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담보 받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북한은 이제 중국의 부상과 미중관계의 갈등양상을 배경으로 자신의 안전보장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확보하려는 대외전략으로 수정했고 이는 결국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핵보유를 통한 대미 안전보장’을 내세우고 지금까지 줄곧 대미 강경 대결과 한반도 긴장고조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입장이 본질적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진 것이다. 북한의 전략 변화를 도외시한 채 과거와 똑같은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그래서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지금의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담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실을 똑바로 봐야만 올바른 해법이 나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