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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칼럼] 북한 사람도 웃으며 살까_전영선 건국대 HK연구교수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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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도 웃으며 살까

 

 

전영선(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건국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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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도 웃으며 살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포토피디아 북한편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2011년 북한 사진을 수록한 스마트 폰 앱이 나왔다. 낯선 땅, 쉽게 갈 수 없는 북한에 대한 사진이어서인지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나오자마자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관심을 모앗다.


포토피디아는 세계 각국의 생활사진을 제공하는 회사이다. 포토피디아 북한편의 사진은 프랑스 여행사진작가 에릭 라프로그가 2008년부터 4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면서 찍은 사진 1,300여장이 들어 있었다. 영어를 비롯하여 7개 언어로 만들어져 있어,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무료로 북한의 일상생활 사진을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일상의 생활, 일상의 모습

 

포토피디아 북한편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은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피자가게 앞에서 피자를 들고 있는 요리사, 전자오락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만경대 유희장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여자 군인,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양산을 사이에 두고 다정하게 앉아 있는 뒷모습, 핸드폰으로 벽화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 영어로 ‘이탈리아’라고 쓰여진 운동복을 쓰고 있는 아이, 맥도날드 글자가 선명한 셔츠를 입고 있는 아이, 나이키 상표가 붙어 있는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남자, 가족 나들이 나온 사진 등등이었다. 북한 관련 서적이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사진 정도라고나 할까.


카메라의 초점은 주로 여성과 어린이, 가족에게 자주 맞춰져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 가족나들이 하는 모습, 남녀의 데이트 장면도 있고, 아리랑 공연 장면, 종교시설도 있다. 주로 일상 속에서 카메라에 비춰진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꾸미거나 숨길 것 없이 사진 작가의 시야에 비춰진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각각의 사진마다 위치정보가 포함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은 위치를 위성지도로 바로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북한 주민의 일상을 속살처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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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된 웃음

 

사진작가인 에릭 라프로그는 처음 한국에서 화보집을 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작업은 마땅하지 않았다. 화보집을 내기로 하고 한국에서 작업을 하던 중 편집자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 사진들은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북한 주민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제가 찍은 사진으로 화보를 내려고 생각했데요. 한국의 편집자와 함께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미소짓는 북한 사람들의 사진은 삭제하려고 하더군요. 북한 체제가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은데요. 그들은 로봇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이죠. 제가 북한에서 느꼈던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관점을 인정해주며 멋진 작업을 해준 포토피디아와 응용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라프로그가 언론을 통해 밝힌 한국에서 화보집을 내지 못한 사연이다. 사연이 좀 부끄럽다. “미소짓는 북한 사람들을 삭제하려고” 했다는 말이 안타깝다. 북한 주민들을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미소 짓는 사진을 삭제하기 원했던 마음은 무엇일까? 북한 주민들이 웃는 모습은 진짜가 아닌 연출된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웃는 모습이 담긴 화보집을 출판하면 무엇인가 불이익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웃고 있는 모습이 불편스러웠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해도 분단의 상처가 일상 내면 깊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떨칠 수 없다.


남북의 분단과 상처는 이제 우리 일상 속에서 장기간에 걸쳐 내면화되었다. 분단의 내면화는 우리를 스스로 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마시키고 있다. 감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수준으로 작동되고 있는 분단의 상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일상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환기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단의 적대적 감정은 비단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정상적인 사유체계를 방해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대의 감정과 감성으로 바라보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남북이 서로에 대해 적대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외국인을 통해 확인하였다는 것이 부끄럽다.


세계와 소통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남북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한다. 북한이 세계와 연결되는 것도 탑탑치 않고, 세계인들에게 ‘웃음짓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도 불편하다. 북한은 우리를 통해 세계와 소통해야 하고, 세계인들도 우리와 같은 시각으로만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는 우리를 통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우리 식으로 이해시키려 하고, 북한을 한 편에 몰아놓고 구경하기를 즐겨한다.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 바라보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북한 주민을 인간으로, 일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오히려 낯설어 한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쪽 안내원의 말이 떠오른다. “왜 남쪽 사람들은 남북이 똑같다고 하면 그렇게 신기해합니까?”

아마도 서로 다르다는 것만, 서로 갖지 않다는 것만 배워서일 것이다. 통일교육 어디를 보아도 공통점을 설명하는 곳은 없다. 남북의 차이, 남북의 다른 점만 말한다. 그렇게 남북이 다르다는 것만 보고 듣다 보니, 남북이 같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북한 사람을 ‘다르다’고 말하는 우리는 무엇인가? “그들은 로봇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이죠”라고 말하는 라프로그의 말에 답답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