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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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케인스, 루비니, 미네르바

홍종학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경원대학교 경제학과 


사람들은 경제학자보다는 증권분석가나 부동산전문가의 의견을 더 중시한다. 재벌이나 권력을 무조건 추종하거나 근거없는 주장을 일삼는 일부 경제학자의 탓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의 복잡한 해석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제학자가 얼마나 활약하는가가 그 사회의 과학적 소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위기 예측


차원은 다르지만 경제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합리적 기대가설로 유명한 루카스와 사전트가 처음 전통적인 경제 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이른바 정책무력성 가설을 제시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이때 저명한 토빈이 나서서 30여년 전 자신들이 케인스 이론을 처음 소개했을 때 아우성치던 경제 학계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이제 저 젊은 학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다.


대공황이 닥쳐 수많은 실업자가 먹을 것이 없어 구호기관 앞에 줄 서 있을 때, 경제학자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도 케인스의 이론도 무시했다. 대공황 이후 20년이 지나 그들이 중견학자로 성장한 후에야 비로소 케인스의 이론은 고전학파 이론을 대치했다. 그 케인스의 이론이 루카스 등의 새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도전받으며 그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양대 사조 간의 생산적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뉴욕 대학의 루비니가 정교한 모형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경제위기가 임박했음을 주장했을 때, 경제학자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막상 경제위기가 터지자 루비니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이론이 경제학모형에 기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주장 하나가 맞았다고 해서 다른 주장도 옳다는 근거는 없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신뢰를 잃었다.


현대 경제학의 기준으로 보면 케인스나 루비니의 방법론은 과학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현대 경제학이 경제위기의 시기와 파장을 알려주는 경제모형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루비니는 그동안 학자들이 조심스럽게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징후들에 대해 지적해 온 것을 종합한 것이다.


한편 현재의 위기를 촉발한 것은 파생금융상품이었다. 치밀하게 모기지 채권의 부실화 가능성을 계산한 후 철저하게 위험을 통제하여 만든 채권이 대규모로 부실화되었다. 과거의 자료를 근거로 하는 분석기법상의 한계와 부동산 시장의 붕괴라는 체제적 위험을 예측하지 못한 탓이었다.


징후조차 모른 금융공학자들


한 사회가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요구된다. 과학적 모형에서 도출되는 위기에 대한 선험적 확률 분포와 함께, 위기의 징후에 대한 다양한 견해로 이뤄진 사회적 확률 분포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서 선진적인 미국도 무너졌다. 미국 의회가 일찍이 루비니를 초청하여 그의 종말론에 가까운 이론을 청취했으나, 그의 경고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위기가 발발한 후부터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논의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가급적 많은 정보가 양산되고 그 정보를 선별해내는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대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정부와 금융당국은 경제학자의 입을 막고 정보의 생산을 억제하고 있다. 키코나 펀드의 불완전 판매 등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하던 검찰과 법원이 난데없이 ‘미네르바’를 단죄하겠다고 나섰다. 법조계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미네르바’가 필요하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