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E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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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폐허의 지평선’ 아체, 울음을 멈추는가

김혜경 (경실련 국제위원장)


쓰나미가 가져온 평화


자카르타에서 새벽비행기로 아체주의 주도(州都)인 반다아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군데군데 눈에 띄는 주민들의 모습은 베트남북부 농촌처럼 한적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눈만 마주치면 방긋이 웃는 주민들의 모습에서는 오랫동안 내전에 시달린 모습도, 쓰나미로 20만명에 달하는 목숨을 빼앗긴 슬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알라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모슬렘의 습성 때문인지,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사는 듯 보였다.










▶아체베사르에 있는 라동지역 해변마을. 이들은 가까이에 있는 바락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가 살던 집터에 임시로 판자집을 짓고 살고 있다.


아체는 자원이 많고 민족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인구는 인도네시아의 2%지만, 천연가스의 30%, 석유의 20%가 아체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그동안 천연자원 개발이익의 70%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가져갔다.


자유아체운동(GAM)은 아체의 정치적 독립과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1976년부터 인도네시아정부군과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쓰나미로 인한 재난복구를 위해 국제기구들이 몰려오면서 아체의 문이 열렸고, 작년 8월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아체반군이 헬싱키에서 평화협정에 조인하면서 오랜만에 아체에 평화가 찾아왔다. 해가 지면 정부군과 반군이 무서워 나다니지 못했던 주민들이 이젠 마음 편하게 밤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체주민들 사이에 헬싱키 평화협정에 대한 기대는 자못 크다. 과거에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협정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GAM이 독립주장을 철회하는 대신, GAM을 사면하고 아체주에서 정치적 참여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인도네시아가 정부의 군경을 감축하는 대신, GAM은 무기를 해제하기로 했다. 또 천연자연 개발이익의 70%를 아체에 남겨주기로 약속했다.


이 과정을 감시하기 위해 EU와 아시아 5개국에서 들어와 6개월간 모니터링을 하였다. 주민들은 대부분 평화협정이 지켜질 거라며 낙관적이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아직 GAM의 일부만이 무장해제를 했다면서, 양쪽의 동향을 두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아체주정부 인사들은 기독교계 NGO들이 모슬렘 주민들에게 종교적 영향을 미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유엔이나 국제NGO들의 활동이 아체의 안보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데는 동의했다.  


국제사회의 힘


아체주민들은 쓰나미로 인해 가족을 잃고, 집과 일터를 잃고, 심지어 살던 마을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어떤 마을은 주민들의 70~80%가 몰살한 곳도 있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큰 피해를 비켜간 곳도 있다.  


 








▶반다아체의 해변마을 꼬마들이 디지털카메라 화면에 나오는 사진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댄다


러뿡이라는 지역은 집이 한 채도 남김없이 파괴되었고, 18,000명의 주민 중에 10%만이 남았다고 한다. 울렐레항구에 높이 수십미터의 등대 꼭대기가 날라간 것을 보면, 당시 들이닥친 해일의 높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동남아 해안을 강타한 해일의 높이는 무려 60m에 이른다고 한다.


아체지역에서는 124개의 국제NGO와 430개의 지역NGO, 수십개의 원조기구와 UN기구, 각국 정부들이 힘을 합해 아체의 재건을 돕고 있다. 지진해일 피해 직후, 인도네시아와 타국 정부군들이 사체발굴과 폐기물치우기에 들어갔다. UN은 국제사회에 긴급지원을 호소하였으며,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유래 없는 후원을 약속하였다.


대부분의 원조기구나 NGO들은 인도네시아정부가 설립한 BRR(재건복구기구)이라는 조정기구를 통해서 활동했다. 작년 말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곳은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이다. IFRC는 6억불을 지원하였으며, 그뒤로 미국의 원조기구인 USAID가 4억불, 유니세프가 2억5천만불을 지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나 CRS 같은 NGO들이 그 뒤를 잇고, 아시아개발은행과 일본정부도 1억불이 넘게 지원했다.


자연의 파괴력은 전쟁의 파괴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해변을 따라 나있던 도로는 대부분 지진으로 물 속에 잠겨버리거나 파손되었다. 학교의 57%가 파손되고, 물공급원의 85%와 화장실의 92%가 손상을 입었다. 반다아체에서 믈라보에 이르는 도로 중 80km가 파손되고 110개의 다리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재 USAID가 반다아체에서 믈라보로 가는 길을 깔아주고 있는데, 예전에 해변가에 있던 도로를 8~10km 안쪽으로 들여서 도로를 내고 있다고 한다. 무너진 뚝방을 쌓는 일 등 일본정부도 눈에 띄는 굵직한 인프라 구축을 도와준다고 했다.


쓰나미 직후, 주택의 33%가 없어지거나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고 50만이 넘는 난민이 생겨서 주거시설의 확충이 시급한 과제였다. 집을 잃은 난민들은 처음에는 유엔이나 NGO들이 지원한 텐트에서 지내다가 후에 인도네시아나 외국정부가 지어준 바락이라는 집단난민촌으로 옮겨 자기 집이 생길 때까지 임시로 살고 있다. 2005년에 35,000채의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19,200채만 완성되었다. 4년간 목표치인 10만 채의 집을 지으려면 앞으로 3년은 족히 더 걸릴 것이다.


주택공급이 가장 중요한 재건사업이지만 어려움도 많다. 본인소유의 땅이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나 지진으로 땅이 물에 잠긴 사람들의 경우, 새 주택을 분양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NGO들이 주택을 지으려고 해도 토지소유권자들과의 협상이 해결되지 않아 오랫동안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유엔이나 원조기구, NGO들은 현지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27~70 ㎡의 다양한 주택을 지어주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정보가 부족하여 업주들이 공급하는 주택이 제대로 지어지는지 평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주택공급업주들이 건축자재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하여 노동자로 고용된 아체사람들의 생계에 불안정을 초래하며, 때로는 아체사람들보다 임금이 싼 다른 주의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아체주의 실업해소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아체에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OECD 원조국들뿐만 아니라, 중동의 모슬렘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모스크나 병원 복구 등 넉넉한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다.


특히 아체베사르 라동지역에서 대규모 난민촌을 건립하고 학교를 세워 인공기를 그려 넣은 중국의 활약이 돋보였다. 주민들 사이에서 터키라는 나라가 칭찬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묵묵히 아체의 더러운 구석을 치워주고 남보다 더 튼튼한 집을 지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다아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태극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 NGO의 활동


북부수마트라 메단에서 UN비행기를 타고 1시간 후에 믈라보에 도착했다. 믈라보는 지진의 진앙에서 약100km 떨어진 곳으로 아체에서도 가장 피해가 심했던 지역이다. 시골의 버스정거장 같은 공항 앞에는 허름한 가게가 있는데, 오른편에 ‘스타벅스’라고 쓰여 있었다. 손님들은 전부 외국인이었다. 가게 앞에는 유엔, 옥스팸 등 국제NGO들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히 믈라보의 국제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믈라보 중학교에 굿네이버스가 설치한 물탱크에 그려진 태극기. 각국 NGO들이 이 학교의 부서진 담장과 건물을 고쳐주고 책과 학용품을 공급해 주었다.

얼마 후, 반갑게도 태극기를 그린 굿네이버스 지프가 마중 나왔다. 


곧장 북서쪽으로 가면 반다아체로 통한다는 주도로를 지나가면서 태극기가 그려진 물탱크를 수없이 만났다. 굿네이버스가 국민성금과 국제협력단 지원금, 기업 후원을 받아 30개의 학교에 우물을 파주고 화장실, 수도를 건설해 준 것이다.


학교를 수혜대상으로 삼은 것은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고, 유지관리와 보수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현지 지부장이 설명했다. 우중딴중초등학교에서는 교무실 한쪽을 막아서 교사들에게 컴퓨터교육을 실시하고, 옆 교실에서는 한국에서 파견된 봉사단원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렇게 학교와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1대1 아동후원결연을 추진하고, 보건위생교육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림콤기술전문대학과 협력하여 컴퓨터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굿네이버스가 협력하여 신축 중인 건물이 완성되면 학과목을 늘려서 도와줄 계획이라고 한다. 지부장은 직업훈련원을 새로 지어서 교육을 시작하는 것보다 기존의 활동하는 현지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협력하는 것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의 지속성을 생각해 볼 때에도 현지인과의 협력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틴 채 지부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엔지니어였다. 5년 전, 선교의 꿈을 갖고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적응훈련을 받다가 쓰나미를 맞아 현재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 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엔지니어와 회사경력을 밑바탕으로 우물시추와 NGO사업경영을 해내는 솜씨가 탁월해 보였다.


오전에 너 댓 시간 공부가 끝나면 할 일 없이 소일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동도서관과 방과 후 학교를 구상하고, 밑천이 없는 가난한 주민들에게 소액대출을 시작하고, 젊은이들의 취업기회를 늘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예기치 못했던 재난으로 고통 받는 지구촌 이웃을 위해 현장에 뛰어들어 몸을 아끼지 않는 채지부장 부부의 모습에서 ‘좋은 이웃’의 모델을 보는 것 같아 흐뭇했다.


앞으로의 과제


아체는 이제 긴급구호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재건의 단계에 돌입하였다. 아직도 주택 건설과 상하수도, 도로, 교량, 항만, 보건시설, 학교 등의 시설 복구가 시급하다. 날씨가 점점 더워짐에 따라 말라리아나 댕기열 같은 전염병의 예방과 질병치료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30%, 비공식적으로는 70%에 이른다는 실업률을 낮추고 주민들의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믈라보 시내에 임대한 림콤기술전문대학 교실에서 굿네이버스에서 지원한 컴퓨터를 사용해 교육하고 있는 모습


장기적으로는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고 해외투자를 유치하여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쓰나미로 2,500명의 교직원이 죽고 200여개의 학교가 파손되었다. 쓰나미로 인해 아체공무원의 9%, 반다아체에서만 20%가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공무원들의 무능과 부패가 재건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교사들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된다는 지적이 높다.


인도네시아정부가 작년 5월에 만든 재건복구기구(BRR)는 4년간 약50억불에 달하는 지원금의 사용을 계획하고 조정하게 된다.


BRR은 △지역주민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프로젝트와 지원기관을 연결하고, △후원금 사용과 프로젝트 진척상황을 점검하며, △정부부처와 주민들의 우선적 필요를 수집하며, △우선영역에 기금지원을 가속화하고 후원지연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사회의 역량강화에 주력하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부패지수가 세계5위권에 해당되기에 정부기구인 BRR에 대한 국제기구나 NGO들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BRR과 국제NGO들의 상호 견제와 책임성 촉구가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상호견제와 감시가 아체 재건사업의 효과성을 높여서 아체의 부흥을 앞당기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면, 쓰나미는 아체의 재앙이 아니라 축복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실련, 활동 전개


정부는 작년 11월 <국제개발협력 개선 종합대책: 글로벌 리더국가를 향한 한국형 국제개발협력 전략>을 마련했다. 지난 3월 1일에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발족하고 국무총리 주재 하에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그 후 개선대책들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경실련은 6월초, 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를 시작한다. 전문가 자문위원들과 청년층으로 구성되는 감시단은 △정부가 발표한 ODA 개선 종합대책의 이행 여부, △밀레니엄개발목표의 추진 여부, △원조효과 증대를 위한 파리선언문의 이행 여부 등에 대해 감시하고, 정부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정부의 종합대책에는 해외 긴급재난구호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 법령 하에서는 대규모 해외재난 긴급구호를 담당하는 총괄기관이 없어서 대형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대처하기 때문에 신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번 쓰나미 피해 때에는 정부와 민간이 비교적 빨리 구호활동에 들어갔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선진국이나 국제NGO들의 효율적인 지원에는 아직도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쓰나미 피해복구를 위해 아체와 니아스섬에 1,520만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초기에 겨우 150만불의 물자지원을 했을 뿐이다. 1년 4개월이 지난  4월말에야  200만불 상당의 추가물자를 지원했다.  현재 재건해줄 학교 7개와 병원 1개를 설계중이며, 하반기에야 건축에 들어간다. 긴급재난을 위한 예산이 3백만 불로 책정되어 있어서  쓰나미 재해에도 제 때에 지원을 하기 어려웠다.


한국, 일본, 대만정부에서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적인 지원이 지연되자 인도네시아정부는 향후 이들 나라에 대한 천연가스 판매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최근 ODA를 받는 나라에서 ODA 감시를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정부가 설립한 재건복구기구(BRR)는 주민들의 필요와 우선순위에 따라 원조기관을 연결해주고, 원조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약속한 원조계획에 근거하여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신속한 이행을 촉구한다. 원조공여국이 자의에 따라 제공하는 원조이지만, 일단 약속을 한 후에는 약속을 이행해야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2010년 이전에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겠다는 정부가 스스로 만든 ODA 개선안을 제 때에 이행하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사항들을 지켜나가는 것은 당연한 의무요 책임이다.


* 이 글은 5월 15일 시민의 신문에도 실렸습니다.